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디추싱 사태', 美中 기술갈등으로 번지나

안재성 기자

seilen78@kpinews.kr | 2021-07-09 16:26:45

美 회계자료 등 제출 요구…불응 시 상장폐지 위협
中 외국에 데이터 제공 금지…데이터 유출 우려

중국 정부의 요구를 거부하고 뉴욕증시에 상장한 '중국판 우버' 디디추싱이 '규제 폭탄'에 흔들리고 있다.

'디디추싱 사태'는 단지 한 기업의 문제가 아니라 코로나19 이후 점점 중요도가 높아지고 있는, 정보기술(IT)과 빅데이터를 둘러싼 미중 간 패권 경쟁의 축소판이라고 보는 시각이 우세하다.

미국 정부는 상장폐지 운운하면서 중국 기업에 정보 공개를 요구하고 있으며, '데이터 패권' 상실을 우려하는 중국은 이에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때문에 중국 기업의 뉴욕증시 상장이 멈추는 것은 물론 이미 상장된 기업들도 대거 상장폐지될 위험이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미국 정부는 중국 기업에 대한 수출입 규제를 점점 더 강화하고 있으며, 동맹국에도 참여를 독려하고 있다. '미중 기술갈등'이 격화됨에 따라 뉴욕증시뿐만 아니라 한국 증시도 부정적인 영향을 받을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美, 中 기업에 정보공개 압박…대규모 상장폐지 현실화될까

디디추싱은 8일(현지시간) 뉴욕증시에서 전일 대비 0.7% 떨어진 11.21달러로 거래를 마쳤다. 최근 4거래일 연속 하락세를 그리며 공모가(14달러) 이하로 내려갔다.

디디추싱의 내림세는 중국 정부의 강력한 규제에서 비롯됐다. 지난 4일 중국 인터넷안보심사판공실(CAC)은 디디추싱 애플리케이션을 중국의 모든 스마트폰 앱스토어에서 제거하라고 지시했다. 아울러 디디추싱을 국가 안보 관련 혐의로 심사 중이다.

이는 중국 정부가 뉴욕증시 상장을 금지했음에도 상장을 강행한 디디추싱에 대한 응징으로 알려졌다.

디디추싱은 투자금 회수를 원하는 해외 투자자들을 만족시키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상장한 것으로 관측된다. 디디추싱의 공동 창업자인 청웨이의 지분은 7%, 칭류는 1.7%에 불과하며, 소프트뱅크가 21.5%, 우버가 12.8%씩 보유하고 있다.

중국 정부는 디디추싱뿐 아니라 윈만만, 훠처방, BOSS즈핀 등 뉴욕증시에 상장한 또 다른 자국 기업도 안보 심사 대상에 넣었다.

더불어 외국 증시에 상장하려는 중국 기업은 모두 CAC의 인터넷 보안 심사를 받도록 강제했다. CAC의 보안 심사를 받지 않은 경우는 '무관용 원칙'을 적용할 방침이다.

월스트리트저널에 따르면, 중국 정부의 강경한 입장에 의해 인공지능(AI) 의료 솔루션업체 링크닥 등 여러 중국 기업들이 뉴욕증시 상장을 포기하고 홍콩 증시 등 대안을 모색 중이다.

이는 뉴욕증시에 상장한 중국 기업을 통해 미국 정부 등에 데이터가 흘러들어가는 걸 극히 꺼려하는 때문으로 진단된다.

▲ 미국이 중국 기업에 정보공개를 요구하자 중국은 뉴욕증시 상장을 사실상 금지하는 등 '기술 패권'을 둘러싼 양국의 경쟁이 점점 격화되고 있다. [셔터스톡]

지난해 12월 미국 정부는 '외국회사문책법'을 도입했다. 이에 따라 뉴욕증시에 상장한 외국 기업들은 방문 조사, 회계 자료 제출 등 미국 상장기업회계감독위원회(PCAOB)의 회계 감독에 직접 응해야 한다. 연속 3년 미국 회계 감독 위원회 심사 요구를 충족하지 못할 경우 상장폐지 대상이 된다.

중국은 정부 승인 없이 자국 회사가 외국 당국에 회계 자료를 제출하는 걸 금지하고 있기에 사실상 중국 기업을 겨냥한 법안으로 관측된다.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중국은 상장폐지를 두려워하는 자국 기업들이 지리, 도로, 부동산, 금융, 개인 신용, IT 등 각종 데이터를 미국 정부에 넘길까 염려하고 있다"고 말했다.

둥샤오펑 런민대 중앙금융연구원 선임연구원은 "중국 IT기업에 대한 미국 정부의 데이터 이전 압박이 갈수록 심해질 것"이라고 예상했다. 그는 "미국은 중국 IT기업의 정보와 데이터를 이용해 중국의 주요 부처나 인프라에 대한 공격을 가하는 등 경제적 및 정치적 이익을 취하려 할 수 있다"고 걱정했다.

디디추싱 역시 일반 도로의 교통량 현황을 비롯해 주유소, 전기차 충전소, 버스 정류장 위치 등의 정보를 잔뜩 가지고 있어 중국 정부가 예의주시 중이다.

