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호의 문학공간] "포퓰리즘에 휘둘리는 바퀴벌레 같은 정치인들"

조용호 문학전문기자

jhoy@kpinews.kr | 2021-12-02 18:56:39

부커상 수상 영국 대표작가 이언 매큐언 신작 '바퀴벌레'
EU탈퇴 과정, 바퀴벌레가 몸 바꾼 정치인들 음모로 풍자
'미투'를 정적 제거 수단으로 활용한 여성 정치인의 민낯
"호모사피엔스의 욕망은 빈번히 그들의 지성과 충돌"

영국은 2016년 국민투표에서 유럽연합 탈퇴가 확정됐고, 이행기를 거쳐 지난해 1월 유럽연합에서 정식으로 탈퇴했다. 이른바 '브렉시트'를 놓고 영국 사회는 양분됐고 극심한 혼란을 겪었다. 보수당은 2015년 브렉시트 국민투표를 공약으로 내세워 총선에서 힘겹게 승리했지만, 그들의 예상과 달리 국민투표에서 EU 탈퇴가 과반을 넘긴 51.9%로 확정됐다. 카메론 총리가 책임을 지고 사퇴했고, 브렉시트를 제대로 이행하지 못한다는 이유로 후임 총리 메이도 사퇴했으며, 이후 존슨 총리에 이르러 브렉시트는 완성됐다. 


프랑스 호위암 충돌 사건은 당시 안개가 짙었고 영국 어선은 소형 목선이었으며, 무선응답기도 꺼져 있었던 상태에서 일어난 것으로 밝혀졌다. 모든 데이터가 사고임을 증명하고 이 같은 사실이 매스컴에 공개되자 궁지에 몰린 총리를 여성 장관이 구해준다. 교통장관 제인 피시는 십수 년 전 외무장관으로부터 '희롱과 괴롭힘, 외설적인 놀림, 그리고 언어폭력으로 이어지는 부적절한 신체접촉'을 당했고 '실제 강간은 없었다고 굳이 강조함으로써 자신의 이야기가 더 진실하게 들리도록' 받아들이게 하는 글을 신문에 기고한다. 이슈가 하루아침에 바뀌고 눈엣가시였던 인간 외무장관이 타격을 받는 것은 불문가지. 총리조차 놀라워했다.


"그는 제인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사악하고 무자비하며 냉혹한 거짓말. 그건 남성적 힘에 의한 진짜 피해자들에 대한 모욕이었다. 자신이라면 그 기사에 이름을 넣을 용기가 있었을지 궁금했다. 그 이야기는 마치 원자로가 스스로 열을 만들어내듯이 신문 지면이라는 틀에 갇혀 진실을 생성해냈다."

악의가 가짜뉴스를 만들어내고 이를 재생산하면서 급속히 확대시키는 시스템은 한국뿐 아니라 글로벌한 현상인 모양이다. 독일 수상이 "왜, 무슨 목적으로, 당신은 나라를 분열시키고 가장 가까운 우방국들을 적으로 돌리는 것인지" 거듭 묻자 총리는 답한다. "왜냐하면. 왜냐하면 그것이 우리가 하고 있는 일이기 때문에. 왜냐하면 그것이 우리가 믿는 것이기 때문에. 왜냐하면 그것이 우리가 하겠다고 말한 것이기 때문에. 왜냐하면 그것이 국민들이 원한다고 말한 것이기 때문에. 왜냐하면 나는 구원하러 온 것이기 때문에. 왜냐하면. 궁극적으로 그것이 유일한 대답이었다. 왜냐하면."

이언 매큐언은 자국의 포퓰리즘 정치에 "엄청나게 절망했다"면서 "이 작품으로 브렉시트에 대한 여론이 바뀌지는 않겠지만 어둠 속에서 짐승 같은 웃음을 통해 사람들의 기분이 조금은 나아지게 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고 말했다. 표에 휘둘려 신념을 포기하는 정치인들의 행태를 밀도 높은 풍자로 드러낸 이언 매큐언의 절망적인 시각은 마지막 부분, R데이를 성취한 후 바퀴벌레 동지들에게 행하는 총리의 마지막 연설에 선명하게 담겨 있다.


"우리 종의 역사는 최소 삼억 년입니다. 불과 사십 년 전만 해도 우리는 이 도시에서 소외집단으로 멸시 당했으며 냉소와 조롱의 대상이었습니다. …역방향주의라는 광기가 일반 대중을 더 가난하게 만들면 -반드시 그렇게 되어야 합니다- 우리는 번성할 것입니다. 착하고 성실한 보통 사람들이 그동안 속았고 앞으로 고통을 겪게 된다 하더라도, 그들은 다른 착하고 성실한 보통의 존재인 우리가 더 번성하고 더 큰 행복을 누리게 되리란 사실을 알게 되면 커다란 위안을 받을 것입니다. 전 세계적 행복의 총량은 줄지 않을 테니까요. 정의는 불변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지난 몇 개월 동안 우리의 임무를 위해 열심히 일했습니다. 여러분에게 축하와 감사를 보냅니다. 이제 여러분도 알게 되었겠지만 호모사피엔스사피엔스로 사는 건 쉽지 않습니다. 그들의 욕망은 너무도 빈번히 그들의 지성과 충돌합니다. 완전체인 우리와는 달라요. 여러분은 각자 한 사람씩 맡아서 그들이 전력을 다해 포퓰리즘의 수레바퀴를 밀도록 만들었습니다. 그 수레바퀴가 돌기 시작했으니 여러분은 노고의 결실을 보게 된 것입니다."

KPI뉴스 / 조용호 문학전문기자 jhoy@kpinew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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