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준만의 직설] 이젠 윤석열판 내로남불인가

UPI뉴스

| 2021-12-20 17:09:29

유권자의 '내로남불 타도' 염원, 윤석열 존재의 근거
의혹과의 싸움 아닌 네거티브 전쟁 전락에 사죄해야

"윤 후보의 최종 사과에 담긴 '이유 여하를 불문하고'에 숨기지 못하는 억울함이 엿보인다."(권태호) "'이유 여하를 불문하고'라는 말을 쓴 것은 허위 경력 의혹을 인정하지 않겠다는 함의가 깔린 것으로 보인다."(송용창) "마지못해 하는 오만한 사과는 하지 않느니만 못하다."(권경애) "공정을 말하는 이라면 자신에게 더 가혹한 잣대를 들이대야 한다. 이 정도 판단을 못 한다면 대통령이 될 수 없으며, 설사 대통령이 된다 하더라도 문제다."(진중권)

국민의힘 대선후보 윤석열이 부인 김건희의 허위 경력 의혹 논란에 대해 사과한 것을 두고 유명 논객들이 내놓은 평가다. 나 역시 전적으로 동의한다. 전반적인 여론도 비슷한 평가를 내렸을 것이다. 윤석열의 문제는 의외로 심각하다. 이건 단지 사과의 품질에 관한 문제가 아니다. 그걸 넘어서 대선 후보로서의 기본 자세와 태도의 문제다.

잠시 두 달 전으로 돌아가보자.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 이재명이 국정감사에서 보여준 여러 의혹 대응을 두고 '이재명의 완승'이라는 평가가 지배적이었다. 국정감사는 전반적으로 이재명이 국민의힘을 비웃는 웃음소리만 돋보인 가운데, 야권에서조차 국민의힘 의원들의 무능을 비판하는 목소리가 나올 정도였다. 그러나 여론의 평가는 전혀 다르게 나왔다.

매일경제·MBN이 여론조사기관 알앤써치에 의뢰해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이재명 지사가 국정감사에서 대응을 잘했느냐'에 대한 문항에서 '매우 못했다'(31.4%) '못했다'(21.4%)는 부정적인 답변이 절반을 넘어 '매우 잘했다'(17.2%)와 '잘했다'(16.6%)는 답변보다 많았다. 이는 유권자들이 '태도'를 중시한다는 걸 의미하는 게 아닐까?

오늘의 윤석열을 만든 건 무엇인가? 2017년에서 2019년 사이에 나온 다음 명언들에 답이 있다. "내로남불은 민심과 국론을 갈갈이 찢는다."(서승욱) "차라리 '그때는 틀렸고 지금은 생각이 바뀌었다'고 말하라."(서복경) "내로남불은 나의 인식이자 우리의 패러다임이다."(김승현) "나는 앞으로도 이 표현이 애용(?)되며 결국엔 표준국어대사전에 오르리라 예상한다."(장강명) "왜 정치가 그토록 불신을 받느냐는 질문에 다양한 답변이 있을 수 있지만 나는 내로남불이 가장 중요한 원인이라고 생각한다."(금태섭)

내로남불은 문재인 정권의 DNA였다고 해도 좋을 정도로 문 정권의 내로남불은 극심했다. 그 내로남불을 지긋지긋하게 생각한 유권자들이 오늘의 윤석열을 만들었다. 제발 내로남불만큼은 하지 말아달라는 간절한 염원으로 그의 다른 결함들을 눈감아 준 것이다. 윤석열도 이를 모르진 않았다. 그는 11월 5일 국민의힘 대선후보 수락연설에서 "윤석열 사전에 '내로남불'은 없다"고 선언하지 않았던가.

윤석열의 사전은 'ㄴ' 항목이 통째로 찢겨져 나간 사전이었던가 보다. 그가 김건희 의혹 사건에 대해 그간 보인 반응은 의심할 바 없는 내로남불이었기 때문이다. 혹 지극한 부인 사랑 때문인가? 이를 의심한 동아일보 대기자 김순덕은 "대통령의 애처증은 병이다"고 경고했다. "윤석열은 끔찍한 부인 사랑에 대수롭지 않은 실수, 대수롭지 않은 시간강사 경력쯤으로 대충 넘기려 들었다. 이쯤 되면 대통령의 애처증은 치명상이 되고, 윤석열의 대선 구호인 '공정과 상식'은 개뿔이 되고 마는 것이다."

사과의 '제3자 효과'라는 게 있다. 정치인과 같은 공인의 경우엔 사과는 직접적인 당사자를 대상으로 하는 것이라기보다는 제3자, 즉 국민에게 자신의 생각과 의지와 태도를 보이는 행위라는 것이다. 그런데 윤석열은 그간 이 문제를 민주당과 벌이는 '네거티브 전쟁'이라는 '2자 게임'의 프레임으로만 이해해왔다. 국민은 안중에 없고 논란을 만들어내고 키우는 민주당에 대한 반감에만 집착했다는 것이다. 의혹에 관한 한 경쟁자보다는 자신이 덜 하다는 '비교우위론'이나 '차악론'을 내심 품었을 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기자들에게 당당하게 "시간강사는 공개 채용하는 게 아니니 가까운 사람 중 대학 관계자가 있으면 물어보시라"거나, "민주당 주장이 사실과 다른 가짜도 많지 않나"라는 말도 했을 것이다.

윤석열은 선거판의 '네거티브 전쟁'을 한번도 구경해본 적이 없는가? 의혹의 씨앗을 열매로 부풀려 반대편을 공격하는 건 여야를 막론하고 똑같이 구사해 온 선거의 문법이 아니었던가. 물론 그건 바람직하지 않은 관행으로 개혁되어야 할 것이지만, 윤석열이 그런 이야기를 하고자 했던 건 아니잖은가. 게다가 김건희 의혹 사건은 '씨앗'의 수준을 넘어 부풀려지긴 했을망정 상당한 실체를 갖고 있는 게 아닌가.

윤석열이 정작 주목했어야 할 일은 그런 의혹과 직접 싸우는 게 아니라 대선이 과거 그 어느 때보다 더 '네거티브 전쟁'으로 전락한 데에 자신이 져야 할 책임이 크다는 걸 인정하고 국민에게 진정으로 사죄하는 심정을 갖고 그걸 표현하는 것이었다. 국민에게 버전을 달리 한 윤석열판 내로남불을 또 한번 겪으라고 하는 건 결코 해선 안될 일이다. 대선 승패와 무관하게 '내로남불 타도'는 그의 존재 근거임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 강준만(전북대 신문방송학과 명예교수)

강준만(전북대 신문방송학과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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