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준영 "피해자 만취 증거 있나" '합의 성관계' 겨냥해 상고

주영민

cym@kpinews.kr | 2020-05-15 16:26:33

"법리 오인 여부 가려 성폭행범 낙인 없애야 해"
"감형 노리는 게 아니라 법리적으로 다투자는 것"

"성폭행범 낙인을 없애야 한다."

술에 취한 여성을 집단 성폭행한 혐의 등으로 재판에 넘겨져 항소심에서 징역 5년을 선고 받은 가수 정준영(31) 측 변호인이 법원에 상고장을 제출하며 상고 이유로 적은 말이다.

▲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위반(카메라 등 이용 촬영) 혐의로 구속영장이 청구된 가수 정준영이 영장실질심사(구속 전 피의자 심문)을 받기 위해 지난해 3월 21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 출석하고 있다. [정병혁 기자]

15일 법조계에 따르면 정준영 측 변호인은 최근 서울고법 형사12부(윤종구 부장판사)에 상고장을 제출했다.

상고장에는 '1·2심에서 유죄를 선고받은 준강간죄 구성 요건이 부족하다. 대법원에서 법리 오인 여부를 가려 성폭행범 낙인을 없애야 한다'는 이유가 담겼다.

변호인은 "행위 자체(성관계)를 갖고 다투는 것이 아니라 피해자가 당시 '심신상실'이나 '항거불능' 상태였다는 점이 입증됐는지가 사건의 핵심"이라며 "형사재판은 증거로 말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같은 양의 술을 먹어도 취하는 정도는 개인차가 있다. 평가의 영역이지, 절대적 판단의 기준이 될 순 없다"며 "감형을 노리는 것이 아니라 법리적 문제를 다투자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변호인의 주장을 종합하면 피해자가 술에 취해 있었지만, 성폭행을 거부하지 못할 정도로 만취 상태(심신상실·항거불능)였는지 명확하게 밝혀지지 않았기에 이 부분에 대해 법리 싸움을 하겠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일반적인 상식선에서 이해하기 어려운 이 같은 논리는 성범죄를 바라보는 변하지 않는 사법부의 판단에 기인한다.

심신미약·음주상태·초범·대학생 등 성범죄 재판에서 판사가 가해자의 감형을 사유로 들먹이는 단어들이다.

이들 단어가 이번에는 가해자가 아닌, 피해자의 상황에 초점이 맞춰졌다는 점이 문제다.

앞서 지난 12일 정준영과 최종훈(30) 항소심 선고 공판에서 재판부는 "선남선녀가 만나 술을 마시다가 성적인 접촉을 하고 성관계를 했을 경우 국가형벌권은 어떤 경우에, 어느 한계까지 개입할 수 있을지 고민했다"고 밝힌바 있다. 

이 같은 판단의 기저에는 성폭력을 남녀가 술을 마시다 벌어진 '해프닝'으로 볼 수도 있다는 사법부의 고질적인 성범죄를 바라보는 시각이 깔려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정준영과 최종훈은 지난 2016년 강원도 홍천과 대구에서 피해자를 집단 성폭행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피해자가 항거불능인 상태를 이용한 집단적인 범행(특수준강간)임에도 재판부는 '선남선녀가 만나 술을 마시다가 성적인 접촉을 하고 성관계를 했을 경우'로 치부한 것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정준영 측 변호인이 '항거불능인 상태가 아닐 수 있다는 것'을 전제로 '성폭행범 낙인을 없애야 한다'는 논리의 상고장 제출이 가능했다고 볼 수 있다.

항거불능 상태에서 준강간이 남녀가 함께 술을 마시다 보면 생길 수 있는 일로 치부된 것은 차지하더라도 정준영 측 변호인은 이를 넘어 항거불능 상태가 아닐 수 있으니 이 부분에 대해 법리적 문제를 다투자는 논리는 결국 2차 피해를 야기하는 게 아니냐는 의문이 든다.

이 같은 의심은 최종훈과 달리 정준영이 항소심 선고가 나올 때까지 피해자와 합의하지 못했다는 점과 맞물리면서 더욱 증폭된다.

특히 항소심 재판부가 합의조차 못 한 정준영에게 '진정한 반성'을 이유로 징역 1년을 감형해 줬다.

하지만, 정준영 측이 상고장을 제출하며 2차 피해를 주는 모습을 볼 때 피해자에 대한 '진정한 반성'이라는 게 얼마나 주관적인 판단인지 방증한 셈이 됐다.

재경지법 출신 한 변호사는 "성범죄의 경우 법관의 재량이 과도해지면 사법 부패와 유전무죄, 무전유죄 논란을 부를 수 있다"며 "대학생이어서, 반성하고 있어서, 술에 취해서 등 온갖 이유로 감형이 가능하다 보니 가해자가 전관 변호사를 고용하면 형량이 크게 줄어 들 수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정준영 측 상고장을 직접 봐야 알 수 있겠지만, 피해자가 '심신상실'이나 '항거불능' 상태였다는 점이 입증됐는지가 사건의 핵심이라고 주장한 것으로 볼 때 합의된 성관계라는 측면을 강조하겠다는 의미로 풀이된다"고 덧붙였다.

KPI뉴스 / 주영민 기자 cym@kpinew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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