[조용호의 문학공간] "보아라, 서럽지 않은가, 피 같은 꽃잎들"
조용호 문학전문기자
jhoy@kpinews.kr | 2022-03-31 14:35:36
능선 따라 펼쳐지는 30~40년생 진달래 터널 압권
김소월 이래 시인들이 노래한 진달래의 다양한 서정
슬픔, 애도, 위무의 정서…강인한 생명력과 붉은 사랑
"봄마다 앓아 눕는, 우리들의 지병(持病)은 사랑"
진달래는 우리 산하를 물들이는 사월의 상징적인 꽃이다. 연분홍 분분한 이파리들이 바람에 날리는 삼짇날(음력 3월3일)이면 고래로 우리 땅에서는 봄을 시작하는 축제가 열렸다. 강남 갔던 제비가 옛집을 찾아와 추녀 밑에 집을 짓고 나비도 날아들기 시작한다. 부인들은 산으로 놀러가 진달래 꽃잎으로 화전(花煎)을 부치며 꽃다림을 한다. 노인은 노인들끼리, 청년은 그들대로 모여 환하게 시작되는 봄을 온 가슴으로 맞이한다. 진달래는 이 축제의 주인공이다.
한반도 전역에서 자생하는 데다 민족의 사랑을 받아온 꽃이어서 무궁화 대신 국화로 지정하자고 주장하는 이들도 있다. 근현대사의 영욕을 함께 하며 문학 속으로도 깊이 스며들었다. 한국인이 가장 좋아하는 시로 꼽힌 것도 김소월(1902~1935)의 '진달래꽃'이다. 소월 이래 많은 시인들이 진달래를 모티브로 삼았고, 가곡과 대중가요를 넘나들며 다양한 노래로도 불렸다. 서양에서 들어온 화려한 꽃들에 가려져 이즈음에는 뒷전으로 밀린 분위기이긴 하지만, 진달래의 은근하면서도 고혹적인 분홍은 여전히 압권이다.
대표적인 진달래 군락지로 꼽히는 여수 영취산에 올랐다. 만개하는 시점을 맞추기 쉽지 않지만, 삼짇날을 일주일 앞둔 능선에는 절반 이상 피어 있었다. 이 정도만으로도 영취산은 연분홍 불이 붙은 것처럼 느꺼웠다. 팬데믹 사태가 오래 지속되면서 영취산 진달래 축제는 올해도 취소된 탓인지 사람들로 가득 차던 능선 길은 한적하다. 고요한 꽃 터널 속을 거닐며 진달래에 스며든 시와 노래를 떠올렸다.
"나 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말없이 고이 보내드리우리다.// 영변(寧邊)에 약산(藥山)/ 진달래꽃,/ 아름 따다 가실 길에 뿌리오리다.// 가시는 걸음 걸음/ 놓인 그 꽃을/ 사뿐히 즈려 밟고 가시옵소서.// 나 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죽어도 아니 눈물 흘리오리다."(『개벽』 25호, 1922.7.)
김소월의 '진달래꽃'은 세대를 초월해 많은 이들에게 익숙한 시편이다. 소월이 영취산 아래 살았다면, 그가 살았던 '물로 사흘 배 사흘/ 먼 삼천리/ 더더구나 걸어 넘는 먼 삼천리/ 삭주 구성' 일대에서 진달래 군락지로 이름이 높았던 영변의 약산 진달래 군락을 거론하는 대신, 영취산 진달래를 노래했을 터이다. 소월이 절망의 깊은 나락에 빠져 서른세 살에 생을 마감하자, 그를 등단시키고 이끌었던 오산학교 스승 김억(1896~ ?)은 "그는 어디까지든지 고독하게 지내다가 고적하게 돌아간 시인"이라며 "별로 지기(知己)도 없이 고요히 혼자 노래하다가 그것도 그만 단념하고 남모르게 산촌에서 지내다가 남모르게 돌아가고 말았으니, 작품의 가치 같은 것은 여하간 사람으로의 그의 일생은 너무도 불행이었고 너무도 짧았다"고 탄식했다.
