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준만의 직설] 윤석열도 배우고 싶다던 이재명의 '깡'
UPI뉴스
| 2021-12-14 15:01:16
무모한 방향으로 흐르는 '긍정과 희망'은 자제해야
"무협지 화법으로 말하자면 난 '만독불침(萬毒不侵)'의 경지다. 포지티브가 아니라 네거티브 환경에서 성장했다. 적진에서 날아온 탄환과 포탄을 모아 부자가 되고 이긴 사람이다."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 이재명이 2018년에 한 말이다. 그런데 그게 어떻게 가능했던가? 무협지에 나오는 만독불침은 어떠한 독에도 당하지 않는 갑옷이라는데, 이재명에게 그런 기능을 해온 갑옷은 한마디로 말해서 '깡'이었다. 오죽하면 문재인 정권을 충격과 분노에 빠트릴 정도의 '깡'을 보여준 윤석열마저 SBS 예능프로그램 '집사부일체'에 나와 "이재명의 깡을 배우고 싶다"고 했겠는가.
대학 시절에 만나 이재명의 평생 친구가 된 이영진은 "이재명의 특징 중 특징은 두려움을 모르는 것"이라고 했다. 이재명도 자서전에서 두 번의 자살 기도가 실패로 끝난 뒤부터 "긍정과 희망이 나의 무기가 되었다"며 이렇게 말했다. "나는 겁이 없다. 살아가면서 어지간한 일에는 눈도 깜빡하지 않는다. 날 때부터 강심장이어서가 아니라 인생의 밑바닥에서부터 기어 올라왔기 때문이다."
개인적 차원에선 존경할 만한 품성이지만, 공적 차원에선 이런 의문이 든다. 깡과 '긍정과 희망'이 무조건 다다익선은 아닐진대, 과유불급의 문제는 없을까? 그는 국가적으로 매우 중대한 문제에 대해서도 너무 쉽게 말하는 건 아닐까? 개인과 국가는 다르지 않은가.
예컨대, 이재명은 2020년 8월 "제가 단언하는데 재난지원금을 30만 원씩 50번, 100번 지급해도 서구 선진국의 국가부채비율에 도달하지 않는다"는 주장을 폈다. 50회면 750조 원, 100회면 1500조 원이 든다는데, 그게 가능하며 바람직한 일일까? 이재명은 그런 논리의 연장선상에서 올 11월에도 전 국민 재난지원금 추가 지급을 강력히 요청했지만, 이는 국민이 60% 이상의 반대 여론을 통해 거부했다.
이재명은 11월 18일 결국 자신의 주장을 철회할 수밖에 없었지만, 철회의 명분으로 "지금 소상공인, 자영업자들이 처한 현실이 너무 어렵다"는 이유를 들었다. 이미 국민의힘 대선 후보 윤석열이 내놓은 '소상공인·자영업자 50조 원 지원'을 포퓰리즘으로 비난했는데, 방향 전환이 가능할까? 놀랍게도 이재명은 바로 입장을 바꿔 선거 전에 빨리 해치우자며 오히려 윤석열과 국민의힘을 향해 역공을 폈다.
이재명은 12월 6일 '소상공인과 함께하는 전국민 선거대책위원회 회의'에서 '낮은 국가부채비율'을 근거로 재정지출 확대를 요구하고 나섰다. 그는 "국가경제 유지비용을 가계와 소상공인에게 다 떠넘기고 국가부채비율을 50% 밑으로 유지하는 게 무슨 의미가 있냐"며 "국가부채비율이 낮다고 칭찬받지 않는다"고 했다.₶…
뒤늦게나마 소상공인과 자영업자를 생각하는 자신의 마음을 널리 알리려는 건 이해할 수 있지만, 국가부채비율에 관한 전문가들의 견해는 크게 다르다. 그걸 일일이 소개해봐야 우리와 같은 보통사람들로선 알기 어렵지만, 재정건전성이 필요하다는 정도는 잘 알고 있다. 그래서 전 국민 재난지원금 추가 지급에도 반대 여론이 높았을 것이다.
평소 이재명을 높게 평가해 온 국민의힘 총괄선대위원장 김종인은 이재명을 '변신의 귀재'라고 했다. 긍정적 의미로 쓴 말이다. 이재명이 보여준 놀라운 변신은 깡과 '긍정과 희망'이있기에 가능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런 생각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다.
처음부터 전 국민 재난지원금 대신 소상공인·자영업자들을 위한 손실 보상을 외쳤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재정건전성의 중요성을 부인하지 않으면서 그 필요성을 역설했더라면 어땠을까? 무조건 역공을 펴는 대신 자신의 입장 변화에 대해 좀더 겸허하고 성의있는 설명을 내놓으면 어떨까?
이재명의 개인적인 깡은 긍정 평가하면서도 그것이 국가적 차원에서 발휘될 때엔 좀 이상하고 무모한 방향으로 흐른다는 생각을 떨치기 어렵다. 전두환에 대한 평가가 상황에 따라 달라지는 것도 좀 어지럽다. 이런 어지러움을 느끼는 사람들을 향해 이재명이 "우리 사회의 가장 심각한 병폐가 흑백논리, 진영논리"라며 반박한 것도 영 이상하다. 그 말 자체로선 백번 옳지만, 그간 누구 못지 않게 '흑백논리, 진영논리'로 여겨질 발언을 많이 해온 분이 아닌가. 아무래도 깡과 '긍정과 희망'을 좀 자제하는 게 어떨까 싶다.
강준만(전북대 신문방송학과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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