퍼주기 비난하더니...野 서울시장 후보 퍼주기 공약 경쟁

남궁소정

ngsj@kpinews.kr | 2021-02-10 14:37:24

나경원, '포퓰리즘 전면전' 선포하더니 돌연 태도 바꿔
현금 지원성 공약 난무…"정치꾼 활개, 한국 정치 비극"

"국민 돈을 정말 쉽게 생각하고 있다. 부모가 아이들 통장 꺼내서 흥청망청 쓰겠다는 것이다."

'결혼·출산 1억 보조금 혜택' 공약으로 '나경영'이라는 별칭을 얻은 국민의힘 나경원 서울시장 경선후보가 2019년 10월 교섭단체 대표연설에서 한 말이다. 당시 자유한국당 원내대표를 맡고 있던 나 후보는 문재인 정부의 재정정책을 '퍼주기' '포퓰리즘'이라고 명명하며 "국민을 '노예의 길'로 내몬다"라고 거침없이 비판했다.

▲ 국민의힘 나경원 서울시장 경선후보가 10일 서울 중구 남대문 시장을 방문해 만두를 맛보고 있다. [뉴시스]

그러나 나 후보는 현재 현금 지원성 공약을 쏟아내고 있다. 지난 5일 발표한 1억 원대 결혼·출산 지원 공약이 대표적이다. '토지임대부 주택'에 입주한 청년이 결혼하고, 아이까지 낳는다면 대출이자 대납으로 최대 1억1700만 원의 혜택을 주겠다는 것이다. 아울러 나 후보는 만 0~5세 영유아를 대상으로 월 20만 원씩 양육수당 지급 등을 약속했다.

현실적으로 달성하기 어려운 황당 공약이라는 지적에도 나 후보는 아랑곳 하지 않았다. 오히려 "미래세대를 위해 '나경영'(나경원+허경영)이 돼도 좋다"라고 했다. "민선 2기가 되면 더 많이 드려야 한다"라고도 했다. 이슈 선점으로 주목도를 높이려는 전략이겠지만, '19년 나경원이 21년 나경원에게'라는 이른바 '내로남불' 논란은 피할 수 없어 보인다.

정치권에서도 연일 쓴소리가 나오고 있다. 같은 당 오세훈 후보는 "서울시는 1만호도 공급할 땅이 없다, 헛공약"이라고 했고, 오신환 후보는 "장래의 세 부담을 키워 미래세대 죽이기로 귀결된다"라고 했다. 나 후보가 "서울시 예산의 100분이 1 정도가 쓰이는 것"이라며 항변한 것을 두고 열린민주당은 "1%면 3900억 원이라는 어마어마한 액수다. 당의 이념적 기반을 허물어가면서까지 선심성 포퓰리즘에 매달리는 이유가 뭔가"라고 반문하기도 했다.

"포퓰리즘과의 전면전을 펼치겠다"던 나 후보가 갑자기 돌변한 이유는 무엇인가. 전직 국민의힘 중진의원은 UPI뉴스에 "지난 총선의 결정적 패인은 '돈 주기'였다"라며 "선거 이틀 전 아동수당 40만 원을 뿌리고, 시장·군수·구청장들이 합세해서 민주당 찍으면 돈 나온다는 이미지를 각인시켰다. 이러니 현금·현물 공약 경쟁에 매몰된 것"이라고 했다.

문제는 이번 보궐 선거 전반의 분위기다. 여당의 현금 지원에 비판적인 태도를 보여 왔고 심지어 나 후보를 공격한 오세훈 후보나 오신환 후보 모두 선심성 공약 지적을 받긴 마찬가지였다. 오세훈 후보는 모든 시민에게 건강관리기능을 탑재한 스마트워치를 지급하겠다고 약속했고, 오신환 후보는 소득 없는 청년들에게 월 최대 54만5000원을 지급하겠다는 공약을 내놓았다.

전문가들은 이같은 선심성 공약이 남발하는 상황은 한국 정치의 비극이라고 진단했다. 박상병 인하대 정책대학원 교수는 기자와의 통화에서 "신념이나 소신보다 시류에 편승해서 당선만 되고 보자는 정치꾼들의 속성이 드러났다. 국민들도 정책에 대한 신뢰가 낮아 어떤 공약도 어차피 실현되지 않는다고 믿는다. 무책임한 공약이 활개치는 것은 비극"이라고 일갈했다.

미래 세대의 몫으로 돌아올 세금 부담은 가려진 채 혜택만 부각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종훈 정치평론가는 "정치인들은 실현 여부와 관계없이 공약을 내놓고 나중에 국가 채무 등을 핑계로 빠져나갈 텐데 유권자들이 이런 정치적 꼼수를 제대로 들여다보고 심판해야 한다"라고 했다.

일각에선 여당 후보들의 선심성 공약도 만만치 않다는 지적이 나온다. 더불어민주당 박영선 후보는 소상공인·자영업자를 위한 1조 원의 기금을 조성해 최대 2000만 원까지 무이자로 임대료를 빌려주는 방안을 내놨고, 우상호 후보도 "서울시장이 되면 제일 먼저 소상공인·자영업자를 위해 100만 원 긴급지원금 지원 및 보험 제도 정비 등 모든 대책을 총동원하겠다"고 했다.

김형준 명지대 인문교양학부 교수는 "경제적 불평등이 심화하면서 갈수록 각종 선심성 공약이 쏟아질 수밖에 없는 선거가 되고 있다"며 "후보가 당선됐을 때 정말 실현 가능한 공약인지, 다른 후보 공약에 대한 맞불 성격에 불과한지 면밀히 따져봐야 한다"고 말했다.

KPI뉴스 / 남궁소정 기자 ngsj@kpinew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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