김억은 "소월은 결코 둥근 사람이 아니었고 어디 가든지 모난 인물이었든 것"이라며 "자기의 비위에 틀리면 어떠한 일이라도 하려고 하지 않았으며 그 대신 자기의 비위에 맞으면 반드시 끝장을 내고야 말든 것이었다"고 '나 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죽어도 아니 눈물 흘리겠다'는 심성의 저변을 에둘러 설명했다. 이러한 성정을 지닌 시인이 동아일보 지국 경영을 포함한 세속의 모든 일에서 실패하고 식민지 삼수갑산에 갇혀 외롭게 생을 견뎌야 했으니, 아편을 다량으로 먹고 스스로 떠났다는 설이 유력하긴 하다.
소월은 "보아라, 그대여, 서럽지 않은가,/ 봄에도 삼월의 져가는 날에/ 붉은 피같이 쏟아져 나리는/ 저기 저 꽃잎들을, 저기 저 꽃잎들을"('바다가 변하여 뽕나무밭 된다고')이라며 삼월에 '피 같이' 나리는 꽃잎들을 노래했다. 소월에게 그 꽃들은 환희의 대상이 아니라 울게 만드는 것이었다. 그는 "가는 봄 삼월 삼월은 삼질/ 강남 제비도 안 잊고 왔는데./ 아무렴은요/ 섧게 이 때는/ 못 잊어 그리워./ 잊으시기야 했으랴, 하마 어느새/ 님 부르는 꾀꼬리 소리./ 울고 싶은 바람은 점도록 부는데/ 설리도 이 때는/ 가는 봄 삼월 삼월은 삼질."('가는 봄 삼월') 이라며, '진달래 꽃이 피고/ 바람은 버들가지에서 울 때' 가는 봄을 앞당겨 설워한다.
"봄은 가나니 저문 날에,/ 꽃은 지나니 저문 봄에,/ 속없이 우나니 지는 꽃을,/ 속없이 느끼나니 가는 봄을./ 꽃 지고 잎진 가지를 잡고/ 미친 듯 우나니, 집난이는/ 해 다 지고 저문 봄에/ 허리에도 감은 첫 치마를/ 눈물로 함빡히 쥐어짜며/ 속없이 우노나 지는 꽃을,/ 속없이 느끼노라 가는 봄을."('첫 치마')
소월의 '진달래꽃' 이래 많은 시인들이 이 꽃에 정한을 투사했다. 생때 같은 청년들이 피로 얻어낸 4.19 혁명을 지켜본 이영도(1916~1976) 시조시인의 '진달래-다시 4.19날에'는 가위 소월의 '진달래'를 잇는 꽃으로 현대사에 음각될 만하다.
"눈이 부시네 저기/ 난만히 멧등마다,// 그날 스러져 간/ 젊음 같은 꽃사태가,// 맺혔던 한이 터지듯/ 여울여울 붉었네.// 그렇듯 너희는 지고/ 욕처럼 남은 목숨,/ 지친 가슴 위엔/ 하늘이 무거운데,/ 연연히 꿈도 설워라,/ 물이 드는 이 산하."('이영도, '진달래-다시 4·19날에')
이 시편은 한택근 작곡으로 1980년대 학생들에게 널리 불렸다. 이 노래를 부르다 공안기관에 끌려간 이들이 '물이 드는 이 산하'라는 가사 때문에 곤욕을 치르기도 했다는 웃지 못할 에피소드도 전한다. 진달래는 노래로도 많이 만들어졌다. '산 너머 남촌에는 누가 살길래/ 해마다 봄바람이 남으로 오네/ 꽃이 피는 4월이면 진달래 향기'로 이어지는 '산 너머 남촌'(김동환 작시·김규환 작곡), 배고픈 보리고개 시절 '바위고개 피인 꽃 진달래꽃은/ 우리 임이 즐겨 즐겨 꺾어 주던 꽃/ 임은 가고 없어도 잘도 피었네'라던 '바위 고개'(이서향 작시·이흥렬 작곡)에도 진달래꽃은 어김없이 등장한다. 소월의 '진달래꽃'은 록밴드 노바소닉, 가수 마야가 불러 젊은 세대에게도 친숙하다.
"지고 또 지고 그래도 남은 슬픔이 다 지지 못한 그날에/ 당신이 처음 약속하셨듯이 진달래꽃이 피었습니다./ 산이거나 강이거나 죽음이거나 속삭임이거나/ 우리들의 부끄러움이 널린 땅이면/ 그 어디에고 당신의 뜨거운 숨결이 타올랐습니다."(곽재구, '진달래꽃')
현대시에서도 진달래는 자주 피어났다. 곽재구의 진달래도 소월 시의 유전자를 이어받아 슬픔과 나란히 놓인 꽃이다. 4·19에 이어 광주항쟁까지 '우리들의 부끄러움이 널린 땅'에서 진달래는 애도와 위무의 역할을 수행한다. 원로 신경림 시인은 슬픔에 머무르지 않고, 우리 산하에서 질기게 생존하며 어김없이 봄산을 물들이는 진달래의 생명력를 상찬한다.
