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무는 연탄의 시대, '마지막 불꽃' 피워 쪽방촌 겨울 지키다
조성아
jsa@kpinews.kr | 2021-12-24 16:15:02
"코로나19로 후원 줄어 더 추운 겨울"
3.6kg, 639원 연탄 한 장의 온기 10시간
업계 "5년 안에 연탄공장 사라질 것"
지난 23일 오후 대전시 동구 역전길 '쪽방촌'. 김간난(78·가명) 할머니는 먼저 떠난 아들을 떠올리며 하늘을 올려다봤다. 아들은 스물 꽃다운 나이에 연탄가스로 세상을 떴다고 했다. 허술한 시골집에서 연탄으로 겨울을 나던 그 시절 흔한 사고였다.
할머니는 집 앞 좁은 골목길 한쪽에 놓인 의자에 앉아 대부분의 시간을 보낸다. 다리가 성하지 않아 걷기가 힘들다. "관절이 안 좋아 수술을 여러 번 했다"며 무릎을 덮은 담요 아래로 연신 다리를 만졌다. 손가락도 관절염으로 온전치 않아 보였다. 빨갛게 튼 손이 안쓰러워 잡아드렸더니 "만지지 마. 더러워"라며 손을 빼신다. "할아버지는 안계셔요?", "예전에 바람나서 집 나갔어."
이곳 쪽방촌엔 119가구 168명이 모여 산다. '나홀로' 사는 독거노인이 상당수다. 이들 중 대다수 가구는 여전히 연탄으로 하루를 연명하고 있다. 3.6kg, 639원 연탄 한 장의 온기에 기대 춥고 외로운 겨울밤을 나야 한다. 연탄 덕분에 목숨을 붙이고, 연탄 때문에 자식을 떠나보낸 삶. 연탄은 김 할머니에게 어떤 존재일까.
사람 한 명 지나가기도 비좁은 골목길이 집들 사이사이를 힘겹게 비집고 있었다. 잔뜩 몸을 움츠린 할머니 한분이 지나간다. 이 골목에서 40년 넘게 살았다는 이정자(83·가명) 할머니다. 이 할머니는 "하룻밤을 나려면 연탄 네 장이 필요해. 집이 냉골인데 연탄이 모자라 그냥 버티고 있어…"라고 말했다. 심장수술만 네 번 했다는 이 할머니는 숨이 차 말을 길게 하지 못했다. 이들의 삶은 좁은 골목 안에 갇힌 채 수십 년을 그대로 머물고 있는 듯했다.
연탄의 시대는 점점 아득해지고 있다. 1960~70년대 서민들의 삶을 대표하던 연탄은 국민의 보편적 삶에서 퇴장한 지 오래다. 1980년 2000만 톤에 달했던 소비량은 2015년 147만 톤 → 2019년 78만 톤으로 곤두박질쳤다. 지난 22일 통계청이 발표한 '2020년 기준 소비자물가지수'에서 연탄은 대상 품목에서 제외됐다. 1965년 첫 조사 이후 56년만의 퇴장이다. 국민의 보편적 삶의 지표에서도 연탄의 대표성이 사라진 것이다.
자연스레 연탄을 찍어내는 공장들도 세월과 함께 쇠락하는 중이다. 현재 전국에 남아있는 연탄공장은 총 28개. 공장 가동도 크게 줄었다. 연탄업계에선 "5년 안에 연탄공장이 사라질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23일 대전시 대덕구에 있는 연탄공장을 찾아가봤다. 외진 길을 10여분 가까이 돌고 돌아 들어가니 '세창연탄'이라는 간판이 눈에 들어왔다. 이곳에선 요즘 하루 만 장 정도의 연탄을 찍어낸다고 한다. 김덕수 전무는 "이곳 연탄공장은 73년부터 이 자리에 있었다. 그 때는 하루에 몇 백만 장씩 나갔다"고 말했다.
연탄 소비량이 줄며 공장 규모도 줄었다. 수십 명이 일했던 공장엔 현재 7명 정도가 남아있다. 김 전무는 "연탄은 겨울, 초봄까지 일 년에 4~5개월 일하고 7~8개월은 놀아야 한다. 그나마도 요즘은 주문이 들어와야 공장을 돌리고 있다"고 한숨을 쉬었다.
공장 뒤편에는 연탄의 재료가 되는 석탄이 한 때의 위용을 드러내듯 큰 산처럼 쌓여 있었다. 그 뒤로 기찻길이 보였다. 예전에는 기차로 석탄을 나를 정도로 수요가 많았다고 한다. 잠시 뒤 기계가 큰 소음을 내기 시작하며, 연탄이 한 장 씩 모습을 드러냈다. 기계는 잊혀지는 세월을 거스르기라도 할듯한 기세로 활기차게 돌아갔다.
연탄의 시대가 완전히 저문 것은 아니다. 아직도 전국 15만 가구는 연탄에 의지해 겨울을 견딘다. 그런 와중에 닥친 코로나19는 설상가상이다. 김 전무는 "코로나 이후 기업 후원도 줄어 연탄 공장과 연탄을 때는 어르신들은 더 추운 겨울을 나는 중"이라며 안타까워했다.
김 할머니와 이 할머니가 살고 있는 쪽방촌도 재개발이 예정돼 있어 얼마 후면 사라지게 된다. "내가 가진 건 이 집 뿐인데, 그나마 얼마라도 보상 받으면 딸한테 그거라도 주고 가야지." 김 할머니의 옅은 미소가 식어가는 연탄재의 온기처럼 쓸쓸해보였다.
KPI뉴스 / 대전=조성아·김해욱 기자 jsa@kpinew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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