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오락가락 가계부채 대책'에 멍드는 소비자들
안재성 기자
seilen78@kpinews.kr | 2021-10-15 16:12:23
소비자 혼란…"靑·與에 휘둘릴 거면 말도 꺼내지마라"
"대출 걱정에 여러 날 밤을 지새웠는데, 허탈하다.", "대출을 억제하겠다는 건지, 아니라는 건지 혼란스럽기만 하다."
고승범 금융위원장은 지난 14일 "전세대출 판매 중단은 없으며 전세대출 확대로 올해 가계부채 증가율이 목표치인 6%대를 초과하더라도 용인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를 들은 소비자들의 감정은 '허탈함', '혼란', 그리고 '분노'였다.
고 위원장은 내정자 신분일 때부터 가계부채 급증과 그로 인한 자산가격 폭등 등 금융불균형을 우리 경제의 '심각한 위협'으로 거론했다. 그러면서 반드시 잡겠다는 의지를 수차 표했다. 심지어 실수요자 대출이라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규제조차 적용되지 않는 전세자금대출까지 틀어막겠다고 했다.
지난 6일 국회 국정감사에서도 "전세대출 등 실수요자 대출 역시 상환능력 범위 내에서 관리돼야 목표치를 달성할 수 있다"며 '6%대'라는 목표치를 금과옥조처럼 내밀었다.
눈치를 보던 은행들은 하나둘씩 대출 상품 판매를 중단했고 소비자 불안감은 극도로 치솟았다. 특히 전세계약 기간이 곧 만료되거나 신혼 등의 이유로 거액의 전세보증금이 필요한 세입자들은 거의 '멘붕' 지경이었다.
소비자 다수는 비싼 이자를 감수하면서 서둘러 대출을 받으려고 은행 곳곳으로 '발품'을 팔았다. 일부는 돈이 급하지 않은데도 대출을 받거나 2금융권을 두드렸다.
하지만 고 위원장의 강경하던 대출규제 입장은 결국 뒤집혔다. 6일 국감 발언을 감안하면 겨우 8일만이다. 어떤 희생을 치르더라도 반드시 지켜내겠다던 '6%대' 목표치도 의미를 잃었다.
대통령의 지시 때문이었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6일에 이어 14일에도 "실수요자 대상 전세대출과 잔금대출이 은행 등에서 차질 없이 공급되도록 금융당국은 세심하게 관리하라"고 강조했다. 대선을 앞두고 실수요자 피해에 따른 민심 이반 가능성을 우려한 주문이었을 것이다.
금융당국이 '높은 곳'의 요구에 손바닥 뒤집듯 입장을 바꾸는 것이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DSR 규제 강화 등 올초부터 대출 억제에 진력하다가 4·7 재보선에서 참패한 여당이 규제 완화를 요구하자 곧바로 주택담보대출비율(LTV) 규제를 최대 70%까지 완화했다.
'관료는 영혼이 없다'던가. 언젠가부터 대한민국 공직 사회에 '자기변명의 레토릭'으로 회자하는 이 말은 원래 독일 사상가 막스 베버(1864~1920)가 현대 관료제를 비판하기 위해 사용한 말이다. 베버의 시각에서 현대 관료제는 영혼이 없는 기계다. 베버의 비판을, 대한민국 관료들도 피해가기 어려울 듯하다.
고 위원장도 할 말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의 완강한 태도를 보며 불안감에 시달렸던, 또 오락가락 '가계부채 대책'에 혼란을 겪은 소비자에게는 의미없는 변명일 뿐이다.
"청와대·여당에 휘둘릴 거면 말도 꺼내지 마라"는 한 소비자의 분노가 정답이다. 앞으로 금융당국은 정책을 발표할 때 맨 뒤에 이런 문구를 덧붙이면 어떨까. "지금 발표한 내용에 대해 청와대와 여당의 허락을 구한 뒤 진행하겠습니다"라고.
KPI뉴스 / 안재성 기자 seilen78@kpinew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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