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홍균 칼럼] 중앙은행 총재의 조건
UPI뉴스
| 2022-03-16 17:26:58
코로나 위기 속에서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인한 신냉전(post-post cold war)의 위기가 더해지는 그야말로 위기의 시대를 지나고 있는 지금, 한 나라를 운영하는 데 가장 필수적인 요소를 두 가지만 말하라고 한다면 필자는 국민을 외세로부터 보호할 국방력, 그리고 경제안정을 최종적으로 책임지는 중앙은행을 꼽고 싶다.
위기의 시대, 또 변혁의 시대일수록 중앙은행에 기대하는 역할과 책무가 막중한 만큼 중앙은행의 장이 갖추어야 할 역량 내지 중앙은행 총재의 조건이 무엇일지가 세간의 관심 대상이 되는 것은 당연하다.
미국의 작가 윌 로저스는 태초 이래 인류의 세 가지 위대한 발명품으로 불, 바퀴, 그리고 중앙은행을 꼽기도 했는데 현대적 의미의 중앙은행은 의회가 제정한 법률에 의해 독립기관이 됨으로써 역할을 하기 시작하였다.
중앙은행의 법적 위상은 광의의 독립적 행정기관(independent administrative agency)이라는 것이 현대 행정법상 설득력 있는 견해의 하나로 인식되고 있고 여기서 행정기관이라 함은 입법부와 사법부를 제외한 정부 소속 기관을 지칭한다. 중앙은행은 그 장의 임명을 대통령이 하지만 대통령의 직접 지휘를 받는 내각(cabinet)과는 달리 업무의 독립성이 철저히 보장되어야 하는 기관이다.
중앙은행의 모범으로 인정받는 미 연준의 독립성은 제롬 파월 현 의장과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 간에 표출되었던 첨예한 갈등 관계 속에서도 여실히 확인된 바 있다. 대통령에 의해 대표되는 광의의 행정부에 속하면서도 대통령의 직접 지휘를 받지 않는 독립적 행정기관으로서의 이러한 중앙은행의 위상은 행정부에 속하는 준사법기관인 검찰의 독립성에 비견될 수 있는 측면이 있다고 하겠다.
그러면 중앙은행을 이끄는 중앙은행 총재가 갖추어야 할 역량은 어떠한 것이어야 할까? 중앙은행은 망망대해를 헤쳐나가는 항해자에 자주 비유된다. 그리스 신화의 영웅 율리시스는 트로이 전쟁을 승리로 이끌고 돌아가는 길에 요정 사이렌이 사는 섬을 지나게 된다. 이전의 수많은 항해자들이 사이렌의 아름다운 노래에 홀려 바다에 빠지거나 배가 난파되었는데 이를 익히 알고 있던 율리시스는 자신의 몸을 배의 돛대에 묶는다. 그렇게 해서 사이렌의 유혹을 견뎌내고 섬을 무사히 통과하게 된다.
중앙은행도 자신을 주어진 책무에 묶어둠으로써 외부 압력이나 유혹에 흔들리지 않아야 한다. 항해자로서의 중앙은행 총재는 율리시스와 같은 자세의 실천자일 필요가 있다. 중앙은행은 안정과 성장이라는 사회의 상충되는 요구에 끊임없이 직면하게 되고 법적 책무(legal mandate)와 사회적 책무(social imperatives) 간의 간극에서 고뇌하게 마련이다. 중앙은행 총재의 직은 독립성에 관한 법경제적 성찰을 일상적으로 할 수밖에 없는 자리이다. 중앙은행 총재의 경제철학이 중요한 이유이다.
중앙은행 총재가 선출직은 아니지만 국민에 대해 직접 책임을 지고 행정부 전체를 대표하는 대통령에 의해 임명되는 직인 만큼 국민에 대한 책임이 있으며 따라서 중앙은행 총재의 정치적 책임성(political accountability)이 정당하게 존중될 필요가 있다. 중앙은행 총재의 경제철학에 대한 사회적 확신이 필요한 것이다.
공정과 정의라는 법철학을 지닌 검찰총장이 국민의 지지를 받아 차기 행정부를 대표하는 대통령에 당선된 데에서도 확인되듯이 국민은 위기의 시대를 헤쳐나갈 차기 중앙은행 총재의 경제철학에 대해 지대한 관심을 갖고 있다.
임명된 이후에는 대통령의 직접 지휘를 받지 않는 중앙은행과 같은 독립적 전문 행정기관의 장일수록 전 행정부를 대표하는 대통령의 헌법적 의무에 기초하여 국민은 그 경제철학을 충분히 알 필요가 있다.
국민의 삶에 밀접한 영향을 미치는 중앙은행 총재의 조건은 일반 내각의 구성원과는 사뭇 다르다. 비선출직이지만 대통령의 직접 지휘를 받지 않는 중앙은행 총재의 국민에 대한 책임성은 내각 구성원과는 결이 다른 측면이 있는 것이다. 중앙은행 총재의 경제철학에 대한 세간의 관심이 선출직 못지않게 늘 높았던 이유 중 하나이다. 이렇게 볼 때 중앙은행 총재 후보들의 경제철학을 국회 청문회와 별도로 국민에게 미리 밝힌다면 이는 헌법적 원리에 보다 부합할 수 있는 하나의 방편이 된다.
그렇다면 바람직한 중앙은행 총재의 경제철학은 앞서 말한 율리시스와 같은 자세와 더불어 어떠한 모습이어야 할까? 영국 경제학자 존 메이너드 케인스가 1924년 스승 알프레드 마샬에게 헌정한 에세이에서 힌트를 얻을 수 있다. 이코노미스트를 포함하여 모든 사람이 갖추면 바람직한 덕목이기도 하다.
"일반의 관점에서 특별을 고려해야 하고, 추상과 현실을 같은 생각의 궤적에서 다루어야 한다. 미래의 목적을 위해서 과거에 비추어 현재를 공부해야 한다. 인간의 본성과 제도의 어떤 부분도 관심사에서 완전히 벗어나 있으면 안된다. 마음속에 목적성과 객관성을 동시에 지녀야 하고, 예술가처럼 초연하고 오염되지 않아야 하지만 때로는 정치인처럼 세상과 가까워야 된다."
조홍균 한국은행 경제연구원 부원장/미 워싱턴대 법학박사(J.D./J.S.D., 법경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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