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죄 인정 못한다"…법원 앞으로 간 가습기살균제 피해자들

권라영

ryk@kpinews.kr | 2021-01-21 16:41:02

"영유아 폐 손상, 살균제가 원인 아니라면 무엇이냐"
피해자 유족 "너무 미안해…결코 물러서지 않을 것"

"여보, 미안하고 또 미안하오. 내가 가습기살균제를 사다가 가습기에 넣어서 사용하지 않았다면 지금도 당신이 좋아하던 찬양을 마음껏 부르면서 즐겁게 살 수 있었을 텐데…."

▲ 21일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 앞에서 열린 기자회견에 참석한 가습기살균제 피해자 조순미(왼쪽) 씨와 김태종 씨. 김태종 씨는 사망한 아내의 사진을 들고 있다. [권라영 기자]

가습기살균제피해자총연합은 21일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CMIT/MIT 성분 가습기살균제 제조·판매사 관계자들에게 내려진 무죄 선고를 규탄했다.

이 자리에 참석한 김태종 씨는 아내 고(故) 박영숙 씨에게 보내는 절절한 편지를 낭독했다. 박영숙 씨는 13년간의 투병생활 끝에 지난해 8월 사망한 가습기살균제 피해자다.

박 씨는 21차례 입원했고, 그중 중환자실로 간 것은 16번이었다. 김 씨는 "마지막 입원하기 전 마지막인 것을 예측이나 한 듯 '너무 고마워'하던 당신의 모습을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다"면서 울먹였다.

이어 "그런데 13년 동안 당신의 호흡을 힘들게 하며 고통스러운 투병생활을 하다가 결국 당신을 죽음에 이르게 한 CMIT/MIT 계열 가습기 살균제 제조 판매기업인 SK, 애경, 이마트 임직원들이 모두 무죄가 나왔다"면서 "당신에게 너무 미안하다"고 했다.

아울러 "가해기업에 대한 합당한 처벌과 그에 대한 배·보상이 끝날 때까지 결코 물러서거나 주저앉지 않겠다"면서 "당신과 우리 가정과 같은 슬픔이 더 이상 없도록 가습기살균제처럼 화학제품의 위험성을 알리는 일에 미력하나마 힘을 보태려고 결심했다"고 말했다.

이날 기자회견에는 김 씨뿐만 아니라 천식 및 폐 손상 진단을 받은 조순미 씨, 부산에서 올라온 서강훈 씨 등 피해자들이 함께했다.

옥시와 애경, 이마트 상품을 모두 사용했다는 조 씨는 "제 손가락에 끼워진 3개의 반지는 11년 투병하는 동안 세 번의 죽을 고비를 넘기고 살아남았을 때를 새겨 넣은 철반지"라고 소개했다.

이어 "더 이상 반지의 개수가 늘어나지 않았음을 안도하면서 끝까지 우리 피해자들의 억울함을 풀고 국가의 책임을 꼭 묻기 위해서라도 다 같이 할 것"이라면서 "저희 몸이 그 증거"라고 강조했다.

서 씨는 "아픈 사람이 하나둘도 아니고, 무죄가 말이 되는 소리냐"면서 "젊었을 때는 날쌘돌이였는데 이것(가습기살균제)을 씀으로 해서 몸이 완전히 망가져서 몇 걸음 안 걸어도 숨이 차가지고 헐떡거린다"고 피해를 호소했다.

피해자연합은 "판결문에서 언급된 11명의 피해자 중 9명이 영유아이고 그중 2명은 사망했다"면서 "제품이 원인이 아니라면 폐 손상으로 죽거나 아팠던 아이들의 원인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지 묻고 싶다"고 했다.

이어 "1심 무죄 판결의 핵심 근거가 된 인과관계 증명에서 동물 실험은 절대적 필수 조건이 아니다"면서 "이미 세상을 떠난 피해자들과 살아있지만 고통 속에 살아가는 피해자들의 몸이 명백한 증거다. 저희 피해자들은 무죄를 절대 인정할 수 없다"고 판결을 비판했다.

KPI뉴스 / 권라영 기자 ryk@kpinews.kr

[ⓒ KPI뉴스.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WEEKLY HO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