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직' 조선인 노동자, 일본인들이 100여 년 제사 모셨다

이원영

lwy@kpinews.kr | 2020-11-26 11:48:16

1914·1915·1929년 수도관·철도 공사 중 사망 5인
효고현 다카라즈카 외곽에 올 3월 추도비도 세워

일제강점 초기인 1910년~1920년 대에 일본으로 돈을 벌러 갔던 조선인 노동자가 사고로 숨지자 이들을 100여 년 세월 동안 일본인들이 제사를 모셨고, 올해 초 추도비까지 세운 사실이 뒤늦게 알려졌다.

일본인들이 오랜 세월동안 추모하고 있는 조선인 노동자는 수도관 공사를 하다가 숨진 3명과 철도 부설공사 현장에서 숨진 2명 등 모두 5명이다.

이들을 기리는 추도비는 시민단체들의 협력으로 올해 3월 26일 일본 효고현 다카라즈카시에서 북쪽으로 5킬로미터쯤 떨어진 키리하타의 나가오산 기슭에 세워졌다. 옛 국철 후쿠치야마선 폐선 부지에 조성된 벚꽃동산 입구 오야미즈 광장에 세워진 이 비석은 눈에 띄게 큰 사이즈에 디자인도 세련돼 방문자들이 많이 찾는다고 한다.

▲ 조선인 노동자 추도비 전면. 하단에 희생자 5인의 이름이 새겨져 있다. 조선학교 학생들이 현장을 방문해 기념사진을 찍었다. 왼쪽은 추도비 건립에 주도적인 역할을 한 외국인시민협회 콘도 토미오 고문, 오른쪽은 콘도 선생과 추도비 건립을 위해 노력해온 향토사학자 정홍영 선생의 아들 사진작가 정세화 씨. 

비석 앞면에는 '越鳥南枝(월조남지)'라고 새겨져 있는데 '월나라 새가 남쪽 가지에 둥지를 튼다'는 의미로 일본 땅에 묻혔지만 고향을 그리워할 조선인 희생자들의 영혼을 생각해 지은 비문이라고 한다.

추도비 하단에는 철도공사(1929년) 희생자인 윤길문(尹吉文)·오이근(吳伊根), 수도관 터널공사(1914년 1명, 1915년 2명) 희생자인 김병순(金炳順)·남익삼(南益三)·장장수(張長守) 이름이 기록되어 있다.

추도비 뒷면에는 "지역생활에 중요한 수도와 철도의 건설현장에서 희생된 다섯 명의 조선인을 애도하면서 이 사고들을 잊지 않고 후세에 전하기 위해 이 추도비를 건립한다"고 적혀 있다.

추도비 건립에는 '다카라즈카시 외국인시민문화교류협회(이하 외국인시민협회·고문 콘도 토미오)'가 주도적인 역할을 했는데 재일교포들과 교류에 앞장서는 일본인 단체다.

올해 추도비가 세워지기까지 수도공사 희생자 3명은 인근 사찰에서 제사를 지내오다 100년을 맞아 중단하려는 것을 콘도 선생과 재일 향토사학자 정홍영 씨가 주축이 되어 제사를 이어왔다. 또한 철도공사 사망자는 한동안 묻혀 있다가 1970년 두 사람이 당시 신문 자료를 발굴한 이후 제사를 모셔왔다. 올해 추도비를 세우는 데도 두 사람이 주도적인 역할을 했다.
▲ 추도문과 함께 추도비 건립을 주도한 시민단체를 명기하고 나카가와 토모코 현 다카라
즈카 시장이 쓴 '애도할 도' 한자를 새긴 추도비의 후면.

1929년 3월 28일자 아사히신문에는 다음과 같은 보도가 나온다.

"26일 오전 8시반 경 효고현 다카라즈카 외곽의 나가오 산중의 후쿠치야마선 6호 터널 도랑 굴착 공사에 사용할 다이너마이트 10개가 결빙되어 조선인 토공 3명이 이를 철망 위에 올려놓고 모닥불에 말리던 중 실수로 1개를 불 속에 떨어뜨리는 바람에 10개가 모두 폭발해 토공 이길문(21)·오이근(25)의 두 명은 약 20칸(약36미터)이나 날아가 몸이 산산조각 나는 참사를 당했고, 토공의 우두머리 이일선(25)은 중상을 입고 졸도했으며, 인근 오두막에서 식사 준비 중이던 이일선의 아내 양시춘(19)은 얼굴에 가벼운 상처를 입었다."

▲ 1929년 3월 28일자 아사히신문 기사. 다이너마이트 폭발 사고로 조선인 토공 2명이
사망하고 2명이 중경상을 입었다고 보도했다. 기사 시작 부분에 전화 송고임을 알리고 있다.

최승희 연구가로 일본 조선학교 지원활동을 하고 있는 조정희 PD(전 뉴욕주립대 교수)는 "이타미 거주 재일교포 사진가 정세화씨를 통해 추도비 건립 사실을 알게 됐는데, 문헌조사를 진행해 보니 아사히신문이 보도한 이길문·이일선·양시춘은 윤길문·윤일선·여시선의 잘못이었다. 전화로 기사를 구두 전송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오보였을 것"이라고 말했다.

조 PD는 "고베 수도관 공사 희생자인 김병순(31)·남익삼(37)·장장수(37)에 대해서는 정확한 사고 일시조차 알려져 있지 않고 다만 촌장 명의로 발행된 매장인허증의 날짜가 다른 것으로 미뤄 각기 다른 사고로 사망한 것으로 보인다"고 현지 관계자들의 말을 인용해 전했다.

조 PD는 "이들이 사망한 시기는 일제강점기이기는 했지만 조선인 강제징용이 시작되기 전이어서 척박한 식민지 조선을 떠나 일자리를 찾아 일본으로 이주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조 PD는 "한일관계가 냉각기인 요즈음에 조선인 추도비가 주는 의미는 각별하다. 한일 간 여행이 다시 자유로워지면 다카라즈카의 조선인 추도비를 찾아 100여 년 전 고향을 떠나 이국에 묻혀야 했던 동포의 넋을 위로하고, 이들의 희생을 잊지 않고 기려온 일본 시민들의 따뜻한 배려에도 감사하는 묵념을 올려주기를 바란다"고 희망했다.

KPI뉴스 / 이원영 기자 lwy@kpinews.kr

[ⓒ KPI뉴스.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WEEKLY HO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