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조건 속 대기록 피카소전…"사명감으로 극복했죠"
탐사보도팀
tamsa@kpinews.kr | 2021-08-27 11:02:16
피카소전 작품 가액, 코로나 속 흥행 등 신기록 세워
작품 섭외하려 13시간 동안 3000㎞ 운전한 적도 있어
"이건희 컬렉션 통해 미술관의 국제적 교류 활발해져야"
국내 블록버스터 전시기획의 대가, 최고의 전시 커미셔너로 손꼽히는 이가 있다. 서순주 전시총감독(58)이다. 미술전시업계에서 그의 존재감은 설명할 필요가 없을 정도.
서 감독은 홍익대 대학원에서 미술사를 공부하고 1984년 프랑스로 건너가 몽펠리에 대학에서 미술사와 고고학 석사를, 스트라스부르그 대학에서 미술사 박사학위를 받았다.
이후 2004년 샤갈전을 시작으로 모네, 반 고흐, 르느와르, 로댕, 밀레, 모딜리아니 등 초대형전시를 연이어서 성공시켰다. 국내 미술 팬들이 해외 미술관에 직접 가지 않고도 한국에서 세계적 명화를 볼 수 있게 된 데는 서 감독의 공이 크다.
지난 5월 1일 시작해 오는 29일까지 서울 서초동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에서 열리는 '피카소 탄생 140주년 특별전'(비채아트뮤지엄 주관) 역시 그의 손에서 탄생했다. 피카소전 막바지를 앞두고 있던 지난 24일 서순주 전시총감독을 예술의전당에서 만났다.
—코로나 상황이라 전시회 개최에 어려움이 있었을 텐데, 피카소전 반응이 뜨거웠다.
"방역 등 여러 가지 신경 쓸 것들이 많았다. 다행히 큰 문제없이 잘 치르게 됐다. 전시나 문화콘텐츠 사업이라는 게 결국 많은 대중들이 공유할 있는 콘텐츠를 제공하는 것이고, 저렴한 가격에 자유롭게 문화를 공유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전시 기획자의 사명이기도 하다. 전시기획자로서 기쁠 때는 많은 분들이 와서 봐주고 만족하는 것을 볼 때다. 작은 돈으로 큰 행복을 드릴 수 있다는 것이 가장 큰 보람이다."
—한국전쟁을 소재로 그린 '한국에서의 학살'이 이번에 처음 들어왔다는 것이 큰 의미가 있었다.
"이번 전시는 '한국에서의 학살'이 포함되는 전제로 기획된 것이었다. 작품은 사실 한 점을 빌려오는 일도 힘들다. 그동안 쌓아온 신뢰가 있기 때문에 내게는 크게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한국에서의 학살'은 잊혀 있다가 2000년대 들어와서 크게 주목받기 시작했다. 예전에 국내 전시를 위해 국립현대미술관에서도 노력했었지만 무산됐었다. 어차피 언젠가는 한국에 와야 할 작품이었기 때문에 내가 들여와야겠다고 생각했다.
기획을 할 때마다 그 작가의 걸작을 가져와야겠다는 생각을 늘 한다. 고갱의 '우리는 어디서 왔는가, 우리는 누구인가, 우리는 어디로 가는가?'도 내가 가져왔었다. 필요한 작품이 있다면 무슨 수를 써도 가져와야겠다는 사명감이 있다."
현지 시장 찾아가 설득해 작품 섭외 성사시키기도
서 감독은 전시 테마가 정해지면 관련 작품을 들여오기 위해 외국 미술관과 화랑을 모두 뒤지다시피 한다. 간혹 개인소장품도 있기 때문에 일일이 만나 설득하고 조율하는 과정 모두에 그의 노력이 담겨있다. 2019년 '피카소와 큐비즘'전 당시에는 피카소의 청색시대 걸작인 '솔레르씨의 가족'을 섭외하는 과정에서 아찔한 경험이 있었다고 한다. 작품을 소장하고 있는 벨기에 리에주 근대미술관 측에서 전시를 얼마 앞두고 갑자기 빌려줄 수 없다고 통보해 왔던 것. 서 감독은 "직접 현지로 가 리에주시 시장을 만나 결국 협상에 성공했었다"고 말했다.
—작품을 들여오기까지의 과정이 쉽지 않을 텐데.
"유명 작품들은 이미 몇 년 간 대여 예약이 되어 있는 경우가 많다. 스케줄을 조율하는 것이 가장 큰 일이라고 할 수 있다. 다행히 외국 미술계의 인맥과 신뢰가 있어 설득하는 데엔 큰 무리가 없다. 물론 발품을 팔아야 하는 일이다. 작품을 섭외하기 위해 파리에서부터 코펜하겐까지 3000km가 넘는 거리를 차를 몰고 13시간 동안 운전한 적도 있다. 그렇게 일 때문에 자연스럽게 여행을 하는 것이 유일한 취미가 된 것 같다."
—명화의 원작이 주는 가치는 무엇인가.
"명화에는 감동이 있다. 디지털 시대에 수많은 이미지의 홍수 시대에 살아가면서 느끼는 단편적이고 피상적인 감동과는 차원이 다르다. 명화가 주는 정신의 울림이 전 세계적으로 미술관이 존재하는 이유이고, 우리가 여행갈 때 미술관을 찾게 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물론 시대에 따라 새로운 예술과 문화가 만들어지는 법이다. 근래 디지털을 이용한 전시가 성행하는 것도 그 때문이다. 19세기에 사진이 발명되면서 새로운 예술 장르가 됐듯 시대에 따라 또 다른 예술이 만들어지는 것 역시 바람직한 시대상이라 볼 수 있다."
