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시즘이라는 세균이 포퓰리즘의 얼굴로 지구를 덮고 있다"

이원영

lwy@kpinews.kr | 2020-11-06 14:29:00

네덜란드 석학 롭 리멘 <이 시대와 맞서 싸우기 위해>
물질적 가치 예속되며 자유를 잃어가는 현대인 경고

멀쩡한 현시대에 파시즘이 횡행하고 있다고 말한다면 당신은 믿을 수 있겠는가. 그것도 가장 문명화되고 의식있는 선진국들이 사이좋게 살고 있는 유럽이란 대륙에 파시즘이라는 망령이 떠돌고 있다면. 현대 유럽의 손꼽히는 지성으로 인정받고 있는 네덜란드 롭 리멘이 <이 시대와 맞서 싸우기 위해>에서 충심으로 던지는 말이다.

다만 현대인들은 온갖 물질적이고 비본질적인 가치에 사로잡혀 인간 본연의 가치와 의미를 잃어버리면서 파시즘이 세상을 장악하고 있는데도 이를 알아채지 못하고 그에 예속되어 간다고 주장한다.

유럽이 그 정도라면 이 세상 모든 나라는 파시즘의 광란 속에서 살고 있다고 보아도 틀린 말이 아닐 것이다.
리멘은 현대인들이 포퓰리즘으로 가장한 파시즘에 예속되어 자유를 반납하고 살고 있음에도 이를 자각하지 못하는 것은 그만큼 물질적인 가치관에 사로잡혀 있기 때문으로 진단한다. 그래서 인간의 귀중한 가치를 빼앗아가는 파시즘의 망령과 맞서 싸워야 하며 이를 위한 이성의 자각을 촉구한다.

▲롭 리멘의 역저 표지.

리멘은 이런 이유로 파시즘은 2차대전 후 독일과 이탈리아에서 나타난 잠시 동안의 고약한 정치 제도가 아니라 늘상 현재를 지배하고 있는 괴물로 파악한다.

"파시즘은 언제나 편협한 정신, 진짜 문제를 깨닫지 못하는 지식 부족, 그리고 게으름, 편견, 탐욕, 교만 때문에 자신의 삶에 더 깊은 의미를 부여하기를 거부하는 사람들에게서 비롯된다. 파시즘이 우리가 부끄러워해야 하는, 어리석고 한심하고 좌절당한 우리의 일면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지 못한다면 파시즘을 물리칠 수 없다."

저자는 말한다. 파시즘 사회에서 개인은 자유에 대한 공포를 느끼게 되고 개인은 대중 속으로 순응한다. 그 대중이 원하는 것은 궁극적으로 카리스마 넘치는 영도자의 인도를 무조건 따르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고. 이 말을 들으면서 도널드 트럼프와 그를 따르는 열렬한 지지자들이 연상되는 건 우연의 일치일까.

파시즘에 종속되는 사회는 도덕적, 문화적 기반을 박탈당하고 니힐리즘적인 사회가 된다고 저자는 경고한다. 이런 사회와 대중을 교묘하게 파시스트 정치인들은 이용한다. 그들을 "자신들의 권력을 보존하고 확장하려는 동기 외에는 안중에도 없는 대중 선동가들"로 규정한다.

파시즘으로부터 인간을 구해내는 데 가장 중요한 것으로 이성을 일깨우는 교육과 문화를 꼽는다.
"민주주의의 목표는 그러므로 교육과 지적 발달, 정신의 고귀함이다. 민주주의가 대중민주주의로 타락함에 따라 선동, 어리석음, 프로파간다, 실없는 헛소리, 천박함이 뒤따른다. 그리고 인간 본능의 가장 저급한 부분이 점점 지배력을 얻어 결국 민주주의의 사생아인 파시즘을 낳게 된다. 이러한 타락에 맞서 싸우는 가장 중요한 무기가 바로 정신의 고귀함이다." 김구 선생이 오직 '문화의 힘'만이 우리나라를 세계의 강대국으로 만들 수 있다고 한 명언이 떠오른다.

리멘은 석학 토마스 만이 미국 LA에서 '전쟁과 민주주의'란 주제로 강연하면서 한 발언을 소개한다. "제가 여러분께 완전한 진리 하나를 말하죠. 만일 파시즘이 미국으로 온다면, 그것은 자유의 이름으로 올 것입니다."

저자는 우리가 가치(quality)에 대한 자각을 잃어버리고 오로지 수량(quantity)만을 믿기에 우리를 지배하는 금융, 정치, 군사, 언론, 스포츠 등의 분야 엘리트도 모두 수량으로 특징지어진다고 말한다.

이런 수량이 지배하는 분야는 '인간성의 위대함과 고결함'과 전혀 상관없는 가치가 조장되며 이 분야를 지배하는 권력 엘리트들은 우리 시대의 진정한 민주주의를 불가능하게 하는 가치를 우선한다고 파악한다.

결국은 현대인이 잃어버린 문화, 철학으로 이성을 다시 회복해야만 '언론의 웅성거리는 수다, 정치인의 헛소리, 내용없는 학술용어'와 같은 의미없는 것에 현혹되지 않고 포퓰리즘이란 가면을 쓰고 침투한 파시즘이라는 바이러스를 물리칠 수 있다는 것이 저자의 호소다.

이 책은 유럽이라는 대륙에 스멀거리는 파시즘의 망령을 지적하고 이를 물리치기 위해 인류의 정신적 연대를 강조했지만 그의 메시지는 한 개인의 삶에 적용시켜도 한 치도 어긋남 없이 적용된다.

내 안에 나를 갉아먹는 파시즘은 없는가, 그 파시즘과 팔짱끼고 히히덕거리며 거짓 나가 진짜 나를 가두고 있는 것은 아닌가, 미몽에서 깨어나기 위해서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하는 진지한 물음을 던지게 된다. 묵직한 주제이지만 술술 읽히는 번역 덕분에 쉬운 에세이집 읽는 정도의 수고로 큰 통찰을 얻을 수 있는 책이다.

KPI뉴스 / 이원영 기자 lwy@kpinew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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