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호의 문학공간] "침묵해서는 안 되는, 그것은 깊은 일"
조용호 문학전문기자
jhoy@kpinews.kr | 2020-04-20 19:50:51
참사 이후 시간을 견뎌온 시인의 피 흘리는 내면
"사랑할 수는 있어도 사랑을 초과할 수는 없었던..."
그해 사월 진도 앞바다에서 일어난 참사는 많은 이들을 절망케 했다. 유가족의 참담함이야 더 언급할 나위도 없지만, 꽃 같은 아이들이 바다에 가라앉는 장면을 생중계로 지켜보아야 했던 대다수 시민들의 내상은 육년이 지난 지금도 다 아물지 못했다. 그중에서도 유난히 사람과 시대의 촉수를 누구보다 예민하게 감지하는 이들이라면, 더욱이 바람 한 줄기에도 흔들리는 시인이라면 그 상처는 더 깊고 오래 피 흘릴 수밖에 없다. 안현미(48) 시인이 최근 펴낸 네 번째 시집 '깊은 일'(아시아)에는 그날 이후 견디어온 일상이 투영돼 있다.
"그날 이후 누군가는 남은 전 생애로 그 바다를 견디고 있다// 그것은 깊은 일// 오늘의 마지막 커피를 마시는 밤// 아무래도 이번 생은 무책임해야겠다// 오래 방치해 두다 어느 날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어떤 마음처럼// 오래 끌려다니다 어느 날 더 이상 쓸모없어진 어떤 미움처럼// 아무래도 이번 생은 나부터 죽고 봐야겠다// 그러고도 남은 시간은 삶을 살아야겠다// 아무래도 이번 생은 혼자 밥 먹는, 혼자 우는, 혼자 죽는 사람으로 살다가 죽어야겠다// 찬성할 수도 반대할 수도 있지만 침묵해서는 안 되는// 그것은 깊은 일"('깊은 일')
무너진 시인은 모든 것을 다 놓아버리고 싶은 마음이다. 급기야 "이번 생은 나부터 죽고" 싶은 충동으로 전율한다. 죽는 일은 쉽지 않고 남은 생은 시퍼렇게 다시 이어지는 법, 시인은 그냥 '혼자 죽는 사람으로 살다가 죽어야겠다'고 한 발 물러서지만 그 '일'만은 포기할 수 없다. 저 참담에 대해 끝까지 망각하지 않고, 침묵 속으로 도피하지 않는, '깊은 일'.
세 번째 시집 '사랑은 어느 날 수리된다'를 펴낸 시점이 그 참사가 있던 해 오월이어서 생생한 충격이 담긴 시편을 그때 첨부하기도 했지만, 그것으로는 미진해서 육년 만에 나온 이번 시집에 오래 길게 숙고한 생각들을 응축해 넣었다. 영문 번역판과 함께 펴내는 아시아출판사 K-포엣 시리즈로 선보인 이번 시집에는 스물다섯 편만을 골라 실었다. 시인 자신은 '겨우 시집'이라고 겸양을 보이지만, 오히려 더 선명하게 시인의 육성이 들리는 강점이 있다.
"일요일은 동굴처럼 깊다 압력밥솥에서 압력이 빠지는 소리를 베토벤 5번 교향곡 운명만큼 좋아한다 그 소리는 흩어진 식구들을 부르는 음악 같다 일요일은 음악 같다 십자가는 날개 같다 천사의 날개 고난 버전 같은 십자가 아래 누군가 깨지지도 않은 거울을 내다 버렸다 교회에 가듯 그 거울 속에 가서 한참을 회개하다 돌아왔다 (중략) 거꾸로 읽어도 일요일은 일요일 그래서 자꾸 거꾸로 읽고 싶은 일요일 무료도 유료도 아닌 일요일 사랑할 수는 있었지만 사랑을 초과할 수는 없었던 인생을 헌금 바구니처럼 들고 있던 우리의"('독거' 부분)
시인은 '독거'의 삶에 죄의식이 녹아 있다고 했다. '아무래도 이번 생은 혼자 먹고 혼자 울고 혼자 죽는 사람'으로 살아가야겠다고 낙담했던 이면에는 '사랑할 수는 있었지만 사랑을 초과할 수 없었던 인생'에 대한 자책도 있다. 이러한 무기력과 어쩔 수 없음에 대한 하소연은 '짐승도 사랑도 못된' 처지에 대한 고백으로 이어진다.