"얼마나 장한 일이냐/ 꽃과 잎 꺾이면 뿌리를 그만큼 깊이 박고/ 가지째 잘리면 아예/ 땅 속으로 파고들어가 흙과 돌을 비집고/ 더 멀리 더 깊이 뿌리 뻗는 일이/ 얼마나 아름다운 일이냐/ 피해서 꺾이지 않고/ 숨어서 잘리지 않으면서/ 바위너설에 외진 벼랑에/ 새빨간 꽃으로 피어나는 일이"(신경림, '진달래')
영취산에서 영접한 오래된 진달래 관목들은 과연 튼실하게 가파른 땅과 돌을 비집고 깊이 뿌리를 내리고 있다. 여수 못 미쳐 여천 역에서 KTX를 내려, 매년 진달래축제가 열리는 '돌고개 주차장'까지 택시로 20분 안팎이면 도착한다. 올해도 감염병 사태로 축제가 취소돼 한적한 돌고개에서 가파른 등산로를 따라 30분 가량 오르면 가마봉으로 오르는 밋밋한 능선이 시작된다. 이 길에서부터 좌우로 30~40년 생 진달래 관목들이 장관을 이룬다. 진달래 터널 구간도 자주 나온다. 능선에서 바라본 옆 능선은 산불이라도 난 듯 붉다. 가마봉에서 영취산 정상까지는 다시 진달래 관목 터널이 이어진다. 시인들이 진달래에서 슬픔과 위무와 애도, 강인한 삶의 의지만 떠올린 것은 물론 아니다. 연분홍 진달래에서 사랑의 환희를 빼놓을 수 없다.
"해마다 부활하는/ 사랑의 진한 빛깔 진달래여/ 네 가느단 꽃술이 바람에 떠는 날/ 상처입은 나비의 눈매를 본 적이 있니/ 견딜 길 없는 그리움의 끝을 너는 보았니/ 봄마다 앓아 눕는/ 우리들의 지병(持病)은 사랑/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아무것도 잡히지 않는다/ 한 점 흰 구름 스쳐 가는 나의 창가에/ 왜 사랑의 빛은 이토록 선연한가/ 모질게 먹은 마음도/ 해 아래 부서지는 꽃가루인데/ 물이 피 되어 흐르는가/ 오늘도 다시 피는/ 눈물의 진한 빛깔 진달래여"(이해인, '진달래')
이해인 시인은 진달래에서 봄마다 앓는 '사랑이라는 지병'을 떠올렸다. 진달래는 눈물의 진한 빛깔이라고, 그것은 사랑의 선연한 상징이라고 보았다. 오세영 시인의 '진달래'는 젊은 육신의 참을 수 없는 격정을 매개한다. 그는 "그의 가슴에 타오르는 사랑을/ 진달래라 부르다가,/ 끝끝내/ 돌아앉아버린 산/ 산은/ 밤하늘에 별만을 진실이라 믿지만/ 초록으로 벙그는 육신을 안고/ 어떻게 사나,/ 기다림 절정에서 터지는 격정./ 봄비는 폭우로 쏟아지는데/ 와르르 무너지는/ 산사태"('산사태')라고 썼다.
가마봉에서 영취산 정상에 이르는 능선 진달래는 만개하진 않았다. 올해는 개화가 빠르다는 소식에 맞춰 갔지만, 삼짇날은 지나야 더 자욱한 연분홍 터널 속으로 빨려들어갈 것 같다. 가마봉에서 긴 진달래 능선을 따라 임도로 내려와 골명치를 거쳐 하산했다. 임도 주변은 벚꽃과 개나리가 무리진 진달래와 어울려 선경이다. 바이러스들이 인간을 차단한 곳에는 봄 생명들이 저들만의 축제를 벌이고 있었다. 햇빛 좋은 한나절, 살아서 저쪽 선계에 잘 다녀왔다.
KPI뉴스 / 영취산(여수)= 조용호 문학전문기자 jhoy@kpinew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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