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해저터널은 동북아 평화 실마리"…이정한의 담대한 꿈

제이슨 임 아트전문기자

jasonyim@kpinews.kr | 2022-02-01 13:37:20

수십년 한일해저터널 건설의 꿈 좇는 이정한 건국대 교수
"해저터널은 한일 구원 풀고 태평양시대 리더 도약 기회"
"한일만의 문제 아냐…유대계 펀드 100조 원 조성 가능"

학창시절부터 수십 년간 '한일 해저터널 건설'이라는, '거창한 꿈'을 좇는 한국인이 있다. 이정한 건국대 교수다. 그의 직업은 교수에 국한하지 않는다. 활동무대도 광활하다. 화가, 패션모델, 기업인 등 다양한 모습으로 국제적 활동을 펼친다.

한일 해저터널에 대한 그의 신념은 확고하다. "'한일 해저터널'이야말로 양국의 해묵은 구원을 풀어 동북아 평화 구축의 실마리가 될 수 있다"고, "이를 통해 한국은 태평양 시대 선도국가로 자리매김할 수 있다"고 역설한다.

이 교수는 요즘 다시 바빠졌다. 정치 대목을 맞았기 때문이다. 선거는 한일 해저터널 추진 동력을 살릴 절호의 기회다. 하물며 대통령 선거다. 지난해 부산시장 보궐선거에서 부상한 '한일 해저터널' 이슈도 그의 작품이라고 한다.

이 교수는 "대선이 코앞이라 정치권 유력 인사를 만나 해저터널의 필요성을 설명하러 다니느라 24시간도 부족할 지경"이라고 했다. 이 교수는 어쩌다 한일 해저터널에 꽂혔나. 왜 해저터널로 두 나라를 이어야 한다고 생각하나. 그 거대한 사업을 어떻게 할 수 있다는 것인가.

이 교수는 지난달 말 UPI뉴스와의 인터뷰에서 한일 해저터널 구상을 소개하고 그 필요성을 역설했다. "양국이 머리를 맞댄다면 해묵은 여러 논쟁까지 없앨 수 있다"고, 이 교수는 강조했다."해저터널 건설을 통해 '가깝고도 먼 이웃'이 아니라 '아주 가까운 이웃'이 될 수 있다"는 얘기다.

▲ 이정한 교수가 UPI뉴스 인터뷰에서 한일 해저터널의 필요성을 역설하고 있다. [문재원 기자]

해저터널의 꿈은 학창시절 부산 태종대에서 싹텄다고 했다. 대구가 고향인데, 바다가 좋아 종종 부산 태종대를 찾은 게 계기였다. 그곳에서 부산 앞바다를 가로질러 일본에 이르는 해저터널을 상상했고, 이 막연한 상상이 필생의 과업이 되었다는 설명이다.

모든 게 이 교수의 아이디어로 출발했다는 얘기는 아니다. 한일 해저터널의 역사는 깊다. 일제 강점기엔 제국주의 일본이, 1980년대엔 한국 통일그룹이, 1990년대 이후엔 노태우·김대중·노무현 정부에서 이 주제를 테이블에 올렸다. 가장 최근엔 지난해 부산시장 보궐선거에서 김종인 국민의힘 비대위원장이 '부산-규수 해저터널 건설'을 꺼내 들어 다시 이슈가 됐다.

그렇게 오랜 역사를 가졌지만 매번 변죽만 울릴 뿐이다. 그만큼 어렵다는 얘기일 터다. 이 대목에서 이 교수는 "NGO(비정부기구)로 '한일 해저터널 태평양 평화연대'를 발족하겠다"고 밝혔다. "사전 분위기 조성이 사업의 성패를 가를 것"이라는 설명이다. "NGO를 구성해 해외에 거주하는 양 국민의 힘을 모아 사전 분위기를 조성하겠다"는 게 이 교수의 구상이다.

민간이 나서 분위기를 조성한다고, 이 어마어마한 사업이 추진될까. 이 교수는 "국가간 협정이 필요하지만 언제까지 손 놓고 기다릴 순 없다. 민간에서 다양한 가능성과 방법론을 제기해야 속도가 날 수 있다"고 했다.

갈 길은 멀고 험하다. 넘어야 할 산이 첩첩이다. 분위기 조성으로 발을 뗀다 해도 천문학적 공사비는 어떻게 조달할 것인가. 이 교수는 "대략 100조 원 정도 들 것이다. 관련 부가 사업까지 한다면 사업비는 상상을 초월할 것"이라고 했다.

