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법권이 '셀프방어' 자판기냐…거대여당 '數의 횡포'
허범구 기자
hbk1004@kpinews.kr | 2021-08-25 14:39:26
비판 재갈 물리기…강성 지지층, 정권 이해 맞아
운동권 특혜 법안 발의도…역풍에 나흘만에 철회
강행 처리 급급해 여론 거스르고 졸속 심의 자초
언론중재법 개정안 처리를 군사작전하듯 밀어붙이던 집권여당이 25일 국회 본회의 문턱 앞에서 멈춰섰다.
국회법상 절차적 문제가 생겼다. 더불어민주당은 이날 새벽 4시쯤 국회 법사위에서 개정안을 강행처리했다. 법안이 법사위를 통과한 지 하루가 지나지 않아 본회의에 상정되는 건 위법의 소지가 있다.
그러나 절차보다는 거센 역풍에 놀라 민주당이 일단 브레이크를 잡은 것으로 보인다. 8월 임시국회 회기 내 법안 처리 방침에는 아직 변화가 없다.
개정안은 '언론재갈법' '언론중죄법'으로 불린다. 언론 자유 침해 위험이 확실해 국내외로부터 반발과 경고가 쏟아지고 있다. 민주당 내부에서도 '자충수', '오만과 독선의 부활' 등 쓴소리가 잇달았다.
민주당은 그러나 마이동풍이다. 성난 민심에 귀막고 법안 처리를 강행하고 있다. 친문 강성 지지층의 요구를 받들어야하기 때문이다.
'문재인 대통령 퇴임 이후'와 정권 유지를 위한 '원려'도 깔려 있다. 이를 위해선 상식과 원칙, 명분 등을 버리는 건 일도 아니다. 법안 당사자와 관련 단체도 반발하는 '묻지마 발의·처리'가 끊이지 않는 배경이다.
언론중재법 개정안은 군부 정권 시절 자유 언론 수호 투쟁을 벌였던 원로 언론인들도 반대하는 것이다. 이날 새벽에는 국제 언론 감시단체인 국경없는기자회가 "저널리즘에 위협을 가할 것"이라며 철회를 촉구했다.
'윤미향 보호법'도 마찬가지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와 관련 단체에 대한 명예훼손을 금지하는 내용의 개정안에 대해 이용수 할머니는 "내가 밝힌 정대협 진실도 위법인가"라고 분노했다. 그러면서 위안부 할머니들 후원금을 유용한 혐의로 재판중인 무소속 윤미향 의원을 향해 "아직도 죄를 모른다"고 질타했다.
여성단체들도 '윤미향 보호법'이라며 철회를 촉구했다. 바른인권여성연합은 이날 국회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윤 의원 사퇴와 개정안 철회를 요구했다. 한국여성단체협의회는 전날 60개 회원단체 명의로 성명서를 배포하고 "개정법안은 '윤미향 보호법'이라는 비판이 각계각층에서 일고 있다"고 전했다.
'윤미향 보호법'은 위안부 관련 단체에 대한 '사실 적시'까지 금지하는 점에서 언론중재법 취지와 닮았다. '비판 재갈 물리기' 속성이 같은 것이다.
국민의당 안철수 대표는 지난 24일 페이스북을 통해 "대북전단금지법, 언론중재법에 이은, 표현과 양심의 자유에 재갈을 물리려는 반 자유주의 시리즈물"이라며 "현 정권은 생각이 다른 국민을 적폐로 몰아가고 법으로 처벌하려 한다"고 지적했다.
대북전단살포금지법은 군사분계선 일대에서 전단을 살포하거나 대북 확성기 방송 등을 할 경우 3년 이하의 징역이나 3000만 원 이하의 벌금으로 처벌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이다. '김여정 하명법'으로 조롱받는 이 법은 탈북 단체 반발은 물론 국제적으로 거센 비난 여론을 불렀다.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은 "대북전단금지법은 북한의 요구에 굴복한 '반인권법'이라는 국제사회의 비난을 자초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합당한 후속 조치로 바로 잡아야 한다"고 촉구했다.
언론법 개정안은 문재인 정부 출범 후 이어진 '표현의 자유' 침해 시도의 연장선상에 있다. 지난해 12월 민주당이 강행처리한 '5·18 역사왜곡처벌법'(5·18 특별법 개정안)이 신호탄으로 꼽힌다. 5·18 광주 민주화운동에 관해 허위사실을 유포하면 5년 이하 징역 또는 5000만 원 이하 벌금에 처해진다.
'수의 정치'를 앞세운 거대 여당의 '입법 횡포'는 '셀프 특혜' 성격도 띤다. 입법의 형식을 빌린 집권세력의 이권 챙기기가 거리낌 없이 자행되고 있다는 얘기다.
'윤미향 보호법'은 여론에 밀려 철회했던 '민주화유공자예우법'을 소환한다.
민주당 설훈 의원 등 여권 의원 73명은 지난 3월 26일 '민주유공자 예우에 관한 법률안'을 발의했다. 민주화운동 유공자들과 그 가족에게 교육과 의료는 물론이고 취업과 양로·대출 혜택까지 제공하도록 하는 내용이다. 역풍이 거세자 이 법안은 발의 나흘만에 철회되는 해프닝을 겪었다.
강성 지지층을 위해, 특정 세력과 정권을 위해 거대 여당이 입법권을 남발하다보니 여론 수렴과 충분한 심의를 건너띄기 마련이다. 처리가 급하니 뒤탈이 생긴다.
민주당은 이날 새벽 법사위에서 언론중재법 개정안을 강행처리하는 과정에서 '준비부족'을 고스란히 노출했다. 여당 내부에서조차 이견이 불거져 우왕좌왕한 것이다.
이 때문에 민주당은 법사위에서 야당 퇴장후에도 3시간만인 새벽 4시에 법안을 처리했다. 자체 소통과 내부 의견수렴 과정이 부실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개정안 처리가 일시 난항을 겪은 건 언론계 우려에 공감하는 온건파가 아닌 강경파의 수정 요구 때문이었다.
KPI뉴스 / 허범구 기자 hbk1004@kpinew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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