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K 찾은 나경원 "분칠만 하는 변화여선 안된다"
조채원
ccw@kpinews.kr | 2021-06-04 08:59:28
오전 6시30분 KTX 타고 구미행…2시간 자는 강행군
"박정희 유독 그리워지는 시점…결단력, 근대화 초석"
시민 "박근혜 이후 2층서 구경하는 사람 보는 건 처음"
3일 오전 6시30분 서울역 KTX 열차안. 국민의힘 당대표 선거에 출마한 나경원 후보를 이른 아침 역에서 만났다. 하루 동행취재가 시작된 것이다. 나 후보는 6·11 전당대회에서 승부처인 영남권 표심을 잡기 위해 TK(대구·경북)로 내려가는 길이었다.
나 후보는 출마를 공식 선언한 지난달 21일 이후 매일 새벽부터 움직인다고 했다. 하루 두 시간 이상 자기 힘들 정도로 '빡센' 일정이 이어지는 탓이다. 하루 평균 공식 일정만 7개라고 한다.
이날 첫 방문지인 경북 구미까지는 KTX로 약 1시간 30분 거리. 피곤에 지쳐 기차 안에서 잠시 눈을 붙일 법도 한데 나 후보는 한시도 쉬지 못했다. 방송 인터뷰 등으로 전화를 주고 받느라 연신 바빴다.
김천·구미역에 내린 나 후보는 먼저 박정희 전 대통령 생가를 찾았다. 생가로 가는 나 후보 승용차 안에서 인터뷰 기회를 잡을 수 있었다. 시간은 채 20분이 안됐다.
나 후보가 생가에 도착한 시간은 오전 8시30분. 생가 개방까진 시간이 좀 남았다. 그런데 갑자기 굵은 비가 쏟아졌다. 30여 명이 미리 나와 나 후보를 맞았다. 당원협의회 관계자와 나 후보 지지자들이었다.
"박정희 전 대통령이 유독 그리워지는 시점입니다. 그의 결단력과 혜안이 있었기에 대한민국 근대화의 초석이 마련된 겁니다. "나 후보는 참배 후 소감을 묻자 강단있게 답했다. 그러면서 "국민에게 희망을 주는 대통령을 만들어 낼 수 있는 당대표가 되겠다"고 말했다.
"똑똑하다", "경험 있는 사람이 해야지"
판사 출신으로 정계에 입문한 그는 '4선 중진'이다. 2002년 한나라당 이회창 대선후보 캠프에 상근특보로 데뷔한 후 대변인, 17·18·19·20대 의원, 자유한국당 원내대표 등을 지냈다.
대한민국 최초 보수정당 여성 원내대표라는 타이틀이 값지다. 정계입문 후 탈당한 적이 한 번도 없다. 갈수록 많아지는 '철새 정치인'과 대비된다. 서울 등 수도권을 정치적 기반으로 하는 그가 전통적 보수 지지층인 TK에서도 지지세가 높은 이유다.
나 후보는 참배 후 구미 새마을중앙시장으로 달려갔다. 10여분 간 상점 곳곳을 찾아 상인들과 인사를 나누며 장사 사정 등을 물었다. 민심도 들었다. 장대비가 내렸으나 나 후보는 악수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시장에서 나 후보를 지지하는 시민에게 '이유'를 물었다. "똑똑하다", "경험이 많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상인 정 모(40대·여) 씨는 "아무래도 당대표는 무게감이나 의견조율을 잘 하는 능력이 필요할 것 같은데 다 경험에서 나오는 것"이라며 "TV토론을 보니 이준석 후보는 젊어서 그런가 어디로 튈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나 후보를 지켜보던 시민 송운희(50대·남) 씨도 "똑부러진 사람이 해야한다. 이준석도 똑똑하지만 국회의원은 못해보지 않았느냐"며 "경험도 많고 민주당과 강경하게 투쟁도 해 본 나 후보가 낫다"고 했다. "국회의원 경력으로만 보면 다른 4선, 5선 후보도 있다"라고 되묻자 송 씨는 "탈당한 적 있는 사람들은 좀 그렇다. 한 길 걸어온 나경원이 더 좋게 보인다"고 강조했다.