이 교수 나름의 해법은 있다. 다국적 투자다. 이 교수는 "국제평화를 위한 일이니 한일 만의 문제가 아니"라며 "그동안 여러 유대계 펀드와 얘기를 나눴고 긍정적 답변도 들었다"고 말했다. 미국 유학후 현지에서 백방으로 국제펀드 조성을 위해 뛰어다닌 결과라고 했다.

이 과정에서 미국 정치인 신호범 의원(2021년4월 작고)을 만나 미국 주류사회 인맥과의 소통 토대를 다지기도, 국제펀드 조성을 위해 한국계 미국 정치인 데니스 심 의원(뉴저지주 리지필드 시의원)과 뛰어다니기도 했다. 

신호범 전 의원은 워싱턴주 상·하원 의원을 5선이나 지낸 유력 정치인이었다. 그를 통해 닉슨 전 대통령 사위인 에드콕스(Ed Cox) 뉴욕 공화당 총재, '투자의 귀재' 워런 버핏과도 교류할 수 있었고, 트럼프 대통령 취임식에도 초대받아 참석했다고 한다.

이 교수는 1996년 불혹의 나이에 미국 유학길에 올랐다. "이미 MBA 과정까지 마쳤지만 더 큰 도약이 필요했다"고 한다. 3년 만에 학사 과정을 마친 후 펜실베니아대에서 석사, 컬럼비아대에서 석·박사 과정을 마쳤다. 

▲ 미국 유학시절 신호범(오른쪽) 미 워싱턴주 상원의원과 포즈를 취한 이정한 건국대 교수 [이정한 교수 제공] 

어린 시절 막연한 꿈은 미국 주류사회 교류 속에서 점점 구체화했다. "사실 어릴 땐 막연했다. 굵직한 인맥이 쌓이고 국제 금융에 대한 시야가 트이자 '아! 이젠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교수는 "처음엔 '무슨 돈키호테같은 소리냐'던 이들도 하나둘 내 편이 됐다"고 회상했다.

이 교수의 손엔 문서가 쥐여져 있었다. '부산~일본 규수 해저터널 건설 및 외자 유치 계획서'로, 추진배경부터 목적, 주요 사업, 기대 효과, 소요 예산, 추진일정이 구체적으로 정리돼 있었다. 주고받은 메일함에는 미 정가 유력 인사들의 이름이 빼곡했다.

"일방의 이익이나 목적으론 성공할 수 없다. 오직 평화와 미래를 보고 가야 한다. 일본을 파트너로 인정하기 쉽지 않다. 하지만 이제 한국은 정치·경제적으로도 일본에 앞섰다. 더 큰 미래를 위해 더 큰 고민을 해야 한다." 이 교수는 다시 한번 한일 해저터널 건설의 당위성을 역설했다.

이 교수의 본업은 화가다. 뉴욕에서만 수십 차례 전시회를 열었다. 지난해엔 미국 생활 당시 그린 드로잉 77점을 묶어 출간했다. 오바마 전 대통령도 그의 독창적 드로잉을 극찬했다고 한다.

거창한 꿈을 품고 있어서인지 그의 말과 눈빛은 천진난만한 아이 같기도 하다. 인터뷰 끝에 '아재개그' 한토막을 던지며 호탕하게 웃었다. "'순자,맹자,노자,장자 보다 더 좋은 것은 '웃자'이고 '웃자'보다 더 좋은 것은 '함께하자'다."

인터뷰를 마친뒤 이 교수에게서 저녁 내내 문자와 자료가 날아왔다. 마지막 문자는 'Making History'였다. '역사를 만들어 보겠다'는 의지의 표현일 터다. 이 교수의 '필생의 과업'은 역사가 될 수 있을 것인가.

▲ 이정한 교수의 작품 'The Pacific Silk Road 2006'. 이 교수는 UPI뉴스 인터뷰에서 "과거엔 베네치아 상인 마르코폴로가 실크로드를 따라 동방을 누볐지만 21세기엔 한국이 그 중심에 있을 것"이라며 "그 가운데 '한일 해저터널'이 있다"고 말했다. 

KPI뉴스 / 제이슨 임 아트전문기자 jasonyim@kpinew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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