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해 봄 천안 입장에 메아리친 광부와 소녀들의 '독립만세' 

박상준

psj@kpinews.kr | 2022-02-28 10:22:35

1919년 민족기상 일깨운 아우내 유관순 만세 운동 도화선

1919년 3월, 동토(凍土)의 시대에도 어김없이 봄은 찾아왔지만 충남 천안면 입장면은 아침부터 냉랭한 긴장감이 감돌았다. 새벽밥 먹고 출근해 갱도에 들어가 사금(砂金)을 캐고 있어야 할 30여 명의 광부들은 금광(金鑛)앞에 집결해 있었다. 부지런히 등교길을 재촉해야 할 여학생들도 작은 태극기를 손에 쥔 채 초조하게 친구들을 기다렸다. 

비장한 얼굴의 광부와 여학생, 주민 등 70여 명이 향한 곳은 천원군(현 천안시) 입장면 양대리 장터. 지금은 흔적만 남았지만 당시엔 금광 경기에 힘입어 번성했던 장터였다. 이들은 3㎞를 걸어 장터에 도착하자마자 합세한 장꾼들과 함께 감정이 복받친 듯 밤새 만든 태극기를 흔들며 대한독립만세를 목청껏 외쳤다. 민족의 기상을 일깨운 충남의 첫 만세운동이었다.

▲일제강점기 입장독립만세운동의 시발점이 된 직산광산 [입장기미독립만세운동기념사업회 제공]


▲1919년 3월 천안 입장면 만세운동을 이끈 민옥금, 한이순, 황금순 열사 [TJB 생방송투데이 캡쳐]

3월이 오면 떠오르는 도시가 있다. 유관순 열사의 고장 충남 천안이다. 이곳엔 매년 3월1일 '아우내 3·1절 기념 봉화제'가 열린다. 천안 병천의 아우내 장터는 일제강점기인 1919년 4월1일 독립만세운동을 하다가 수십 명이 피살되고 부상을 당한 우리나라 항일항쟁의 요람이다. 그래서 독립기념관도 병천에 인접한 목천읍에 있다.

이 때문에 아우네 장터는 교과서에 실릴 만큼 유명하지만 정작 아우내 독립만세운동의 도화선이 된 입장면 양대리 장터만세 운동은 최근에야 주목받고 있다.

입장은 지금도 고급포도인 샤인머스켓과 거봉의 집산지이자 경부고속도로변에 위치해 대형 물류센터가 속속 들어서고 있는 금싸라기같은 고장이지만 옛날에도 토질속에 금 성분이 많이 함유돼 해방 전부터 사금이 많이 나던 곳이다. 

그래서 일제강점기 인근 직산에 미국인이 채굴권을 가진 금광촌이 대대적으로 개발돼 돈과 사람이 몰리자 외국인 선교사가 기독교계 여학교인 광명학교를 설립했다. 3·1운동때 민족대표 48인 중 한 사람인 함태영 목사의 부친이 한문을 가르치고 훗날 중앙대 총장을 지낸 임영신 박사가 교편을 잡아 주민과 학생들의 의식수준이 높고 반일정서가 남다른 곳이었다.

국사편찬위원회 자료에 따르면 당시 민족혼을 일깨운 양대리 장터 만세 운동을 주도한 인물은 임 박사와 강기형 교사 그리고 직산 금광의 광부인 박창신과 안시봉이다. 이들은 기미년 3월20일 오전 10시쯤 광명학교의 교사와 여학생, 광부와 장꾼, 주민 등 약 300여 명과 함께 양대리 장터에서 태극기를 흔들며 대한독립만세를 외쳤다. 

특히 14세 어린 소녀였던 민옥금, 황금순, 한미순 등 3명은 새하얀 상복을 입고 선두에 나서 주민들의 반일정서에 불을 지폈다. 

이날 시위참가자들은 양대리 장터 만세운동에 대한 급보를 받고 출동한 천안 헌병대와 충돌해 남자 40명, 여자 10명이 체포됐다. 하지만 나머지 군중들은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장터에서 대대적으로 시위를 벌여 일제의 간담을 서늘하게 했다.

이후 며칠 소강상태를 보이다가 28일엔 박창신 안은 등 직산 금광 광부들이 새벽 교대시간을 이용해 200여 명의 광부들과 함께 독립만세를 부르며 또 다시 양대리 장터로 진출한 데 이어 헌병주재소를 습격하고 돌을 던지며 무기 탈취를 시도하는 등 격렬하게 충돌했다. 

당시 경찰이 발포해 시위대 중 6명이 부상하고 그 중 남기철 신일성 등 2명이 순국해 충남에서 최초로 순국자가 양대리 장터에서 발생했다. 

입장 양대장터 만세운동은 10대 여학생들과 광부들이 앞장섰다는 데 큰 의미가 있다. 여성의 사회적 지위가 낮은 시대에 주체적인 민족의식으로 무장한 소녀들과 막장인생이라는 말이 나올만큼 험한 일을 하며 가진 것이 없는 광부들이 목숨을 걸고 일제에 항거해 일제 강압통치에 억눌렸던 국민들의 독립의식 고취에 큰 자극이 됐다.

▲1990년 4월 입장기미독립기념탑 개막행사에 참석한 김종필 전총리 [입장기미독립만세운동기념사업회 제공]

직산 금광 광부들과 광명학교 여학생들이 주도한 만세운동이 4월1일 유관순 열사를 비롯 3000여 명의 군중이 시위를 벌인 아우내장터 만세운동의 기폭제가 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민족주의 사회학자인 서울대 신용하 교수는 "병천 유관순 열사가 전국에서 대표됨은 천안의 자랑이거니와 그보다 십여 일이 앞서 양대 광명학교 여학생들이 주도한 양대장터의 독립만세 운동이 일어난 것은 버금할 수 없는 천안의 자랑"이라며 입장 만세운동기념탑에 기록해 역사적 의미를 부여했다.

녹슬은 심장에도 피가 용솟음치는 것을 느끼게 하는 3월, 당시 입장면은 독립의 기운이 충만한 기념비적인 봄이었다. 입장기미독립운동기념공원에 있는 만세운동기념탑 앞에 서면 103년 전 빼앗긴 들판이 주변에 펼쳐진 양대리 장터의 독립만세 함성이 메아리처럼 귓가에 울려 퍼지는 듯하다.

KPI뉴스 / 박상준 기자 psj@kpinew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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