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낭자가 방문하자 세상은 착하고 귀여워졌다"

조용호 문학전문기자

jhoy@kpinews.kr | 2020-11-22 20:44:54

화상으로 진행된 '한국-베트남 문학 평화연대의 밤'
평화를 낳는 것은 평화…독단, 편견, 증오, 분노가 아니다
마스크는 '모든 사람을 위한 나'를 상징, 진정한 인도주의
코로나의 선물…'우리는 바로 나의 메아리'라는 자각

"전쟁을 겪은 대부분의 베트남 사람들은 모든 권리 중 가장 최우선의 권리는 생존권이라 생각합니다. 그래서 제가 마스크를 쓰는 것도 생명을 지키기 위함입니다. 당연히 제 생명뿐만 아니라 모든 이의 생명을 지키기 위한 것이기도 합니다. 이 마스크는 '모든 사람을 위한 나'를 상징합니다. 집을 나설 때, 마스크를 쓰는 것은 우리가 진정한 인도주의를 갖고 있다는 것이고, 인류에 대한 사랑을 말이나 글이 아니라 구체적인 행동으로 실천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한국 소설가 현기영(위)과 베트남 작가 바오 닌이 화상으로 만나 코로나시대의 평화에 대해 말하고 있다. [조용호 문학전문기자, 베트남작가협회]


베트남전쟁에서 살아 돌아와 집필한 자전적 장편 '전쟁의 슬픔'으로 세계적인 작가 반열에 올라선 베트남 작가 바오 닌이 지난 20일 화상으로 진행된 '한-베트남 문학평화연대의 밤'에서 한 말이다. 그는 올 초 베트남에 코로나19가 발생해 많은 이들이 마스크를 쓰고 거리를 유지했을 때, 하노이 거리에 몰려든 서양 관광객들은 결코 마스크를 쓰지 않으려 했고, 거리도 유지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는 "마스크를 쓰든 안 쓰든 그것은 개인의 자유, 인권에 관한 문제이며 그 권리는 생명보다 더 소중하다"고 답했던 프랑스 남자의 말을 전하며 "서양인들은 어째서 자신과 모든 이의 건강과 생명을 그렇게 경시하는지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고 전했다. 

하노이 작가협회 사무실과 파주 활판인쇄박물관을 화상으로 연결해 양국 문인 24명이 참가한 가운데 이루어진 이날 행사는 미리 작성한 '코로나19시대의 평화'에 관한 글을 낭독하는 형식으로 진행됐다. 한국 좌장으로 참여한 소설가 현기영은 "코로나 바이러스는 우리에게 전쟁의 어리석음을 일깨우고 있다"면서 "평화를 낳는 것은 평화이지, 전쟁이 평화를 만드는 것은 아니다"고 역설했다. 그는 "평화를 만드는 것은 이성, 인내, 관용이지 독단, 편견, 증오, 분노가 아니다"면서 "어느 종족, 어느 국가, 어느 종교, 어느 계급에 속해 있든 간에, 인간이 인간을 감성적으로 이해하여 누구나 고귀한 인생 생명이라는 것, 똑같은 사람이라는 것을 인정할 때, 전쟁은 물러가고 평화가 도래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탱크가 멈췄습니다. 군함이 멈췄습니다. 어느 나라 비행기든 다 그 나라의 공항에 세워져 있습니다. 당연히 어느 나라 대통령도 그 나라 집무실에 앉아 있습니다. 칼이 칼집에서 빠지지 않아, 칼은 신비한 아름다움을 간직합니다. 탄약은 탄창 속에서 침묵하고 총은 아기 호랑이가 되어 누구나 쓰다듬을 수 있습니다."

▲하노이 베트남작가협회 사무실과 파주 활판인쇄박물관에 모인 양국 문인들이 화상으로 만나 손을 흔들고 있다. [조용호 문학전문기자]


갈수록 확산되는 코로나19 팬데믹 사태에서 베트남 작가 응웬 빈 프가 발표한 '우리 몸이 평화의 기초입니다'는 이날 각별한 울림으로 다가왔다. 그는 "코로나 낭자가 갑자기 방문하자 세상은 착하고 귀여워졌다"고 운을 뗐다. 이어 "지금은 코로나 낭자가 가져다준 고요함 속에서 우리는 다른 이가 아닌 바로 나의 메아리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면서 "만약 우리가 자기 자신을 존중하지 않는다면, 인류를 존중하지 않는 의미도 된다"고 부연했다. 그는 "다른 사람을 사랑하려면 우선 자신의 몸부터 사랑해야 한다"면서 "자신을 사랑할 때, 우리는 세계의 깊이를 볼 수 있고, 그 깊이는 킬로미터 단위가 아니라 감각의 단위로 계산된다"고 표현했다. 자신을 사랑하는 일이야말로 세계를 지키는 일이라는 역설이다.

