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보법 38년 만의 무죄…"고문 가해자들 책임 묻겠다"

권라영

ryk@kpinews.kr | 2020-06-09 08:33:42

[인터뷰] 불법구금·고문 피해자 이재영 씨
'부미방' 사건 주모자로 체포돼 고문 조사
"굵은 몽둥이로 맞아…요추 다 들어냈다"

"입대한 지 사흘 만에 보안대에서 부른다더라고요. 저도 이유를 몰랐어요. 그렇게 1982년 3월 29일부터 4월 19일까지 구금됐습니다."

이재영 씨는 불법 구금 피해자다. 그는 1982년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징역형에 처해졌다. 그러나 불법 구금이 인정되면서 38년 만인 지난 1월, 재심을 통해 무죄를 선고받았다.

▲ 불법구금 피해자 이재영 씨가 지난 5일 ‹UPI뉴스›와 인터뷰하고 있다. [권라영 기자]

지난 5일 ‹UPI뉴스›가 이 씨를 만났다. 이 씨는 당시를 생생하게 기억했다. 그는 보안대에 도착할 때까지도 무슨 일인지 짐작조차 하지 못했다고 한다. 눈을 가린 채 차를 타고 도착한 곳이 501보안대였다.

수사가 시작되면서 비로소 그는 자신이 부산 미국문화원 방화 사건, 일명 '부미방' 사건의 주모자로 의심받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부미방 사건은 1982년 3월 18일 발생했다. 이 씨는 당시 공교롭게도 부산에 있었다. 입대하기 위해 고향으로 내려온 때였다.

이 씨는 연세대학교 경영학과 79학번으로, 그 시절에는 복무기간 6개월을 감해주는 조건으로 교련 이수를 하도록 돼 있었다. 학내에서 격렬한 시위가 벌어진 1981년 11월 25일 이 씨는 교련을 한 차례 빠졌다. 이 때문에 F를 받아 강제징집 영장을 받아 휴학을 할 수밖에 없었다고 그는 회상했다.

"부미방 사건은 반미사건이라 대대적으로 검거해야 하는데 누가 했는지 아무도 몰랐어요. 처음에는 문부식 씨가 용의선상에 올랐는데 잠적해서 찾을 수가 없었죠. 용의자를 찾다가 세 번째로 내가 용의 선상에 올랐던 거 같아요. 부산 출신에 안경 끼고 곱슬머리인 학생운동 관련자를 찾다가 나를 찍은 거죠."

그는 "나를 도시 특별게릴라조직 대장으로 그려놨더라"면서 "사건 당시 무엇을 했는지 일기를 쓰라고 해 관련자들이 다 조사받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분 단위로 진술서를 쓰는데 빼먹은 부분이 있으면 굵은 몽둥이로 맞았다"고 회상했다.

이 씨는 고문 후유증으로 허리가 좋지 않다. 나이가 들면서 더 이상 요추가 유지가 안 돼 최근에 다 들어냈다고 했다.

그러던 중 문부식 씨가 자수하면서 이 씨의 혐의는 좌경의식화로 변경됐다. 그때부터 새로운 조사가 시작됐다. 본가에 있던 그의 서적들이 전부 압수됐다. 이 씨는 또다시 수사를 받으며 일기를 써야 했다. 이번에는 고3 말부터 대학 시절 동안 있었던 일을 기록했다.

그는 최종적으로 국가보안법 제7조 위반 혐의로 구속됐다. 이 씨는 "갖고 있던 책이 증거가 됐고, 또 서클 후배 몇 명을 좌경의식화 시켰다, 공산주의가 좋다는 토론을 했다고 말도 안 되게 진술돼 있다"고 말했다.

재판에서 이 씨는 징역 10개월에 자격정지 10개월을 선고받고 군형무소에 수감됐다가 풀려나면서 제대했다.

이 씨는 자신이 처벌받았던 근거인 국가보안법에 대해 "굳이 있을 필요가 없다"면서 "현행법의 다른 조항에서 다 처벌할 수 있다"는 의견을 내놓았다. 그는 "국가보안법은 목적법"이라면서 "목적은 마음속에 있는 것이니까 입증이 잘 안 돼서 무리한 수사가 될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 38년 만에 무죄를 선고받은 이재영 씨. 그는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했다. [권라영 기자]

징역을 살고 나온 뒤에도 그는 계속 감시당했다. 사회안전법 때문이었다. 학교에서는 복학이 안 된다고 하고, 신원조회 때문에 사무직으로는 취직할 수도 없었다. 버스회사나 공장에 취직하면 담당 형사가 찾아오는 바람에 해고되기를 반복했다.

먹고 살기 위해 여러 곳을 전전하던 이 씨는 세화상사 노동조합에서 총무부장을 맡았다. 그때 노무현 전 대통령과 인연이 닿았다. 이후 그는 국민운동본부와 노동문제연구소에서 일했고, 법무법인 부산에서 사무장도 했다. 노 전 대통령이 대선에 출마했을 때는 도움이 될까 싶어 책 <노무현 내 마음의 대통령>을 내기도 했다.

수사기관의 불법적인 구금과 고문을 통해 달게 된 전과 꼬리표가 그의 인생 방향을 바꿔놓은 것이다.

재심에서 이 씨는 고문과 불법 구금이 인정돼 무죄를 선고받은 후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소송을 걸었다.

이 씨는 "국가의 고의 또는 과실로 인한 손해배상 청구 소송은 제기해놓고 기다리고 있다"면서 "국가뿐만 아니라 고문하고 허위조서를 꾸몄던 담당 수사관들을 전부 공동 피고로 같이 청구했다"고 말했다.

이렇게 하면 재판이 어려워진다는 사실을 그도 알고 있다. 그런데도 이렇게 소송을 제기한 것에 대해 이 씨는 "돈이 중요한 게 아니다"면서 "불법행위의 직접적인 책임자들이 다 빠져나가게 둘 수 없다"며 의지를 다졌다.

KPI뉴스 / 권라영 기자 ryk@kpinew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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