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입자 보호 못하는 '임대차3법'…新세입자 들여도 '손배' 어려워
안재성 기자
seilen78@kpinews.kr | 2021-11-09 16:37:33
"집주인이 자기 돈으로 보증금 지불하면 재판서 세입자가 이기기 어려워"
A(36·여) 씨는 지난해말 만료가 된 전세계약의 갱신을 원했지만, 집주인의 실거주 선언에 어쩔 수 없이 집을 비웠다. 몇 달 후 집주인이 아닌 새로운 세입자가 사는 것 같은, 의심스러운 정황을 캐치한 B 씨는 주민센터를 찾아 확정일자를 요청했다. 하지만 주민센터는 개인정보라면서 확정일자 제공을 거부했다. B 씨는 변호사 선임을 검토했지만, 민사소송에 들이는 시간과 노력에 비해 손해배상금은 대단치 않다는 지인의 권유에 결국 자신의 권리를 포기했다.
B(33·남) 씨는 지난해말 자녀의 실거주를 내세우면서 전세계약 갱신을 거부한 전 집주인이 새로운 세입자를 들인 걸 확인하고는 민사소송을 제기했지만, 1심에서 패소했다. "자녀가 학교가 멀다는 이유로 이사를 원했다"는 집주인의 주장이 '정당한 사유'로 인정된 것이다. 법원은 특히 집주인이 C 씨에게 지불한 전세보증금이 새로운 세입자에게 받은 보증금이 아니라 집주인이 직접 대출받은 돈이란 점에 주목했다.
C(41·남) 씨는 올해초 집주인이 실거주한다며 전세계약 갱신을 거절하는 바람에 새 전셋집을 알아보느라 꽤나 고생했다. 기존 전세금보다 2억 넘게 올려서 겨우 근처에 새 전셋집을 구했는데, 몇 달 뒤 집주인이 그 집을 판 사실을 알고는 화가 치밀어올랐다. 하지만 방법이 없었다. 국토교통부에 문의해봤지만, 주택임대차보호법에는 매도 관련 손해배상 규정이 없다는 이야기를 듣고는 절망했다.
지난해 7월 세입자 보호를 목적으로 한 전월세 신고제, 전월세 상한제, 계약갱신청구권제 등 소위 '임대차3법'이 실제 현실에서는 거의 효과를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 잇따르고 있다.
이미 부동산 카페 등을 통해 집주인들 사이에 계약갱신청구권을 무력화시키는 방법이 돌고 있으며, 실제로 효과를 거둔 사례도 꽤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실거주를 내세워 계약 갱신을 거부한 집주인 또는 집주인의 직계 존·비속에게는 최소 2년 간의 실거주 의무가 주어진다. 이를 위반해 새로운 세입자를 들이면, 전 세입자에게 손해배상금을 지불해야 한다.
그러나 전 세입자가 실제로 손해배상을 받는 과정은 매우 험난하다.
우선 신규 세입자가 들어왔는지 알아보려면, 전 세입자가 확정일자를 확인해야 한다. 확정일자는 집이 경매로 넘어가는 상황 등에 대비해 세입자가 우선 변제권을 얻을 수 있도록 한 제도로, 확정일자가 부여됐다는 건 집주인과 새로운 세입자 간 계약이 성사됐다는 뜻이다.
하지만 전 세입자가 이를 확인하려 해도 주민센터에서 개인정보라는 이유로 거절하는 경우가 부지기수다. 민사소송을 제기하려 해도 변호사 비용, 시간, 노력 등 전 세입자의 부담이 크다.
어렵게 재판을 진행했는데 패소하는 일까지 벌어진다. 임대차법에서는 집주인이 '정당한 사유' 없이 새로 임대를 한 경우만 손해배상 청구 대상으로 명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거꾸로 말하면, 집주인에게 교육, 직장, 부모 봉양 등 정당한 사유가 있으면 손해배상을 안 해도 되는 것이다. 물론 집주인은 나름대로 정당한 사유를 내밀기에 세입자는 힘든 소송전을 펼쳐야 한다.
법무법인 관계자는 "특히 집주인이 전 세입자의 전월세 보증금을, 신규 세입자에게 받은 돈이 아니라 대출 등 자신이 마련한 돈으로 지불했을 때에는 재판에서 전 세입자에게 무척 불리해진다"고 밝혔다.
또 집주인이 몇 달 살다가 해당 주택을 매도할 때는 아예 세입자가 대응할 방법이 없다. 국토부 관계자는 "임대차법에서는 '제삼자에게 임대한 경우'만을 손해배상 대상으로 규정하고 있다"며 "매도는 포함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그는 "대신 민법 제750조에 따라 집주인이 처음부터 매도를 목적으로, 즉 허위로 계약 갱신을 거절한 경우 불법행위에 의한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실제로 허위 갱신 거절 여부를 전 세입자가 입증하기는 불가능에 가깝다는 것이 법조계 중론이다.
한 변호사는 "집주인이 처음부터 악의였다는 것을 입증해야 하는데, 집주인이 몇 달 동안 전입신고만 해놔도 입증이 무척 힘들다"고 강조했다. 그는 집주인이 실제로 거주하지 않았더라도 그 역시 입증하기 어렵다고 고개를 저었다.
집주인이 기존 세입자를 내보내려고 애쓰는 것은 단지 전세금을 올려받기 위해서가 아니다. 기존 세입자가 나가야 좋은 가격에 집을 팔 수 있기 때문도 꽤 크다.
모든 주택 매수자들은 세입자가 없는 집을 가장 선호한다. 그래야 자기가 들어가 살거나 새로운 세입자를 받거나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세입자가 있는 집 중에서는 전세금이 높을수록 환영받는다.
부동산업계 관계자는 "예를 들어 매매가 10억 원인 집에 전세가가 6억 원이라면, 매수자는 4억 원의 현금만 마련하면 된다"며 "그러나 전세가가 4억 원일 때는 매수자의 부담이 6억 원으로 불어난다"고 지적했다. 이어 "후자의 경우는 보통 전자보다 매매가가 5000만 원에서 1억 원 가량 내려가기 마련"이라고 덧붙였다.
즉, 집주인 입장에서는 세입자를 어떻게든 내보낸 뒤 해당 주택을 매도하기만 해도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는 것이다. 하지만 여기에 세입자는 대응할 방법이 없다.
KPI뉴스 / 안재성 기자 seilen78@kpinew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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