"피카소 작품 어렵지만 유명해서 대중들이 좋아하는 것"
—피카소 작품을 사람들이 좋아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피카소를 좋아하는 이유는 딱 한 가지, 유명하기 때문이다. 인간의 본성은 본래 사실적이고 아름다운 그림을 좋아하게 되어있다. 추상은 난해하고 피곤하다. 나 역시 개인적으로는 렘브란트와 같은 아름다운 그림을 그리는 작가를 좋아한다.
피카소는 미술사적으로 봤을 때 전통을 파괴한 혁명이라는 데에 의미가 있는 것이다. 스물여섯의 피카소가 그린 '아비뇽의 처녀들'은 회화의 고정관념을 부숴버린 급진적인 작품이었다. 이 작품으로 인해 미술사에 가장 파격적 혁명이라 일컫는 입체주의가 시작됐고, 이는 모더니즘의 출발로 이어졌다. 피카소는 '나는 보는 대로 그리는 것이 아니라 생각하는 대로 그린다'고 말했다. 창작의 주체가 자연이나 사물이 아니라 인간의 사고에서 출발한다는 것을 선언한 것이다."
"평생 동안 나는 사랑만 했다. 사랑 없는 삶은 생각할 수가 없다"고 말했던 피카소. 그의 인생과 작품에서 그가 만나온 수많은 여성들의 이야기를 빼놓을 수 없다.
올리비에를 통해 장미시대와 입체주의 시대를 열었고, 에바 구엘을 만나 입체주의를 꽃피웠으며, 올가와는 고전주의 시대를 함께 했고 마리테레즈, 도라 마르와는 초현실주의 시대의 동반자가 됐다.
—피카소 작품엔 아내와 애인이었던 많은 여성이 등장한다.
"피카소는 의외로 여행을 많이 하지 않았다. 이태리 외에는 거의 가본 적이 없다. 프랑스 땅을 벗어나지 않았다. 보통 우리는 여행을 통해 다양한 곳을 가보면서 세상을 보게 되는데, 피카소는 새로운 여성을 만나면서 교감을 나누고 영감을 받은 것이다. 피카소의 삶과 예술은 그가 함께한 여인들을 통해 만들어졌고 그 여인들과 만남, 이별을 반복하면서 그의 예술은 발전해갔다. 요즘 시대에 태어났다면 피카소가 그렇게 왕성한 에너지로 작품 활동을 하지 못했을 수도 있다. 얼마 전에 스페인 피카소 미술관 앞에서 젊은 여성들이 피카소는 성 마초라고 데모를 한 적도 있다. 피카소의 삶이 요즘 시대에 맞지 않다는 것이다. 도덕적인 잣대를 떠나 그가 많은 여성들을 만나지 않았다면 그렇게 많은 작품들을 남기지 못했을 것이다."
ㅡ이번 전시가 성공적으로 마무리돼 다음 전시회 부담도 되겠다. 다음 전시회 기획은?
"이번 피카소전시회를 주관한 비채아트뮤지엄과 함께 고흐 모네 등 대가들의 작품전을 유럽 유명 미술관들과 직접 접촉하며 기획 중이다. 요즘 미술 애호가들에게 큰 인기가 있는 에드워드 호퍼 작품 전시도 국내 최초로 기획 중에 있다. 어떤 전시가 먼저 성사될 지는 조만간 가닥이 잡힐 것 같다. 이번 전시회를 통해 진품 명화에 대한 관람객들의 갈증을 확인했다. 다음 전시도 대가들의 명화로 채워 높아진 관람객들의 기대(needs)에 적극 보답하겠다.
"이건희 컬렉션, 가치 없는 작품들도 더러 있어"
—이건희 전 삼성 회장이 사망하며 '이건희 컬렉션'이 처음 대중에게 공개됐는데, 어떤 의미가 있다고 보나.
"내용적으로는 별 볼일 없고 가치 없는 작품들을 샀구나 싶은 것들도 일부 섞여 있다. 다만 대한민국에 이 정도의 컬렉션을 가진 사람이 있다는 것 자체가 의미 있는 일이다. 외국 미술관과 서로 대여 교환이 이루어지려면 우리도 대형 컬렉션을 보유하고 있어야 한다. 국내 대형 미술관들은 말만 국립이지 아직까지 국제적 기능을 못하고 있다. 컬렉션이 풍요로워져야 중요한 미술관으로 올라서게 된다. 이건희 회장이 기증한 모네의 '수련'과 같은 명화들을 외국 미술관에 대여해 주면서 서로 교류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앞으로 이건희 컬렉션을 통해 국제적 교류가 활발해진다는 건 매우 중요하다."
—전시 기획자로서 국제 규모의 전시가 많이 이루어지기 위해 필요한 것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우리나라는 제대로 된 미술관 수가 절대적으로 부족하다. 정부와 각 지자체, 더 많은 기업들이 문화 시설에 대한 투자를 했으면 한다. 문화공간이 많아져야 더 많은 사람들이 문화 체험을 할 수 있다.
교육은 말보다는 체험이 중요하다. 모든 창작은 호기심에서 시작한다. 어린 아이들이 엄마 손 잡고 미술관에 와서 피카소를 본 기억은 평생을 간다. 어떤 아이에게는 그 경험이 인생의 중요한 키로 작용한다. 그 결과는 커서 반드시 드러나게 된다."
KPI뉴스 / 조성아 기자 jsa@kpinew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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