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호의 문학공간] "이야기는 바람의 것, 주인공은 누구도 될 수 없으니"

조용호 문학전문기자

jhoy@kpinews.kr | 2026-08-14 17:18:11

현실과 헛것 경계 넘는 짧은소설집 '눈보라' 작가 부희령
신화와 설화, 역사와 허구들 배합해 지금 여기를 비추는
이야기가 지닌 힘을 돌아보게 만드는 짧지만 깊은 성찰
"문학의 '여백'이야말로 AI시대 가짜 쾌락 극복하는 길"

이야기에는 주인이 없다. 기원은 모호하고 결말은 방향을 자주 바꾼다. 일단 어디선가 시작되면 눈덩이처럼 커지며 굴러간다. 시대와 장소에 따라 주인공의 정체성과 거쳐 가는 경유지가 달라져도, 전하는 말에 따라 색채와 분위기가 바뀌어도, 이야기는 하염없이, 속절없이, 구르고 또 구른다. …휘몰아치던 눈보라처럼, 현실과 헛것이 서로 맞닿아 경계선이 무너질 때 태어나는 것이 바로 이야기다. _'작가의 말'

 

▲ 이야기의 주체를 인간에 국한하지 않고 모든 사물과 생명으로 확장시킨 소설가 부희령. 최근 출간한 짧은소설 모음집은 동서양 고금의 이야기를 끌어와 정갈한 문장으로 지금 여기를 성찰한다. [작가 제공]

 

소설가 부희령이 경계를 허물고 모두의 목소리를 담아내는 짧은소설집 '눈보라'(사유악부)를 펴냈다. 사람은 물론 귀신과 나무, 고래와 달팽이까지 중심에 세운 글들이 동학과 신화와 민담을 자유롭게 넘나들며 정갈한 문장으로 펼쳐진다. 경향신문에 연재했던 칼럼 '이야기의 발견'을 모태로 확장한 이 소설집은 현실과 헛것, 인간과 비인간, 역사적 비극과 동시대적 고통의 경계를 허무는 '이야기의 바다'로 나아간다.

부희령은 어느 겨울 제주에서 심한 눈보라를 만났다고 했다. 도로 위에는 자신의 차밖에 없는 듯했고, 눈앞에서 전개되는 눈폭풍은 현실과 헛것의 경계를 무너뜨리기에 충분했다. 그는 오래 각인된 이 풍경을 모티프로 표제작 이야기를 풀어냈다. 공주, 논산, 전주를 오가는 화물차 운전기사가 눈보라 속에서 꿈인 듯 현실인 듯 몽환적인 장면을 만난다. 눈보라 속 흰옷을 입은 동학농민군들이 우금치에서 패퇴하는 환영이 그것이다. 그들은 묻는다. '백 년이 넘는 세월 동안 우리는 한 번도 우금치를 넘어본 적이 없네. 살아생전 넘지 못했기 때문이지. 자넨 거길 넘어봤는가?'

유연하게 역사와 신화와 설화를 현대에 접목시키는 이야기 솜씨는 해월 최시형의 생태 평등사상을 배면에 깐 '하늘' '밤산행' 등으로 이어지다가 귀신과 소년과 전쟁, 자작나무와 낙타, 달팽이와 나비와 벌거벗은 왕 등으로 종횡무진 나아간다. 다양한 책과 자료를 섭렵하고 구상을 거쳐 한 달 만에 완성하곤 했던 200자 원고지 9장 분량 칼럼 한 꼭지가 15~20장 분량으로 늘어나 25개 이야기로 '눈보라'에 모였다.

