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 사라진 투자자 책임…피해자 많으면 100% 배상?

안재성 기자

seilen78@kpinews.kr | 2021-04-13 16:29:23

'착오에 의한 계약 취소'는 법원이 결정할 사안
당국, 명확한 배상 기준 없이 여론에 좌우돼

지난해 금융감독원은 라임자산운용의 무역금융펀드와 관련해 은행 등 판매사 측에 투자자들의 손실금을 전액 물어주라고 결정했다. 최근 옵티머스자산운용의 환매 중단된 펀드에 대해서도 NH투자증권 측에 100% 배상을 요구했다.

투자를 해서 큰 손실이 났는데 투자자는 그에 대한 책임을 전혀 지지 않고 원금을 챙길수 있게 된 것이다. 불완전판매 등의 문제가 있다고는 하나 투자자 책임은 '제로(0)'라는 결정은 납득이 가지 않는다.

배상률이 최고 50% 수준에 머물렀던 동양그룹 회사채, 40~80% 수준이었던 해외금리 연계 파생결합펀드(DLF) 등 과거 사례와도 형평이 맞지 않는다.

▲ 금융감독원은 라임·옵티머스 사태와 관련해 배상률이 최고 80% 수준이었던 과거 사례와 달리 판매사들에게 100% 배상을 요구했다.[UPI뉴스 자료사진]

금감원은 '라임 사태'와 '옵티머스 사태'는 '착오에 의한 계약 취소'에 해당하므로 과거 사례와 다르다는 논리를 들고 나왔다. '라임 펀드'나 '옵티머스 펀드'가 투자자들에게 설명한 내용과 다른 방식으로 운용된 것, 현재의 리스크를 충실히 알려주지 않은 것 등에 의해 투자자가 착오를 일으켰으니 계약 자체를 취소, 100% 배상을 해야 한다는 이론이다.

그러나 계약을 취소한다고 할 경우 투자자들의 계약 상대방은 판매사들이 아니라 라임, 옵티머스 등 운용사들이다. 판매사들은 단지 사모펀드 계약을 중개했을 뿐이다. 따라서 계약이 취소될 경우 투자금을 돌려줘야 하는 책임은 운용사들에게 발생하며, 판매사들에게 불완전판매 책임이 아닌, 계약 취소 책임을 묻는 것은 타당하지 않다. 

특히 한국농어촌공사, 한국마사회, 한국전력공사 등 기관투자자들에게까지 100% 배상을 결정한 건 이해하기 어렵다. 자체적인 투자심의위원회까지 갖춘 전문투자자들이 어떻게 일반투자자로 분류되어 그야말로 '선의의 피해자'인 개인투자자들과 똑같은 '처방전'을 받는단 말인가.

은행 예금도 100% 보장해주지 않는다. 서민들을 위해 '원금보장 5000만 원 한도'를 정해뒀다. 그런 터에 투자상품 손실에 100% 배상이라니, 금융의 원칙을 허무는 결정이 아닐 수 없다. 

금감원 내부에서조차 "앞으로 다 100% 배상해줄 건가. 뒷감당을 어떻게 하려고…", "이렇게 투자자 책임의 원칙을 허물면, 나쁜 선례만 남는다" 등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라임·옵티머스 사태 역시 전례에 따라 투자자 책임을 일정 정도 묻는 수준의 배상, 특히 해당 투자자의 전문성을 세밀히 분류해 전문투자자일수록 배상률을 낮추는 게 옳다고 여겨진다. 

금감원이 그렇게 하지 않은 이유로는 결국 피해자 수가 매우 많고 피해 규모도 수 조원에 달하는 점, 라임·옵티머스 사태와 관련해 내부 문건 유출, 로비 등의 혐의로 전 금감원 직원이 재판까지 받고 있는 점 등이 거론된다. 

여론이 들끓자 금감원은 100% 배상과 판매사 최고경영자(CEO) 중징계를 들고 나왔다. 전형적인 '여론 달래기'와 '남에게 책임 전가하기' 수법으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투자자 손실 배상은 명확한 기준에 따라 이뤄져야 한다. 기준 없이 여론의 향배에 좌우되는 배상, 피해자가 많을수록 배상률이 올라가는 모습은 금융당국에 대한 불신만 초래할 뿐이다.
▲ 경제부 안재성 기자. 

KPI뉴스 / 안재성 기자 seilen78@kpinew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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