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운명'인가…탤런트 권재희·역사학자 한홍구 결혼한다

이원영

lwy@kpinews.kr | 2020-08-19 13:07:41

권재희, '용공조작 사형수'의 딸로 가시밭길 인생
한홍구, 권재희 부친 억울한 죽음 규명해 무죄 판결

중견 탤런트 권재희(58), 진보성향의 역사학자 한홍구(61) 성공회대 교수가 오는 28일 부부의 연을 맺는다. 두 사람은 일체의 청첩 없이 가족들만 모여 조촐한 혼례를 준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많은 사람들에게 얼굴이 알려진 연기자와 다수의 저서·강연으로 유명한 역사학자와의 만남은 어디서 시작됐을까.

▲ 탤런트 권재희(왼쪽)와 역사학자 한홍구 [DJ엔터테인먼트·뉴시스]

이들의 인연은 억울한 '사법 살인'으로 지난 1969년 44세에 세상을 떠났던 권재희의 아버지 권재혁의 신원(伸寃:원한을 풀어줌)이 계기가 됐다.

권재혁은 서울대 사회학과를 졸업하고 50년대 말 미국 유학길에 올라 경제학 박사학위 과정을 수료하고 돌아온 경제학자였다. 미국의 경제발전을 체험한 그는 후진국 경제모델의 원인을 짚고 이를 어떻게 한국에 접목할 것인가에 대한 연구에 몰두하던 진보 지식인이었다.

당시 박정희 정권은 3선 개헌 후 병영 독재체제를 강화하던 때로, 많은 용공 사건을 조작했다. 이 가운데 하나가 권재혁을 '수괴'로 한 가공의 '남조선해방전략당' 사건이다. 권재혁은 1968년 진보지식인 13명과 함께 연행돼 모진 고문을 받았다. 그리고 다음해 사형선고를 받고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다.

권재혁이 '사법 살인'으로 유명을 달리했을 당시 딸 권재희는 겨우 7살에 불과했다. 이후 권재희와 그 가족이 걸었을 길은 여느 용공조작 사건의 피해자 가족과 다름없는 가시밭길이었다.

▲ 탤런트 권재희(맨 앞) 가족사진. 오른쪽이 아버지 권재혁.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 자료]

 

오랜 시간이 지나고 정권이 수차례 바뀐 2009년 과거사위원회는 권재혁을 용공조작 사건의 희생자로 규명했고, 이어 2014년 대법원에서는 최종 무죄 판결을 내렸다. 이 과정에 한홍구 교수가 있었다.

노무현 정부의 국정원 과거사위원회에 몸담았던 한 교수는 박정희 정권이 벌인 각종 용공조작 사건들을 수면 위로 끌어올리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했다.

2009년 화해·치유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가 권재혁을 용공조작사건의 희생자로 최종 발표할 당시 한 교수는 한겨레 신문에 기고문을 게재했다.

그는 '권재혁을 아십니까'라는 제목의 글에서 "정보부 지하실에 잡혀 와서야 자신이 '수괴'라는 남조선해방전략당의 이름을 처음 듣고, 죽은 뒤에도 전략당 사건의 권재혁이라 불려야 하는 젊은 경제학자의 40주기에 술 한잔을 올린다"며 "술 한잔이라도 올려야 하지만, 우리가 해야 할 일이 정녕 그것뿐일까?"라고 끝맺었다.

한홍구 교수는 독립운동가 한기악의 손자이자, 일조각의 창업주인 언론인 한만년의 4남이다. 서울대학교 국사학과 및 대학원을 졸업하고, 미국 워싱턴대학교 대학원에서 '김일성을 중심으로 한 항일독립투쟁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5남매가 모두 서울대를 졸업한 전·현직 교수 집안으로 유명하다. 

1981년 미스롯데와 KBS공채 탤런트 출신인 권재희는 지난해 8월 KBS다큐멘터리 '기억, 마주서다'에 '나는 사형수의 딸입니다'의 주인공으로 출연해 처음으로 아버지 이야기를 공개했다. 같은 해 11월에는 '권재혁 선생 50주기 추도식 및 자료집 발간식'도 열렸다. 한 교수도 이 자리에서 권재혁의 영전에 술잔을 올렸다. 아버지와 딸의 '해원'이 완성된 순간이었다. 

권재희는 4년 전 개그맨 출신 남편 이하원과 사별했다. 이번에 두 사람은 재혼이다. 독재의 폭압에 스러진 한 영혼이 해원하면서 두 사람을 운명적으로 이어준 것이리라. 서로에 대한 감사와 이해의 아름다운 결실이다.

KPI뉴스 / 이원영 기자 lwy@kpinew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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