이 문제에 대해서는 양국이 합의점을 전혀 찾지 못하는 중이다. 때문에 외국회사문책법의 유예 기간이 끝나는 2024년부터 알리바바, 바이두 등 뉴욕증시에 상장된 중국 기업 250곳이 대거 상장폐지될 위험이 제기된다.

이와 관련, 상장폐지까지는 쉽지 않다는 의견도 나온다. 중국 기업의 시가총액이 약 2조1000억 달러(한화 약 2394조 원)에 달하기 때문이다.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중국 기업 다수를 상장폐지할 경우 중국 경제뿐 아니라 뉴욕증시도 타격이 크다"며 "실제로 상장폐지하기보다는 일종의 위협일 가능성이 크다"고 판단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협박을 겸해 몇몇 부실 중국 기업을 증권시장에서 쳐내는 수준에 그칠 것"이라고 내다봤다.

'기술 패권' 경쟁 어디까지?…코스피에도 부정적 영향 우려

시장에서는 미중 기술갈등이 과거 무역갈등 이상으로 격해질 것이란 예상이 제기된다. 코로나19 팬데믹(세계적 대유행)으로 인해 IT와 빅데이터 산업의 가파르게 성장하고, 그 중요도가 더 높아진 때문이다.

따라서 '기술 패권'을 두고 중국을 억누르려는 미국과, 이에 반발하는 중국의 경쟁이 날이 갈수록 심화되는 양상이다.

중국은 지난달 데이터 보안법을 통과시키는 등 미국 정부나 기업으로의 데이터 유출을 극도로 경계하고 있다. 법안에는 중국 기업이 외국 정부에 데이터를 제출하려면 사전에 중국 정부의 승인을 받아야 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미국은 중국의 '반도체 굴기'를 겨냥해 포위망을 강화하고 있다. 미 상무부는 지난 4월 중국의 슈퍼컴퓨팅 기업 7곳을 블랙리스트에 올리는 등 화웨이, ZTE, 중국 해양석유, 샤오미 등 300개가 넘는 중국 기업을 블랙리스트에 등재했다.

미국 기업이 블랙리스트에 오른 중국 기업에 자사 제품을 수출하려면, 사전에 상무부의 허가를 얻어야 한다.

또 미 연방통신위원회(FCC)는 지난달 17일(현지시간) 화웨이·ZTE 등 5개 중국 기업과 미국 기업·기관 간 거래를 전면 금지했다. 국가안보에 위협이 된다는 이유로 수출은 물론 수입도 금지한 것이다.

더불어 네덜란드가 ASML사의 극자외선(EUV) 노광장비를 중국 최대 반도체 업체 SMIC에 수출하지 못하도록 설득하는 등 동맹국과도 연계를 강화하고 있다.

EUV 노광장비는 반도체 원판(웨이퍼)에 전자회로를 새길 때 사용한다. 5나노미터(nm·1nm는 10억분의 1m) 이하의 회로를 새길 수 있는 노광장비는 ASML사 제품뿐이다.

디디추싱 사태로 상징되는, 미중 기술갈등은 중국 기업을 비롯해 뉴욕증시와 한국 증시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끼칠 것으로 예상된다.

미국 투자전략사 '인디펜던트 스트레티지'의 데이비드 로쉐 대표는 "중국 기술주를 보유하는 것은 너무 위험하다"고 강조했다. 미중 기술갈등, 중국 정부의 규제 등 정치적인 이슈가 너무 많다는 지적이다.

로쉐 대표는 "중국 IT기업들은 앞으로 최첨단 반도체 등에 접근하는데 큰 어려움을 겪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서상영 미래에셋증권 연구원은 "중국 디디추싱 규제 등 여러 이유로 국내 증시의 투자심리가 위축될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했다.

9일 코스피지수는 전일 대비 1.07% 내린 3217.95로 장을 마감했다. 지난 6일 3305.21로 사상 최고치를 경신했던 코스피는 이후 3거래일 연속 하락세를 그리며 3200선을 위협받고 있다.

특히 동맹국에 대해 중국에 반도체를 수출하지 말라거나 중국 기업의 장비를 쓰지 말라는 미국 정부의 압박이 강해질 경우 한국 IT기업들의 고민이 커질 수밖에 없다.

전 세계 반도체 수입의 80%를 중국 시장이 차지하고 있다.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등의 메모리 반도체 수출은 중국 의존도가 매우 높아서 시장 대체가 쉽지 않다.

LG전자는 5세대 통신(5G) 28㎓ 대역에서 화웨이 장비의 사용을 검토하는 등 화웨이 장비를 여럿 쓰고 있다. IT업계 관계자는 "당장 움직임은 없지만, 미중 기술갈등이 격화될 경우 LG전자가 세컨더리 보이콧 제재 대상이 되지 않으리라는 보장은 없다"고 말했다.

대한상의 관계자는 "기업들은 미중 갈등에 가장 많은 신경을 쓰고 있다"며 "미국의 대중국 강경기조가 확대되는 데 우려가 크다"고 밝혔다.

송영관 한국개발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우리나라가 전략적 모호성을 유지하기 어려운 상황으로 가면서 우리 기업이 제2의 '사드 사태' 같은 피해를 볼 가능성이 있다는 주장은 일리가 있다"며 "기업들이 거래시장을 다변화해 위험 노출을 줄일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KPI뉴스 / 안재성·김대한 기자 seilen78@kpinew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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