-신화와 설화, 역사적 사실과 허구를 배합할 때 원칙이나 기준이 있는가.
"이전에 내 소설에는 허무주의가 심하고 냉소적인, 어둡고 부정적인 시선이 많았다. 어느 시점부터 글을 쓰는 사람으로서 어떤 소명 같은 것을 갖게 돼서 다른 사람을 살리는 글, 나 자신도 살고 싶어지는 그런 글을 쓰고 싶어졌다. 그러자면 개인이 아등바등하는 것보다 공동체 전체의 분위기가 바뀌는 게 중요하다는 깨달음을 얻게 됐다. 그 방향으로 가기 위해 계속 쓴 글들인데, 계몽적이거나 뻔하게 낙관적인 그런 글이 아니라 설득력 있게 우리 다 함께 같이 잘 살아보자는 맥락이었다. 세상이 그렇게 만만하지도 않고 낙관적으로 볼 수 있는 것도 아니라는 걸 잘 표현해 주고 있는 게 신화나 설화 같은 거라고 생각을 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좀 더 밝은 쪽으로 가고 싶었지만 그냥 헛된 판타지는 피하고 싶었다. 어두운 부분을 봐야 밝은 쪽을 얘기할 수 있지 않을까."

 


-현실과 헛것이 맞닿아 경계선이 무너지는 순간 이야기가 탄생하는 배경은?
"우리의 기억이나 이야기 같은 것들은 자신의 해석이나 상상이 모두 현실과 뒤섞여 있다는 의미에서, 그 경계면에서 이야기라는 게 탄생한다고 보았다. 현실이라는, 물컹거리는 살아 있는 동물 같은 시간들이 사람 머릿속으로 들어오면서 해석과 상상의 다른 여러 가지가 개입된다. 사실 인류가 갖고 있는 공통의 무의식 같은 것도 헛것이라고 생각한다. 그 공동체적인 상상이 우리에게 있기 때문에 말이나 글 같은 부족한 수단에도 불구하고 상대방 마음을 느끼게 되지 않나. 헛것이라는 말 속에는 사실 그 모든 게 다 들어 있다."

영혼을 잃어버리거나 도둑맞은 사람은 병에 걸린다. 너는 헤매는 영혼을 다시 붙잡아 아픈 이의 몸속에 되돌려 놓는 사람이 되었다. 영혼을 찾으러 떠날 때 너는 우리의 몸에 상처를 만들어 그것을 딛고 하늘로 올라갔다. …나는 이제 이곳에 서서 너의 후예들이 한강철교에 오르고, 송전탑에 오르고, 광고탑에 오르고, 망루에 오르고, 굴뚝에 오르는 것을 지켜본다. _ '자작나무는 말한다'

자작나무숲 가지 위에서 사는 시베리아 샤먼 이야기를 가져와, 지금은 도심의 외로운 한 그루 관상수로 서 있는 자작나무가 노동자들이 철탑과 굴뚝을 오르는 사태를 서술하는 맥락이다. 자작나무 흰 수피의 검은 반점은 아이가 딛고 올라간 상처의 흔적이거니와, 이제 숲은커녕 더 이상 올라갈 곳을 찾을 수도 없는 현실이 전개되고 있을 따름이다. 1931년 평양 을밀대 지붕에 올랐던 강주룡부터 한진중공업 85호 크레인의 김진숙, 구미 스타케미칼과 파인텍의 45미터·75미터 굴뚝에 올랐던 차광호·홍기탁·박준호, 600일간 옥상 농성을 이어간 한국옵티칼하이테크 박정혜에 이르기까지 고공에 올라갈 수밖에 없었던 노동자들의 고통을 송경동 시인의 편지글과 함께 기록한다.

-자작나무가 말을 하고, '우리'라는 귀신도 등장한다. 이야기의 주인공은 누구도 될 수 없다고 썼다.
"자신이 주인공이라고 생각하면서 벌어지는 부작용이 많지 않은가. 당신도 나도 너도 모두 똑같은 주인공이라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 쓴 말이다. 디지털 시대 신기루처럼 소비되는 현실에도 불구하고 이야기는 굉장한 힘을 지니고 있다. 사람들이 인공지능에게 상담도 하는 시대가 됐지만, 가상공간에서 사람들과 교류하는 건 다 가짜 쾌락이라고 생각한다. 사실 비슷한 걸 흉내낼 따름이지, 사람들을 직접 만나서 이야기하고 주고받지 않으면 사는 것 같지 않을 것 같은 느낌이다. 아무리 뇌를 속이려고 해도 사람과 사람이 만나는 순간의 강렬한 느낌을 재현할 수는 없다."

