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모질게 한 것 사과"…文대통령 "1위 되니 그 심정 알겠죠"

김광호

khk@kpinews.kr | 2021-10-26 13:12:46

文 "명·낙 회동 아주 좋았다…끝까지 많이 도와 달라"
李 "나는 文정부 일원…역사적 정부로 남도록 최선"
文 "다음 정부 짐 커"…李 "그 짐 제가 졌으면 좋겠다"
李 후보 선출 16일만 면담…靑 "대장동 '대'자 안나와"

'현재 권력' 문재인 대통령과 '미래 권력'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선후보가 26일 오전 청와대 상춘재에서 만났다. 이 후보가 민주당 경선에서 승리한 지 16일 만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26일 청와대 상춘재에서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선후보와 차담에 앞서 얘기를 나누고 있다. [뉴시스]

문 대통령은 이날 이 후보를 청와대로 초청해 상춘재에서 50분간 차담회를 가졌다. 현직 대통령과 여당 20대 대선후보의 공식 만남은 이번이 처음이다.

문 대통령은 흰 셔츠에 짙은 남색 정장차림이었다. 이 후보는 흰 셔츠에 검은 정장을 차려 입었다. 모두 넥타이는 매지 않았다.

상춘재에 먼저 도착한 이 후보는 계단으로 내려가 녹지원에서 직접 문 대통령을 맞았다. 문 대통령이 경선 과정을 염두에 둔 듯 "그동안 고생 많이 하셨다"고 말하자 이 후보는 "아닙니다. 원래 하던 일인데요"라고 화답했다.

상춘재 앞에서 문 대통령과 기념사진을 촬영한 이 후보는 "가보로 간직하도록 하겠다"며 사의를 표했다.

환담장으로 이동해 이 후보와 마주 앉은 문 대통령은 후보 선출 축하인사를 건넸다.

문 대통령은 "(당내 대선 경선) 경쟁을 치르고 나면 그 경쟁 때문에 생긴 상처를 서로 아우르고 하나가 되는 게 중요한데 그런 면에서 이낙연 전 대표와 (만난 것은) 아주 좋았다"고 만족감을 표했다.

이어 "겪어보니까 역시 제일 중요한 것은 정책 같다"며 "대선 과정에서 정책을 더 많이 개발하고 정책을 통한 선의의 경쟁을 펼쳐달라"고 주문했다.

전날 예산안 시정연설과 관련해선 "내년도 예산은 우리 정부보다 다음 정부가 쓸 몫이 훨씬 많은 예산이다. 이를 감안해 편성을 했다"며 "제가 첫 해에 갑자기 중간에 예산을 인수해 추경 편성 등 어려움을 겪었다"고 설명했다.

지난 2017년 당내 대선 후보 경선도 화제로 삼았다. 문 대통령은 "지난 대선 때 저하고 경쟁했고 경쟁을 마친 후 함께 힘을 모아 정권교체를 해내고 그동안 대통령과 경기지사로서 함께 국정을 끌어왔다"고 회상했다.

문 대통령은 "이제 나는 물러나는 대통령이 되고 이 후보가 새로운 후보가 돼서 여러모로 감회가 새롭다"며 "끝까지 많이 도와 달라"고 당부했다.

이 후보는 "대통령님을 일대일로 뵙기가 쉽지 않은데 초대해주셔서 정말 감사드린다"며 "문 대통령께서 지금까지 민주당의 핵심 가치라고 하는 민생, 개혁, 평화의 가치를 정말 잘 수행해주신 것 같다"고 치켜세웠다.

그는 "어제 대통령께서 시정연설하신 내용을 보니까 제가 하고 싶은 얘기가 다 들어 있어 너무 공감이 많이 갔다"며 "새로운 전환의 시대에 미래 산업 재편, 국가의 대대적 개입은 제가 너무 공감이 많이 갔다. 정말 그렇게 해야 될 것 같다"고 호응했다.

그러면서 "저는 경기지사로 문재인 정부의 일원이다. 문재인 정부가 성공하고 역사적인 정부로 남도록 최선을 다하도록 하겠다"고 다짐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26일 청와대 상춘재에서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선후보와 차담을 하고 있다. [뉴시스]

청와대 이철희 정무수석은 두 사람 대화 내용을 브리핑했다.

이번 만남에 유일하게 배석한 이 수석은 두 사람이 기후변화 위기나 경제정책 등에 대해 의견을 주고받았지만 선거 정국에 관련된 얘기는 나누지 않았다고 전했다. 정국 최대 현안인 대장동 개발 비리 의혹에 대해선 "대장동의 '대(大)'자도 나오지 않았다"고 선을 그었다.

이 수석에 따르면 두 사람의 차담은 50분 내내 화기애애한 분위기에서 진행됐다. 대선을 4개월여 앞두고 정치적 중립성 논란을 의식한 듯 대장동 의혹이나 부동산 문제 등 현안보다 '정책 경쟁' 당부와 덕담이 오갔다고 한다.

이 후보는 문 대통령에게 지난 대선 때 갈등을 사과했다. 그는 "따로 뵐 기회가 있으면 하려고 마음에 담아 둔 얘기를 꼭 드리고 싶다"며 "지난 대선 때 제가 조금 모질게 했던 부분에 대해서는 사과한다"고 밝혔다. 이 후보의 사과는 임기 말에도 차기 대권 후보들과 비슷할 정도로 높은 지지율을 구가하는 문 대통령의 지지층을 공략하려는 포석으로 풀이된다.

그러자 문 대통령은 "이제 1위 후보가 되니까 아시겠죠? 그 심정 아시겠죠?"라고 농담조로 답했다. 

기후변화 대응에 대한 대화도 오갔다. 문 대통령은 "코로나 위기로 디지털 전환이 빨라지고 기후위기도 가속화하는 역사적 시기"라며 "이 짐은 현 정부가 지는 것보다 다음 정부가 지는 것이 더 클 것 같다"고 우려했다.

이 후보는 "그 짐을 제가 질 수 있으면 좋겠다"고 웃으며 말했다. 청와대 입성에 대한 의지를 보인 것이다. 

이 후보는 경제 문제에 대해 "확장재정을 하는 것이 좋겠다"고 견해를 밝혔다. 문 대통령은 "대기업들은 (사정이) 굉장히 좋아 생존을 넘어 대담한 목표를 제시하지만, 그 밑의 작은 기업들은 힘들어한다"며 "기업들을 많이 만나보라"고 조언했다.

대장동 관련 언급이 없었다. 이 수석은 "대장동의 '대'자도 나오지 않았다. '검찰'이나 '수사'라는 단어 자체가 없었다"며 "부동산에 대해서도 특별한 언급은 없었다"고 설명했다.

이 수석은 또 "대북정책 얘기도 하지 않았다"며 "무거운 얘기를 피하다 보니 가볍게 얘기할 수밖에 없었다. 제가 소개해드린 농담들도 서로 편하게 주고받은 것"이라고 전했다.

내년 대선을 앞두고 정치적 논란을 우려한 청와대가 사전에 이 후보 측에 요청했고 그 결과 민감한 사안에 대한 대화가 이뤄지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KPI뉴스 / 김광호 기자 khk@kpinew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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