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오빠가 저기 어디 있다는 것이여?"…실미도 유족 오열하다
탐사보도팀
tamsa@kpinews.kr | 2021-06-17 09:14:02
유족, 국방부·진화위 관계자 등 서울 오류동 옛 공군부대 일대 현장 답사
"끝까지 한마디를 안 하네. 우리 오빠 이제 어떻게 찾아?"
실미도 공작원 유족 임충빈 씨는 지난 11일 오후 서울 대림동 주택가 골목길에서 울분을 터뜨리다가 중심을 잃고 쓰러졌다. 임 씨는 그대로 길거리에 주저앉아 눈물을 펑펑 흘렸다. 이날 그는 실미도 공작원 암매장 추정지인 서울 오류동 개웅산 일대를 답사했다. 뒤이어 암매장 현장 지휘관으로 알려진 오모 씨를 만났다. 오 씨의 증언이 구체적일수록 발굴 범위가 좁혀질 것으로 기대됐다. 그러나 "모른다"는 대답만 돌아왔다.
"옛 공군 2325부대 인접 개웅산에 암매장 됐을 가능성 크다"
이보다 앞서 당일 오후 서울 오류동 옛 공군 2325부대 터에서 실미도 공작원 유족 임일빈, 임충빈, 이향순 씨를 만났다. 암매장 추정지를 같이 둘러보기 위해서다. 이들은 1972년 3월 10일 공군 2325부대 사격장에서 사형당한 실미도 공작원 4명 중 임성빈, 이서천 씨 동생이다. 유족은 억울하게 죽은 가족의 유해만이라도 찾길 간절히 바라고 있다. 하지만 실미도 사건이 발생한 지 50년이 지난 지금까지 유해는커녕 암매장지조차 찾지 못하고 있다.
2005년 국방부 과거사진상규명위원회에서 활동한 안김정애 전 과장은 공군 2325부대 근처에서 암매장이 이뤄졌다고 보고 있다. 사형 집행 관련 증언을 한 사람 중에 2325부대 인근을 암매장지로 꼽는 사람이 많았고, 당시 공군이 보안 유지를 위해 시신을 멀리 옮기기 어려웠을 것이라는 이유에서다. 특히 당시 시신 운반을 담당했던 수송대 근무 이모 씨의 증언이 구체적이었다.
이 씨의 증언에 따르면 암매장은 공군 2325부대와 인접한 개웅산에서 이뤄졌다. 하지만 이 씨가 산자락까지 이동 과정에 비해 산속 경로 묘사는 상세히 하지 않아, 암매장 추정지 범위가 지나치게 넓은 상황이다. 이 때문에 국방부 과거사진상규명위원회도 2006년 이 일대에서 발굴 작업을 벌였지만, 유해를 찾진 못했다.
안김 전 과장도 이날 답사에 함께했다. 최근 실미도 사건 재조사에 나선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진화위)와 국방부 관계자, 2004년 여당인 열린우리당에서 실미도 사건 진상조사위원장을 지낸 김성호 전 의원도 동행했다. 실미도 사건을 조사했거나 조사 중인 핵심 관계자들이 유해 발굴을 위한 첫 걸음을 떼려고 한자리에 모인 것이다.
김성호 전 의원은 "실미도 사건 진상이 아직도 모두 규명되지 않은 게 안타깝다"며 "오류동 이곳이 암매장지로 유력한 것 같아서 오늘 직접 현장을 확인하러 왔다"고 말했다. 그는 또 "국방부가 이곳에서 실미도 사형수 4명 유골을 찾으려고 적극 나서면 찾을 수도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진화위 관계자는 "진화위원장과 국방부 장관이 만나 적극 협조하기로 했다"며 "진화위가 우선 실미도 사건에 대해 조사한 후 국방부에 발굴 등을 권고하면 국방부가 협조할 것"이라고 말했다. UPI뉴스 취재진은 이에 대한 국방부 입장을 듣고자 오류동 현장에 있던 국방부 관계자에게 인터뷰를 요청했지만 이 관계자는 사양했다.
50년 만에 암매장지 찾을 수 있을까…군 핵심 관련자 대부분 '모르쇠' 일관
현재는 대형교회가 공군 2325부대 터에 자리하고 있다. 교회 협조를 받아 교회 안쪽 울타리를 따라 언덕길을 오르며 울타리 너머의 암매장 추정지를 바라봤다. 지형이 험한 편이었다. 부대 안 사형집행장에서 도보로 시신을 옮기지 않고, 수송대까지 동원한 이유를 짐작할 수 있었다. 실미도 공작원 이서천 씨 동생 이향순 씨는 "우리 오빠가 저기 어디 있다는 것이여?"라며 흥분을 가라앉히지 못했다. 이내 이 씨는 털썩 주저앉아 흐느끼기 시작했다. "빨리 찾아줘. 나 없으면 우리 오빠한텐 이제 아무도 없어."
현장 답사단은 교회를 나와 암매장 추정지 쪽으로 개웅산을 올랐다. 이곳엔 2006년경 근린공원이 조성되면서 곳곳에 산책로가 만들어졌다. 산책로를 벗어난 곳에선 사람이 정성스럽게 키운 작물도 보였다. 이곳에서 신원미상의 유해가 발견된 적은 없다. 암매장은 지금도 인적이 뜸한 곳에서 이뤄졌다고 추론할 수 있는 대목이다. 다만 암매장 추정지역엔 나무와 풀만 무성해 단서가 될 만한 것은 없었다.
유해 발굴을 위해선 당시 사형 집행 및 매장에 동원된 군 관련자들의 추가 증언이 필요한 상황이다. 하지만 수송대 근무 이모 씨를 제외하면 대부분이 증언을 거부하거나 소극적인 태도를 보였다. 매장 현장을 지휘해 암매장지를 구체적으로 기억하는 것으로 알려진 오모 씨도 '모르쇠'로 일관했다.
오 씨는 지난 5월 중순 UPI뉴스와의 통화에서도 실미도 사건과 관련한 질문에 모두 "아는 게 없다"고 답했다. 오 씨의 태도는 아리송했다. 자신과 정말로 관계없는 질문을 계속 듣는다면 짜증을 내거나 수화기를 내려놓을 법도 한데 그러지 않았다. 수화기 너머 오 씨의 부인은 "기자 전화를 왜 또 받고 있어요. 얼른 끊어요"라고 말했다.
실미도 유족은 서울 대림동에 있는 오 씨의 집을 이날 오후 늦게 방문했다. 유족이 오 씨를 직접 만난 건 실미도 사건 이후 처음이었다. 유족은 이날 오 씨의 증언을 통해 암매장지가 어딘지 밝혀지길 기대했다. 하지만 오 씨는 유족에게도 "아는 게 없다"는 말만 되풀이했다. "(실미도 공작원 4명을) 내가 땅에 묻었다면 얘기하면 되지 않나. 하지만 내가 오류동에 근무할 때는 그런 일이 없었다"고 부인했다. 암매장지를 알면서 모르는 척하는지 정말 모르는 것인지 애매한 발언만 한 시간 정도 이어졌다.
유족은 최근 시작된 진화위의 실미도 사건 재조사가 속도를 내 이른 시일에 유해를 찾길 바라고 있다. 이날 유족은 입 모아 이렇게 말했다. "저승에서라도 다시 만나야지. 몇 년 더 지나면 우리도 (유해 찾으러) 못 돌아다녀. 그러면 이제 찾아다닐 사람도 없어."
KPI뉴스 / 탐사보도팀 = 남경식·김지영·조현주 기자 tamsa@kpinew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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