"사랑은 짐승에서 왔을 것이다// 욕망에 머무르면 짐승이고// 마음에 도착하면 사랑이고// 오르지 못할 계단을 올려다보며 울부짖는// 오후 4시// 짐승도 사랑도 못 된// 많은 것이 그러했듯"('사랑의 계단')
그러한가. 우리는 짐승처럼 욕망도 제대로 발산하지 못하고, 마음이 도착하는 사랑에도 이르지 못한 채 그저 계단 끝을 올려다보며 울부짖는 처지인가. 다른 많은 일들에서도 그렇게 엉거주춤 포기했듯이. '식당 후추통 옆 고동색 색연필의 실밥을 당기며 무능력하게 앉아 있는 늙은 여자'를 떠올리며 '우리 모두는 고동색 악몽에 연루되어 있는지도 모른다'('서푼짜리 오페라를 위한 시놉시스')고도 한탄한다. 죽지 않는 한 살아갈 수밖에 없으니 무능력하다고, 무기력하다고 언제까지나 속으로 피를 흘리며 자탄하고 살아야만 하는가.
"생강꽃이 피면 해마다 사표를 쓰고 찢기를 반복하고 번복하던 그녀는 마음을 일곱 개로 얼려 냉동실에 보관하고 정신없이 출근하던 그녀는" 어느 날 결심한다. "발등은 믿는 도끼가 찍고 생강꽃은 희망 없이도 해마다 핀다는 걸 알아버린 그녀는 더 가난하고 더 무능력해지더라도 일곱 개로 얼린 마음을 해동시키기로."('무능력의 능력')
"대륙에서 돌아온 남자가 국수를 삶는다// 국수 그릇은 두 개/ 국수 그릇은 두 개// 사랑은 기어이는 사랑을 못내 지나가야 할 터인데/ 한 여자를 오랫동안 등지지 못해/ 여백이 아주 많이 남아 있는 등을 돌리고/ 대륙에서 돌아온 기향씨가 국수를 삶는다// 후루룩 후루룩/ 후루룩 후루룩// 사랑은 기어이는 사랑을 뜨겁게 넘겨야 할 터인데/ 한 남자를 오랫동안 등지지 못해/ 어쩔 수 없이 나도 그냥 그대로 놓아둔 적 있다/ 어떤 미련과 어떤 불안과 어떤 난처를// 오늘 밤 펄펄 눈은 나리고/ 어쩔 수 없이 국수를 삶는 등이 있다/ 어쩔 수 없이 서러운 밤이 있다"('기향 국수')
시인은 인간으로 살다 보면 아무리 발버둥쳐도 어쩔 수 없는 '깊은 일'이 있다는 사실을 이제 받아들인다. 사랑은 사랑을 지나가야 하고 사랑은 사랑을 뜨겁게 넘겨야 하는데,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대륙에서 돌아온 남자'가 국수를 삶는, '여백이 아주 많이 남아 있는 등'을 연민으로 껴안는다.
안현미는 "커다란 사건이 일어난 지 벌써 육년이라는 시간이 지났다"면서 "그 시간 속에서 직장을 다니며 무기계약직에서 정규직이 됐음에도 불구하고 사표를 내고 나와 가장 낮은 곳으로 가서 뭔가를 얘기해야겠다는 생각이었다"고 말했다. 안 시인은 "이번 시들을 모두 세월호에 연결지을 수는 없지만 나름대로는 이 시집을 거기에 바치고 싶었다"면서 "결국 말하고 싶었던 것은 그게 뭐가 됐든 인간 이하는 되지 말아야 한다는 이야기인 것 같다"고 덧붙였다.
"무섭게 쓸쓸하고 한없이 고독한 봄입니다. 그렇습니다. 사랑을, 인간을, 잃어야 한다면, 우리는 인간을 중단해야 맞다고 생각하는 밤입니다."('시인노트')
KPI뉴스 / 조용호 문학전문 기자 jhoy@kpinew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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