오전 9시40분쯤 돼지국밥집. 나 후보는 늦은 아침을 국밥으로 때웠다. 당협 관계자 몇명이 같이했다. 당초 계획보다 20분이 늦은 식사다. 시장에서 상인들 만남이 지체된 탓이다. 식사 후 서둘러 대구로 향했다.
"왔으면 한마디 해야제, 왜 문을 닫아놨노"
나 후보가 대구에서 처음 찾은 곳은 대구 북구갑 당협이었다. 그는 당협 방문에 앞서 인근 한 커피전문점에서 한 언론 매체와 인터뷰를 했다. UPI뉴스와의 인터뷰 사진도 이때 찍었다. 승용차 안 인터뷰에선 사진을 찍을 수 없었다.
기회를 엿보다 질문을 던졌다. "구미 새마을중앙시장에서 상인들이 뭐라고 하던가." 나 후보 답변은 비장했다. "격려도, '살려달라'는 외침도 잘 들었다."
나 후보는 당협 방문 후 대구 민심의 심장인 서문시장을 찾았다. 시장에서 상인협회 관계자들과도 만났다. 그가 사무실로 들어가고 출입이 통제됐다. 코로나19 때문이다. 그러자 시민들 입에선 볼멘소리가 나왔다. "왔으면 한마디 해야제, 왜 문을 닫아놨노."
취재 과정에서 나 후보의 대중적 인기를 실감하는 순간들이 줄곧 이어졌다. 그가 지나가는 곳마다 먼저 주먹 인사를 청하는 시민들이 적지 않았다. 그가 유세하는 모습을 휴대폰 카메라에 담는 이들도 꽤 있었다. 나 후보는 시민들과 같이 사진을 찍으며 스스럼없이 어울렸다.
나 후보는 서민시장에서 점심으로 잔치국수를 먹었다. 식사시간은 코로나19 상황에서 대중들이 실제 나 후보 얼굴을 볼 수 있는 거의 유일한 때다. 마스크를 벗은 그를 알아보고 몰려드는 사람들을 지켜보던 한 상인은 "박근혜 대통령 이후 2층에서 '정치인 구경' 하는 사람들 보는 건 처음"이라며 너스레를 떨었다.
식사 중에도 사진 촬영과 악수 요청이 계속됐다. 함께 온 일행이 잔치국수 한 그릇을 다 비울 동안 나 후보는 본래 반 정도밖에 되지 않은 양 조차 버거워했다.
'사라진 전당대회 응원전'…TK 당원들 표심은?
나 후보는 시장 방문 후 대구엑스코로 이동했다. 이날 일정에서 가장 중요한 행사가 열리는 장소다. 대구경북 합동연설회는 TK 표심을 잡는 절호의 기회다. 그가 입장할 때 '나경원' 이름이 쓰인 마스크를 착용한 지지자들이 몰려들었다.
이날 연설회는 지지자들이 대거 참석해 응원, 환호 경쟁을 벌였던 평소와 전혀 달랐다. 코로나19 탓에 당대표 후보 관계자들과 사진기자, 연설회 진행을 도울 당직자 등 소수의 인원만 입장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또 이름 연호 대신 특정 후보를 지지한다는 표식으로 펼쳐지는 '소리없는 응원전'이 대세였다. 연설회 현장에서도 당원들의 표심을 가늠하기 어려웠던 이유다.
나 후보는 합동연설회에서 지역 현안에 대해 "아침에 서문시장을 갔더니 이건희 미술관 유치를 원하셨는데, 확실히 해내겠다"고 다짐했다. 또 "통합신공항 특별법은 박정희 공항으로 이름붙여 신속하게 추진해보고싶다"며 TK 표심을 적극 공략했다.
자신의 약점으로 거론되는 '구태' 이미지에 대해선 "지금 거센 바람이 우리 당에 변화를 질책하고 있는데, 바꾸겠다"고 약속했다. 그는 "다만 분칠만 하는 변화여선 안된다"며 "세대를 아우르는 통합을 이끌고, 노동개혁을 이끌어 지역과 세대, 계층과 가치로 확장하겠다"고 말했다.
연설회를 마친 나 후보는 다소 지쳐 보였지만 생기가 넘쳤다. 보수 심장 대구에서 자신을 지지하는 당심을 확인한 것일까. 서울로 향하는 나 후보 뒷모습이 가벼워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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