인간이 몇백 년의 세월 동안 온 힘을 다해 써 내려간 내용을 몇 시간 동안 오해나 오독도 없이, 고민도 없이, 감정도 없이 수월하게 읽어낸 기계가 요약해서 일러주는 정보에는 여백이 없다. 여백이 없으니, 진실도 없고 심지어 인간의 머릿속에서 한 조각 지식으로도 남기 힘들다. 그것이 바로 생쥐의 몸에 인간의 회한을 담은 채 살아가는 내가 이제 아무도 찾아오지 않는 도서관에서 살고 있는 이유이다. 명예의 전당에 남은 고대의 유물 속 글자들을 갉아 먹으며, 누렇게 삭아버린 미로에 숨겨져 있는 진실을 언젠가 찾아낼 수 있으리라 믿는다._ '명예의 전당' 

 

▲ 부희령의 소설에서 자작나무는 말을 하고, 낙타는 환생해 흰수염고래가 된다. 제미나이로 생성한 '자작나무는 말한다'(위)와 ' 낙타의 환생'. [조용호 문학전문기자]

 

-도서관 생쥐의 저 말처럼, 직접 갉아먹어 해석하고 상상하며 몸으로 체득한 깨달음을 얻는 대신 AI의 효율성에 의존하는 시대에 '여백'이 중요한 까닭은?
"소설가가 소설을 쓰고 자신의 생각을 말하지만, 독자들은 전혀 다른 방식으로 해석하고 받아들일 수 있다. 언어나 글에는 항상 개인의 자유, 개성, 성향의 영역이라는 게 있는데 그것을 '여백'이라고 보았다. 그것이 저자의 의도와 무관하게 더 좋은 방향으로 혹은 더 나쁜 방향으로 이끌 수도 있을 것이다. 뭔가 뜻밖의 사건을 일으킬 수 있는 것인데, AI에서는 발생할 수 없는 그런 의미에서 여백을 말한 것이다. 책은 텔레비전 같은 매체들과는 달리 생각하면서 쉬었다가 읽을 수도 있고 받아들이기 나름일 수 있는데, 이러한 책의 유용함 속에 '여백'이 깃든다."

 

-이야기가 혼란한 세상을 살피며 붙잡고 나아갈 '동아줄'이자 좌표인 이유는?
"사람들이 혼란스러운 상황을 정리하는 힘이 '자기 서사'라고 생각한다. 나는 이러저러한 힘든 일을 겪었는데 그 과정을 거쳐 이런 사람이 됐다는 식으로 기억을 한다. 사실 큰 힘이 되지 않아도 그런 게 없으면 앞으로 나아가지 못할 수 있다. 어두운 길을 갈 때 붙잡고 조심조심 걸어가는 것처럼, 그 난간이 바로 이야기라는 동아줄이다."

부희령은 "겉으로는 농담도 잘하고 밝아 보이는데 소설은 왜 어두운지 묻는 이들이 많다"면서 "앞으로는 좀 밝고 가벼운 이야기를 쓰고 싶다"고 말했다. 그는 "이번 소설이 짧아서 쉬운 이야기로만 생각했다는 분들도 있지만, 그냥 반전을 거듭하는 재미있는 이야기로 읽혔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이야기는 누구의 것인가.

바람의 갈기가 오색으로 펄럭이며 외쳤다. 들을 귀가 있는 자는 들으라. 이야기는 바람의 것, 주인공은 누구도 될 수 없으니, 헛되고 헛되도다. 삶은 기다릴수록 이루어지지 않는 약속 같은 것. _ '이야기의 시작 – 바람의 말' 

 


 

KPI뉴스 / 조용호 문학전문기자 jhoy@kpinew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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