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자를 살리고 싶습니다"…청와대 앞으로 간 간호사들
권라영
ryk@kpinews.kr | 2020-07-06 15:34:17
"영웅·전사라는 말로 간호사 희생시켜선 안 된다"
"이 숫자로는, 이 경력으로는 못합니다. 도와주세요. 우리를 위해서가 아니라 여러분의 안전을 위해 간호사들의 안전을 지켜주세요."
6일 서울 종로구 청와대 사랑채 분수대 앞에서 간호사들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이들은 간호사가 처한 열악한 환경에 대해 말하며 안전하게 일할 권리를 보장해달라고 외쳤다.
민주노총 전국공공운수사회서비스노조 의료연대본부와 건강권 실현을 위한 행동하는 간호사회가 주최한 이날 기자회견에서 참석자들은 '대통령님, 간호사들은 살 수 있는 환자를 살리고 싶습니다'라고 적힌 현수막을 들었다.
두 단체는 기자회견문을 통해 "현장의 의료진들은 코앞에 닥친 코로나19 유행에 대처하기에는 지칠 대로 지쳐버렸다"면서 "병원은 코로나19 이전과 전혀 달라진 바가 없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들은 "K-방역을 자랑스럽게 외쳤지만 정작 현실은 아수라장"이라면서 "의료진들 개개인의 희생으로 겨우 막아냈지만 간호사들에겐 살 수 있는 환자들을 더 살리지 못했다는 죄책감이 트라우마로 남았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전국 각지에서 모인 간호사들이 지난 일주일간 청와대 1인 시위를 진행해 더 늦기 전에 공공의료체계를 확립할 것을 대통령에게 외쳤다"고 설명했다.
이어 "1인시위에 나왔던 모든 간호사들은 정부부처가 덕분에 챌린지보다 현장의 의견을 들어야 한다고 말했다"면서 "말뿐인 '덕분에'는 벼랑 끝에서 휘청거리고 있는 병원 노동자들에게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는다"고 꼬집었다.
단체는 △간호사 배치기준 강화 △제대로 된 교육시스템 보장 △공공병원과 공공감염병원 설립 △병원 노동자들이 안전하게 일할 권리 보장 △감염병 대응 세부지침 마련을 요구했다.
현정희 의료연대본부장은 "우리는 방역 성공에 묻힌 의료 실태를 솔직히 얘기해야 한다고 생각한다"면서 "그래야 살릴 수 있는 환자와 국민들을 살릴 수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현 본부장은 "이제 영웅이나 전사라는 말로 더 이상 간호사들을 희생시켜서는 안 된다"면서 "사람으로 대우받고 싶고, 살릴 수 있는 환자를 살리고 싶다는 간호사들의 절박한 요구에 답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더 이상 인력이 없어서, 공공병원이 없어서 환자가 죽는 일은 없어야 한다"면서 "문재인 대통령은 3년 전 취임하면서 '사람이 먼저다'라고 얘기했는데 지금도 그 말이 진심이라면 코로나로부터 사람을 살리기 위해서는 대통령의 결단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행동하는 간호사회에 소속된 김수련 세브란스병원 간호사는 "지난 3월 한 달간 코로나19 현장에 자원해 근무했다"면서 "현장에서 저희가 처한 현실은 야박했다"고 말문을 열었다.
김 간호사는 "신규간호사, 유휴기간이 5~10년인 간호사, 중환자실에 난생 처음 와보는 병동 간호사들까지 모두 모여들어 죽을힘을 다했다"면서 "아무리 안간힘을 써도 부족한 인력으로, 부족한 경력으로는 해낼 수 없는 일들이 있었다"고 토로했다.
그러면서 "지금까지 경력간호사들이 수없이 떠나버리도록 방치한 시스템의 문제"라고 지적했다.
김 간호사는 "열악한 노동환경 속에서 견디며 쌓아온 경력은 무시되고, 간호사의 전문성, 역할과 고유 업무범위는 존재하나 마치 없는 것과 같다"면서 "적은 인력, 적은 급여, 무시되는 안전, 동료와 환자로부터의 폭력, 초월적인 업무량에 짓눌려 간호사들은 매일매일 떠나고 있다"고 말했다.
2015년에는 메르스 환자를, 현재는 코로나19 환자를 돌보고 있는 최은영 서울대병원 간호사는 "메르스 당시와 현재는 무엇이 달라졌을까 곰곰이 생각해보니 별로 달라진 게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입을 뗐다.
그러면서 "병상 수는 OECD 평균을 넘어 세계 2위지만 공공의료기관의 병상 수는 꼴찌인 10%에 불과하다", "CT, MRI 등 고가 장비 보유 비율은 현저히 높지만 환자를 돌보는 간호인력은 OECD 평균에도 못 미친다"고 지적했다.
보건복지부에서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2017년 기준 우리나라 병원 병상 수는 인구 1000명당 12.3개로 일본에 이어 두 번째로 많았다. OECD 평균(4.7개)과 비교하면 2.6배에 달한다. 의료장비 역시 인구 100만 명당 MRI 29.1대, CT 38.2대로 OECD 평균보다 각각 1.7배, 1.4배 많았다. 그러나 간호인력은 인구 1000명당 6.9명으로 OECD 평균(9.0명)보다 2.1명 적은 것으로 나타났다.
최 간호사는 "불규칙한 교대근무와 야간노동, 과중한 업무, 중증 환자에 대한 부담감, 나아지지 않는 근로조건"이라고 간호사들의 근무 환경을 설명하며 "젊은 시절 한때는 사명감과 헌신으로 일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언제까지 그들에게 희생을 강요할 수는 없다"고 강조했다.
그는 "환자 안전의 핵심은 의료인력"이라면서 "정부는 더 이상 미루지 말고 공공의료기관을 30% 이상 확대하고 제대로 환자를 돌볼 수 있도록 보건의료인력을 늘려 달라"고 요구했다.
전진한 보건의료단체연합 정책국장은 "정부가 성공이라고 자화자찬하는 동안 살릴 수 있는 많은 환자들이 사망했다"면서 "결국은 공공병원의 부족 문제다. 10%밖에 안 되는 열악한 공공병원이 코로나19 환자 78%를 감당해야 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아울러 "지역 공공의료원이 한 곳도 없는 지역들도 소위 예비타당성조사라는 경제성 논리에 막혀 있다"면서 "과연 사람 목숨값은 얼마로 돼 있냐"고 물었다. 이어 "지역의료원에 중환자를 볼만한 제대로 된 시설과 인력과 병상이 없다"면서 "공공의료를 공공의료답게 정부가 대폭 투자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는 "공공의료와 공공인력 충원을 외면한다면 우리 곁에 수많은 사람들이 또다시 죽음을 목도해야 할 것"이라면서 "그런 일들이 또다시 반복된다면 이 책임은 이걸 알고도 방치한 정부에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KPI뉴스 / 권라영 기자 ryk@kpinew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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