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급 100만원에 한국어 가르치니 자긍심보다 자괴감 들어"

장은현

eh@kpinews.kr | 2021-05-20 16:59:10

연대 한국어강사들 처우 개선 요구하며 시위
"수업 외의 업무도 노동 시간으로 인정해야"

외국인에게 우리말을 가르치는 건 보람찬 일이다. 마땅히 자부심을 느낄 법하다. 원론일 뿐 현실이 꼭 그런 것은 아니다. 강사들은 자긍심이 아니라 자괴감을 토로하는 현실이다. 그 유명한 연세대 한국어학당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이다. "적은 임금, 열악한 노동 환경으로 강사들을 갈아 넣고 있다"고 강사들은 호소한다.

▲ 20일 서울 신촌의 연세대학교에서 한국어학당 강사들이 적정 임금과 시수를 요구하며 피켓 시위를 하고 있다. [장은현 인턴기자]

 
10년 차 연세대 한국어학당 강사 최수근(40) 씨는 최근 동료들이 편의점이나 카페, 배달 아르바이트를 하는 모습을 자주 목격한다. 생계를 위해 어쩔 수 없이 '투잡'에 나선 것이라고 했다. 강사 월급 100만 원으로는 최소한의 삶도 꾸리지 못했던 거다. 투잡도 자유로운 선택일 수 없다. 그 중 한 명은 배달 아르바이트를 하려다 그만뒀다. 제자들을 만날까봐 두려워 교육만 듣고 포기했다.

낮은 임금, 열악한 노동 환경이 어학당 강사들을 거리로 내몰고 있다. 20일 오전 11시 서울 연세대학교 백양관 앞. 연세대 한국어학당 강사들이 '임금 상승과 노동 환경 개선'을 요구하며 피켓 시위를 벌였다. 이들은 한 달에 100만 원 가량 월급을 받는 현재의 임금 체계를 개선하고 수업 외의 업무에 대한 노동 시간 인정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30년 가까이 연세대 한국어학당에서 근무한 K 씨는 더 이상 열악한 처우를 참지 않겠다며 팔을 걷어 붙였다. 그가 오랜 기간 낮은 임금에도 어학당에 있었던 것은 유학생들에게 한국어를 가르친다는 자부심 때문이었다. 그러나 타 대학과 비교했을 때 점점 더 임금 차이가 벌어지는 것을 보면서 '이대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K 씨는 200만 원이 안 되는 월급을 받는다. 30년 가까이 근무했지만 임금 상승이 막힌 지 오래다. '무기계약직'인 어학당 강사들은 12단계의 호봉표를 적용받는다. 12단계인 최고 시급 3만5200원에 도달하면 그 이후로는 일체 임금 인상이 없다.

 

코로나19는 설상가상이다. 수업시수마저 줄어 강사들의 고통은 가중됐다. 이전에는 최대 주당 30시간까지 수업을 할 때도 있었지만 지금은 평균적으로 11~12시간 수업을 한다. 수업을 진행하는 것 외의 어떠한 업무에서도 임금을 받지 못하는 이들에게 수업 시간은 월급의 전부다. 2만5800원인 수습기간 임금을 적용받는 신입 강사는 100만 원 안팎의 월급을 받는다.

 
그는 후배들이 들어와 적은 보수로 힘들어하는 모습을 보면서 '더 이상은 참으면 안 되겠다'고 생각했다. 타 대학 어학당과 비교해 봐도 연세대 한국어학당 강사의 임금이 현저히 낮았다. 같은 노동을 하는 서울대 한국어 강사는 120만~180만 원, 이화여대 한국어 강사는 120만~150만 원 더 높은 월급을 받고 있다.

이러한 임금 차이 때문에 다른 학교로 옮긴 강사들도 있지만, 이직이 쉬운 일은 아니다. 무엇보다 바닥이 좁은 업계 특성상 전임교수나 강사들끼리 잘 알고 지내기 때문에 괜히 낙인이 찍히거나 뒷말이 나올 수 있다는 두려움이 크다고 한다. 

 

유학생들이 선호하는 어학당 중에서 연세대 어학당은 늘 높은 순위에 있는데, 학교는 왜 강사들에게 그 명성에 맞는 대우를 해주지 않는 것인지 납득이 가지 않는다고 말했다. 연세대가 모교인 강사들은 모교에 대한 실망감을 내비쳤다. 

 

▲ 20일 서울 신촌의 연세대학교에 한국어학당 강사들의 처우 개선을 요구하는 현수막이 걸려 있다. [장은현 인턴기자]

 

 최수근 씨는 노동시간으로 인정되지 않는 부수적 업무에 따른 고충도 크다고 강조했다. 최 씨는 강사들과 함께 매일 아침 공지사항을 전달하고 수업 자료를 공유하는 교안회의에 '의무적으로' 참석한다. 1~6급으로 나뉘는 교육 체계에 따라 급 회의도 진행한다. 이러한 공식적 회의뿐만 아니라 수업을 위한 사전 자료 준비, 수행 평가 채점, 시험 출제 등의 학습 관련 업무와 학생들 개개인과 연락을 나눠야 하는 행정 업무도 강사 몫이다. 문제는 이 모든 것이 '무보수'로 강사들에게 전가된다는 점이다.

 

부수적 업무에 대한 임금 책정을 학교에 요구했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그러면 교안회의를 하지 말라" 혹은 "학부 시간 강사도 수업을 진행하는 것에서만 임금을 받는다"라는 말이었다. 학부 시간 강사와 비교할 것이라면 그들과 동일하게 5~12만 원으로 시급이 책정돼야 하는데 그러한 차이는 나 몰라라 한다. 최 씨는 이러한 상황에서 질 높은 교육을 기대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라고 강조했다.

 

지난해 10월부터 단체교섭 협상을 진행 중인 어학당 강사들은 내일 17차 협상을 앞두고 있다. 16차까지 진행된 협상 기간 동안 학교 측은 임금 문제에 대한 협상안은 내놓지 않고 있다. 160여 명의 연세대 한국어학당 강사들은 앞으로 들어올 후배들을 위해서라도 반드시 요구 사항을 관철할 예정이다.

 

강사들의 문제가 알려지자 이들에 연대하려는 이들도 생기고 있다. 한국학 연구자로 잘 알려진 노르웨이 오슬로대학의 박노자 교수는 최근 자신의 SNS에 연세대 어학당 강사들의 처우 문제를 언급했다. 박 교수는 자신의 학생들도 한국어를 배우러 연대 어학당에 많이 간다면서 "자국어를 가르치는 사람들에게 지옥 같은 삶을 강요하는 나라는 한국이 유일"하다고 지적했다.

 

강사들은 연세대 어학당 출신 사회 인사들과의 연대도 검토하고 있다. 어학당에서 수학한 후 현재 활발하게 사회 활동을 하는 이들의 도움을 받아 강사들의 문제를 더 공론화하겠다는 계획이다.

 
KPI뉴스 / 장은현 인턴기자 eh@kpinew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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