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담대 억제하라!"…담보 감정가 깎는 은행 심사부

안재성 기자

seilen78@kpinews.kr | 2021-09-02 16:10:40

7~8월 5대 은행 주담대 7.7조 급증…비상 걸린 은행
"감정평가법인 감정가·국민은행 시세보다 깎는 경우 늘어"

최근 은행에 주택담보대출을 신청했다가 담보로 내놓은 주택의 감정가가 예상치를 훨씬 밑돌아 곤란을 겪는 소비자들이 늘고 있다.

이는 7~8월 주택담보대출이 급증하면서 비상이 걸린 은행 심사부가 담보주택의 감정가를 일부러 낮춰 적용한 때문으로 알려졌다. 대출액을 줄이기 위해 감정평가법인이 산출한 감정가나 KB국민은행 시세보다 깎아서 적용하는 것이다.

▲ 최근 가계대출 억제를 위해 은행 심사부에서 주택담보대출 담보주택의 감정가를 낮춰 잡는 경우가 종종 발생하고 있다.[셔터스톡] 

A 씨는 지난 7월 생활안정자금 목적으로 주거래은행에 1억 원의 주택담보대출을 신청했다. 담보는 A 씨가 실거주 중인 주택이었다. 과거에 주택을 매수하면서 받아놓은 주택담보대출이 아직 남아 있지만, 요새 집값이 많이 올라 추가 대출이 가능할 것으로 기대했다.

그러나 해당 주택에 은행이 감정가를 6억3000만 원으로 산정하면서 대출액도 7000만 원으로 축소해야 한다는 연락을 받았다.

불과 한 달 전에 바로 옆집(같은 평수)이 9억 원에 팔린 것을 아는 A 씨는 황당했다. 그는 주거래은행에 신청한 대출을 중단하고, 종신보험을 가입해 둔 생명보험사를 찾았다.

해당 생보사에서는 A 씨의 주택 감정가를 7억3000만 원으로 평가했다. A씨는 약간 더 높은 금리를 지불하긴 했지만, 원하는 대로 1억 원의 대출을 받을 수 있었다.

A 씨는 "같은 주택이더라도 감정평가법인에 따라 감정가가 조금씩 달라진다는 것은 알지만, 1억 원이나 차이나는 건 도무지 이해하기 힘들다"며 눈살을 찌푸렸다.

고소득 전문직이자 다주택자인 B 씨는 얼마 전 주거래은행을 바꿨다. 그는 편한 관리를 위해 몇 개의 은행에 흩어져 있던 약 3억 원의 주택담보대출을 새로운 주거래은행으로 옮기면서 추가적인 대출까지 받는 걸 검토했다.

지난 8월초 창구의 은행원은 컴퓨터로 계산해본 결과, 3억 원의 대환대출은 물론, 1억 원 추가 대출까지 나올 것 같다고 제시했다. 다주택자는 주택담보대출비율(LTV)이 30%로 제한되지만, 요새 집값이 폭등한 덕에 B씨 소유 아파트의 국민은행 시세도 크게 오르면서 아슬아슬하게 가능하다는 이야기였다.

하지만 8월 중순쯤 심사부를 거쳐 나온 결과는 실망스러웠다. 해당 은행의 심사부는 B 씨 소유의 아파트에 대해 국민은행 시세보다 낮은 감정가를 매겼으며, 때문에 추가 대출은 6000만 원까지만 가능하다고 알려왔다.

이런 현상은 최근 은행 주택담보대출이 급증하면서 심사부의 태도가 몹시 깐깐해진 탓으로 풀이된다.

금융권에 따르면, 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 5대 은행의 올해 8월 말 가계대출 잔액은 698조8149억 원으로 전월말보다 3조5068억 원 늘었다. 7월(6조2009억원)에 비해 증가폭이 절반 가까이 축소됐다.

그러나 주택담보대출은 3조8311억 원이나 급증해 7월(3조8234억 원)에 이어 두 달 연속 4조 원 가까운 증가폭을 기록했다. 7~8월 주택담보대출 증가액은 7조6545억 원에 달한다. 지난 6월 6517억 원까지 줄었던 주택담보대출 증가액이 갑자기 확대된 것에 대해 시중은행 관계자는 "7월부터 LTV 규제가 완화된 영향인 듯하다"고 진단했다.

집값 폭등세와 가계대출 급증세가 가라앉지 않으면서 고승범 신임 금융위원장이 취임 전부터 '가계부채와의 전쟁'을 선포했다.

금융당국의 강한 압박에 은행에도 비상이 걸렸다. NH농협은행이 주택담보대출 등의 취급을 중단하는 등 은행들은 여러 대출 상품의 판매를 중단했으며, 신용대출 한도를 축소했다. 여기에 더해 주택담보대출에 대한 심사부의 태도도 깐깐해진 것이다.

B 씨에게 대출 상담을 했던 창구 직원 C 씨는 무척 난감해 하면서 "요새 심사부가 주택 감정가를 예전보다 훨씬 낮게 평가하는 양상"이라고 말했다. 그는 "과거 기준으로 고객에게 대출이 가능할 거라고 소개했다가 곤란한 상황을 겪은 게 여러 번"이라고 한숨을 쉬었다.

일반적으로 주택을 매수할 때의 주택담보대출 LTV는 매매 가격을 기준으로 책정된다. 그 외 생활안정자금, 대환대출 등은 은행이 따로 감정가를 산정한다.

대개 대형 아파트 단지는 국민은행이 제공하는 시세 정보를 기준으로 하고, 국민은행 시세 정보가 없는 소형 아파트나 빌라 등은 감정평가법인에 의뢰해 감정가를 받는다. 시중은행 관계자는 "은행들은 보통 10여 곳의 감정평가법인과 거래한다"며 "어느 법인에 평가를 맡길 지는 랜덤으로 결정한다"고 설명했다.

국민은행 시세나 감정평가법인의 감정가를 그대로 적용하는 것은 아니다. 금융권 고위관계자는 "실제 대출에 적용하는 주택 감정가는 심사부가 어느 정도 유도리(ゆとり·시간, 금전, 기력 등의 여유를 뜻하는 일본말)를 가지고 대응한다"며 "이는 본래 고객이 원하는 대출액을 되도록 맞춰주기 위한 관습"이라고 밝혔다.

국민은행 시세나 감정평가법인의 감정가는 대부분 실거래가보다 낮다. 특히 LTV는 겨우 40%에 불과해 조금 더 빌려줘도 은행이 손실을 낼 가능성은 거의 없다.

금융권 고위관계자는 "작년 3분기까지만 해도 신용도가 높은 고객에게는 한도 이상의 특별 신용대출을 종종 집행했다"며 "이와 마찬가지로 은행과 고객의 '윈윈'을 추구하려는 제도였는데, 요새는 거꾸로 작용하는 모습"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금융당국의 태도가 너무 엄격하다보니 최근 심사부에서 감정가를 10% 가량 깎는 케이스가 종종 발생하고 있다"며 "감정가를 낮춰 대출액을 줄이는 것이 목적"이라고 말했다.

KPI뉴스 / 안재성 기자 seilen78@kpinew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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