이날 행사는 소설가 김남일 방현석 등을 중심으로 '베트남을 이해하는 젊은 작가들의 모임'이 1994년 결성된 이후 지속적으로 실천해온 한국과 베트남 사이 문학 교류의 일환이었다. 이제 '젊은' 작가들은 더 이상 젊지 않은 형국이어서 양국 작가들은 올해 '한-베트남 작가협회'를 만들기로 약속했지만, 코로나19의 습격으로 만남을 연기하고 우선 화상으로 접속한 자리였다. 

▲'베트남을 이해하는 젊은 작가 모임'의 중심에서 일해 온 소설가 방현석이 '한-베트남 문학평화연대의 밤'에서 모두 인사말을 하고 있다. [조용호 문학전문기자]


소설가 방현석은 모두 인사말에서 "21세기 공룡 중국이 가장 먼저 코로나 습격을 당했고 지난 세기에 세계문화를 장악했던 유럽은 공황상태이며, 2차세계대전 이후로 세계 최강국을 자랑해온 미국은 베트남전쟁 10년 동안 희생된 미군보다 4배가 넘는 이들이 안방에서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있다"면서 "세계는 지금 우리가 강하고 중심이라고 믿었던 것이 과연 그러한지 묻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베트남과 한국은 지난 역사 속에서 많은 대가를 치르면서 자유와 독립을 위해 희생한 경험을 공유하고 있다"면서 "이제 한국과 베트남은 평화로 가는 중심이 되어 함께 세계평화를 위한 새로운 질서를 만들어가자"고 호소했다.

 

응웬 꾸앙 티에우 베트남 작가협회 부주석은 "반세기 전 베트남 전쟁 당시 베트남에 왔던 한국 사람들을 우리는 모두 알고 있다"면서 "역사는 종종 길을 잘못 들어서기도 한다"고 모두 인사말을 시작했다. 그는 "역사는 자신의 잘못을 빠르게 고쳐나가는데 지금은 매년 한국과 베트남의 시인 소설가들이 양쪽을 오가며 만남을 계속하고 있다"면서 "문학은 베트남과 한국 민족이 서로를 인식하고 서로에게 다가갈 수 있는 크고 중요한 문을 열었다"고 평가했다. 그는 이어 "시가 울려 퍼질 때 의혹과 증오와 죽음의 소리가 모두 사라진다"면서 "한국 베트남 양국의 소설가 시인들은 그것을 분명하게 깨달았고 지금 함께 목청을 높이고 있는 것"이라고 화답했다. 

 

이날 행사에는 김성규 박소란 이주란 최진영 등 '젊은' 한국 문인들도 참여했다. 소설가 최진영은 "지금보다 깨끗하고 자유로운 환경에서 유년기를 보낸 어른들이 2020년의 아이들에게 전해준 세상은 마주볼 수 없고 나눠먹을 수 없고 또래를 만나기 힘들며 서로의 얼굴과 목소리를 온전히 느낄 수 없는 세상"이라며 "'좋아질 거야' '괜찮아질 거야'라는 말을 죄책감 없이 아이들에게 건네는 어른이고 싶다"고 소회를 밝혔다. 1부 행사는 '한국·베트남 작가들의 평화 선언'을 양국 작가 대표들이 교차 낭독하면서 끝났다.

▲지난 9월 타계한 베트남 문인 반레의 장편 '그대 아직 살아 있다면'(왼쪽)을 재번역해 출간한 번역가 하재홍. [조용호 문학전문기자] 


2부에서는 지난 9월 타계한 베트남 시인·소설가·영화감독 반레(본명 레 지 투이, 1948~2020) 추모 행사가 이어졌다. 반레는 호치민 장학생으로 외국 유학을 떠날 수 있었지만 자원입대했고, 전쟁이 끝났을 때 입대 동기 300명 중 살아남은 이는 고작 5명에 불과했다. 시인을 꿈꾸었지만 베트남전쟁에서 폭격으로 죽은 친구의 이름을 필명으로 삼은 그는 한국에도 여러 차례 오가며 국내 문인들과 우정을 쌓았다. 절판된 반레의 장편 '그대 아직 살아 있다면'(아시아)을 재번역해 출간한 하재홍은 반레의 이 말을 그날 전했다.

 

"시인은 총칼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가장 두려운 것은 감수성이 무뎌지다가 완전히 사라져버리는 것이다. 무정하고, 인정사정 없는 삶, 그것은 마음이 죽어있는 삶이다." 

KPI뉴스 / 조용호 문학전문 기자 jhoy@kpinew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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