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준만의 직설] '막말' 낙인에 퇴색한 홍준표 의원을 생각한다

UPI뉴스

| 2021-08-04 13:36:34

지금으로부터 25년 전인 1996년 1월 25일 밤 11시쯤 노무현 등 당시 이른바 '꼬마 민주당'의 전·현직 의원 9명이 어느 전직 검사의 집에 들이닥쳤다. 그 전직 검사는 10여년 간 오직 '법의 정의'를 향해 돌진해 '모래시계 검사'라는 영예는 얻었지만 검찰마저 성역으로 여기지 않은 탓에 사실상 검찰에서 쫓겨난 홍준표였다.

의원들은 그를 민주당에 영입하기 위해 찾아온 것이었지만, 너무 늦었다. 홍준표도 가장 원했던 정당이었지만, 민주당 지도부는 그의 공천 요청을 외면했고, 그런 상황에서 여당인 민자당의 요청으로 입당을 덜컥 약속해버린 상황이었으니 말이다. 그는 약속대로 다음날 민자당에 입당해 이후 보수의 대표 전사로 맹활약하게 된다.

나는 요즘 텔레비전에서 홍준표 국민의힘 의원을 볼 때마다 '운명의 장난'을 떠올리곤 한다. 당시 민주당이 홍 의원을 영입했다면 그는 진보의 대표적인 지도자가 되었을텐데 하는 생각을 하면서 말이다. 가난했던 흙수저 출신으로 살아온 데다 고려대 재학 시절 유신 철폐 유인물을 작성하기도 했던 그의 삶의 궤적은 진보와 더 친화성이 있었다.

이는 10여년 전 그가 주도했던 '반값 아파트' 논쟁 때 잘 드러난 바 있다. 당시 나는 관련 TV토론 등을 지켜보면서 홍 의원이 진보를 표방하는 다른 정당의 의원들보다 더 진보적이라는 생각을 하면서 새삼 진보-보수의 경계에 대해 의문을 품었던 적이 있다.

그러나 오늘날 홍 의원의 이미지는 그런 진보성과는 거리가 멀다. 많은 사람들이 떠올리는 주요 이미지는 '막말'이다. 물론 그는 억울해 한다. 홍 의원은 "말을 좀 세게 할 뿐인데 전부 막말로 취급하고 하니까 요즘 말하기가 굉장히 힘들다"고 하소연하기도 했으며 "노무현, 트럼프가 품격이 있어서 대통령이 됐느냐"고 목소리를 높이기도 했다.

그는 또 "품격이 위선과 상통 할 때가 있다는 것도 알아야 한다"며 "소탈한 것을 품격 없다고 매도하는 것 자체가 위선"이라고 주장했다.

나 역시 거친 글을 많이 써왔던 사람으로서 공감하는 점이 없진 않지만, 품격에 대한 양해는 메시지의 성격과 직결돼 있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다. 기득권 권력이나 금력의 어두운 면을 공격하고 사회적 약자를 배려하면서 거친 말을 하는 건 양해되지만, 개인에 대한 인신공격의 성격이 있는 메시지엔 그런 양해심은 발휘되지 않는 법이다. 그런데 홍 의원의 메시지는 후자에 치우친 경우가 적지 않았다.

예컨대, 홍 의원은 지난 6월 28일 서울 마포구의 한 카페에서 열린 청년 정책 토크쇼에서 최근의 남녀 갈등 논란에 대해 이야기하다가 "조국 사태 때 (내가) 조국이 보고 '그 새끼 사내새끼 아니다' (라고 생각했다)"며 "잘못했으면 자기가 (감옥에) 들어가야지 각시가 들어가나"라고 했다.

이는 "(내가 조국이었다면) 내가 책임지겠다. 내가 감옥에 가는 게 낫다"는 취지에서 한 말이라곤 하지만, 지나쳤다. 무엇보다도 공적 대의가 결여된 발언이었기 때문이다. 듣는 이들을 재미있게 만들어줄 순 있겠지만, 이는 홍 의원 자신을 희생으로 한 것이다. 단지 사나이의 자질과 책임을 역설하기 위해 말을 너무 거칠게 한다는 평판을 얻어 남는 게 뭐란 말인가.

선우정 조선일보 논설위원은 최근 칼럼에서 홍 의원에 대해 "달변가이자 다변가였다. 그의 낙천성과 자신감이 좋았다"며 이렇게 말한다.

"적을 줄이고 사람을 끌어안고 언어를 정제하면 충분히 대통령이 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의 주변 사람에게 이 말을 몇 번이나 했는지 모른다. 만난 김에 직접 하려고 했는데 끝내 못 했다. 그의 자신감엔 파고들 빈틈이 없었다. 그래도 그를 기대한다. 그런 입지전적 서사(敍事)를 가진 인물은 드물기 때문이다."

나는 홍 의원이 자신의 이미지를 고려하지 않는 게 그의 자신감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생각한다. <꿈꾸는 대한민국>에 실린 그의 2019년 3월 9일 페이스북 글은 바로 그 문제에 대한 성찰을 담고 있어 흥미롭다.

그는 어느 정치 컨설턴트를 만나 조언을 들으면서 "업적과 비전까지는 이해가 되는데 이미지가 중요하다는 말엔 동의하기가 어려웠다"고 했다. 이어지는 다음 말은 성찰인지 아니면 비아냥인지 헷갈리긴 하지만, 성찰 쪽으로 해석하기로 하자.

"그러나 곰곰 생각을 해보면, 문재인 대통령의 최근 모습과 탁현민 행정관의 이미지 관리 기술을 보면서, 나는 비로소 이미지 정치도 중요한 것이구나 하고 뒤늦게 알았습니다. 국민들이 오해하지 않도록 하는 것도 중요한 정치 기술 중 하나가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주위 분들이 일치해서 조언하는 말이 이미지 개선이라는 말에는 안타깝지만 동의하지 않을 수 없다는 생각이 드는 주말입니다."

그러나 홍 의원이 이후에도 계속 '막말' 이미지를 만들어낼 수 있는 발언을 멈추지 않은 걸 보면 자신의 '입단속'이 쉽지 않았나 보다. 그렇다면 거친 말을 계속 하더라도 공적 대의와 명분이 있는 사안에 국한시켜 보면 어떨까?

홍 의원 개인은 물론 한국의 정치 발전을 위해서 말이다. 사람들을 재미있게 만들어주는 것보다는 생각하게 만드는 것이 지도자가 되기를 원하는 정치인의 덕목임을 믿어 의심치 않기에 드리는 말씀이다.

▲ 강준만(전북대 신문방송학과 명예교수)

강준만(전북대 신문방송학과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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