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메리카 리포트] "숨을 쉴 수가 없다"가 미국 대선 판도 흔든다
공완섭
wanseob.kong@gmail.com | 2020-06-18 14:51:28
'스윙 스테이트'에서 결정적 변수
트럼프 지지율 하락세 직접 원인
미국 동부 펜실베이니아주 피츠버그시로부터 100 km가량 떨어진 그로브시. 인구 8300명 가운데 95%가 백인으로 지난 2016년 대선 때 3분의 2가 트럼프를 찍은 전형적인 백인촌이다. 조용하던 시골 주민들은 조지 플로이드의 죽음 이후 연일 인종차별 반대시위를 벌이고 있다.
정치적인 시위라곤 해 본 적이 없는 주민들이 거리로 나선 건 사건이 워낙 충격적인 데다 트럼프 정부의 인식과 대응태도에 분노가 폭발했기 때문이다. 시골 주민들이 정치적인 목소리를 내기 위해 거리로 나선 건 그로브시만이 아니다. 펜실베이니아주 67개 카운티 가운데 61개 카운티가 인종차별 반대시위에 동참하고 있다. 이 가운데 50여 개 도시가 4년 전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압승했던 곳이다.
동부의 대표적인 경합주(스윙 스테이트)인 펜실베이니아주 같은 정치적 변화가 전국으로 확산되면 오는 11월 대선에도 큰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게 지역 전문가들의 전망이다. 대니얼 길리온 펜실베이니아 주립대 교수는 "시위대들이 선거기금 모금에 활력을 불어 넣고, 유권자들의 투표 열기를 북돋우고 있어 11월 선거판도가 바뀔 것"이라고 말했다.
필라델피아 인콰이어러는 2016년 대선 때도 트럼프 대통령이 불과 4만4000표의 근소한 차이로 승리했고, 주로 농촌과 소도시에서 몰표를 얻었기 때문에 이 같은 소도시에서의 민심의 변화는 승자독식 방식의 미국 선거판에서의 승패를 가를 수 있는 변수로 작용할 수 있다고 보도했다.
노스웨스턴대 등 4개 대학이 전국 유권자 36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에서도 결과는 비슷했다. 인종차별 철폐 이슈와 시위는 지난 2016년 대선에서도 판세와 진영을 갈랐다. 클린턴은 시위대 편에 섰고, 트럼프와 공화당 지지자들은 "미국을 분열시키는 책동" 이라고 맞섰다.
비록 승리를 이끌어 내지는 못했지만 평등이라는 기치를 들고 나온 시위대와 민주당 지지자들은 적극적인 투표를 한 반면, 공화당 지지자들은 소극적인 행태를 보였다. 공화당 지지자들은 비록 시위대를 못마땅하게 생각하지만 자신들이 인종차별주의자로 비춰지는 것은 원치 않았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연구에 참여한 케빈 드라큘리치 노스이스턴대 교수는 "시위대를 차가운 눈초리로 보는 그룹의 78%는 트럼프를 찍은 반면, 온정적인 유권자들 가운데서는 12%만이 트럼프를 찍은 것으로 나타났다"며 "이 같은 현상이 올 선거에서도 나타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드라큘리치 교수는 또 트럼프 대통령이 시위대 진압의 필요성을 강조하며 은근히 '법과 질서'를 강조하는 트윗을 날린 건, 시위대를 폭도로 몰아가는 한편, 뒤로는 은근히 지지자들에게 추파를 던지는 일종의 꼼수로 선거판을 인종대결구도로 몰아가고 있다고 분석하고 있다.
정치 분석기관들도 앞으로 전개될 팬데믹 양상과 인종차별 반대 시위 두 가지 변수 중 후자를 더 결정적인 요인으로 보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에 대한 지지도가 이를 뒷받침 해주고 있다. 17일 여론조사 기관 유거브(YouGov)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에 대한 긍정 평가는 40.7%, 부정평가는 55.3%로 부정평가가 14.6% 포인트나 높다. 코로나19와 팬데믹이 첨예한 관심사였던 지난 3월 28일에는 오히려 긍정 45.8% 부정 49.7%로 3.9% 포인트의 차이 밖에 없었다. 차이는 갈수록 벌어지고 있는 추세다.
이달 중순 실시한 글로벌 스트레티지 조사 결과는 더 심각하다. 긍정 41%, 부정 58%로 부정평가가 17% 포인트나 높다.
선거 5개월을 남겨 논 시점에 판도를 예측하는 건 위험하지만 여론조사는 트럼프에 크게 불리한 상황이다. 트럼프와 바이든 간의 지지율 격차는 갈수록 커지고 있다. 지난 15일 발표된 대선 전망 조사에서는 조사기관에 따라 차이가 있지만 바이든이 9%~14% 포인트 앞서고 있다. 퀴니피액대학 조사에서는 지난 5월 중순 11%, 4월 초에는 8% 포인트였다.
조 바이든 민주당 후보는 인권 시위를 지지하는 반면, 트럼프 공화당 후보는 시위대를 폭도로 간주하고 진압을 위해 군대를 동원해야 한다는 입장을 취하고 있다.
선거 판세를 예측하는 또 하나의 척도가 자금 모금 상황이다. 시위를 주도하는 단체들이 정치 단체는 아니지만 단순한 인종차별을 넘어 인권, 평등으로의 정책 전환을 요구하고 경찰예산 삭감 등 구체적인 정책 변화를 부르짖고 있어 이미 정치세력화 돼 가고 있다. 이들에게 쏟아지고 있는 엄청난 후원금이 곧바로 11월 대선과 표로 이어질 것이다.
파이낸셜타임스에 따르면 시위 단체에 월마트, 아마존 등 미국 25개 대기업이 4억5800만 달러를 기부한 데 이어 기업들의 후원이 잇따르고 있다. BLM글로벌네트워크는 500만 달러, 1000만 달러의 굵직한 후원금을 냈다. 온라인 모금 단체 컬러오브체인지 그룹은 불과 며칠 만에 700만 명으로부터 후원금을 받았다. 미네소타주 도시재활그룹은 순식간에 6200만 달러를 모았다.
한국의 BTS도 흑인 인권 운동에 100만 달러를 기부했고, 레이디 가가,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등 스타들도 수십만에서 수백만 달러씩 기부행렬에 동참하고 있다.
누가 대권을 쥐게 될 지는 아직 모른다. 한 가지 분명한 건 지금 미 전역에 울려 퍼지고 있는 "숨을 쉴 수가 없다(I can't breathe)" "흑인 목숨도 소중하다(Black Lives Matter)"는 외침이 승패를 가를 거라는 사실이다.
KPI뉴스 / 공완섭 재미언론인 wanseob.kong@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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