궤도 이탈한 '광주형 일자리'…노사 상생 무너지나
김이현
kyh@kpinews.kr | 2020-04-09 14:31:04
'노동이사제'로 첨예한 대립…"상생경영"vs"과도한 요구"
전문가들 "예견된 갈등…봉합돼도 진흙탕 싸움 이어질 것"
국내 최초의 노사 상생 지역모델인 '광주형 일자리'가 좌초될 위기에 처했다. 사업의 한 축인 한국노총과 지역 노동계가 협약 파기를 공식 선언했다.
노동계는 '정치 놀음'에 이용당했다며 등을 돌린 상태다. 사업 정상화 논의를 위해 9일 열린 노사민정협의회 1차 회의도 불참했다. 이 같은 불협화음은 어느 정도 예견돼 있었다는 게 전문가들의 평가다. 기존에 있던 균열들을 메우지 않은 채 성급하게 진행하다 결국 한꺼번에 무너졌다는 것이다.
'광주형 일자리'를 주도해온 이용섭 광주시장은 이날 노동계의 복귀를 거듭 요구했고, 노사민정협의회도 노동계의 사업 복귀를 호소하는 결의문을 채택했다. 합작법인 주주들은 "이달 29일까지 돌아오라"며 최후통첩을 날렸다.
'빨간불' 켜진 '노사 상생'
광주형 일자리는 '공동체의 가치'를 내세운 혁신공장이다. 한국노총과 현대자동차, 광주시 등 '노사정'이 참여해 지역 일자리를 창출한다는 취지였다. 전체 노동자 평균 초임은 주 44시간 기준 연 3500만 원으로 설계됐다. 동종업계 노동자 초임의 절반 수준이지만, 주거·보육·의료 등 복지를 통해 노동자들의 실질임금을 높인다는 합의점을 찾아냈다.
협약의 첫 사업인 완성차 공장 합작법인 광주글로벌모터스(GGM)도 지난해 12월 공장 기공식을 마쳤다. 여기에는 광주시와 노동계의 노사상생발전 협정서를 조건으로 37개 업체가 주주로 참여했다. 현재 철골 구조물 설치공사가 진행되고 있으며, 전체 공정률은 8.1%다. 내년 4월 시험생산을 거쳐 같은 해 9월 완성차 양산을 목표로 하고 있다.
하지만 목표 달성에 빨간불이 켜졌다. 한국노총 광주지역본부는 지난 2일 "정치놀음으로 전락한 광주형 일자리에 불참하겠다"며 협약 파기를 공식 선언했다. 한국노총은 "광주시가 끝까지 아집과 독선, 비밀협상으로 일관하며 스스로 협약을 파기했다"면서 "더 이상 광주형 일자리는 존재하지 않고 '광주 일자리' 또는 '현대차 하청공장'만 남게 됐다"고 비판했다.
'공동체의 신뢰'는 처음부터 금이 간 채로 출발했다. 윤종해 한국노총 광주지역본부 의장은 "광주형 일자리의 핵심은 '4대 의제'"라면서 "적정 임금과 적정 노동시간은 노동계가 양보해서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는데, 나머지 두 개인 노사 책임경영과 원·하청 관계 개선 방안에 대해선 이때까지 제대로 된 설명을 들을 수 없었다"고 말했다.
이어 "광주시는 우선 현대차와의 협약이 중요하니까, 협약을 끝내고 세부사항을 체결하자고 했다"면서 "이후 원·하청 관계 계선은 동반성장으로, 노사 책임경영은 투명경영으로 용어를 바꿨는데, 갑자기 협약서에 없는 내용은 받아들일 수 없다며 반대했다"고 주장했다. 여기서 쟁점은 투명경영 부분에 해당하는 '노동이사제'로, 지금까지 첨예한 대립 중이다.
"노동자도 권한 가져야" vs "'노동이사제' 사업 구상에 없어"
노동계는 '노사정 합의'로 법인을 세운 만큼, 이사회에 노동자도 포함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윤 의장은 "직접 경영에 참여하겠다는 게 아니라, 노동자도 경영 정보를 알고 있어야 한다는 것"이라면서 "그게 아니면 현대차의 또 다른 하청공장일 뿐이다"라고 강조했다. 노동계와 사측이 권한과 책임을 같이 나눠가져야 한다는 얘기다.
하지만 광주시와 사측은 난색을 표했다. 이용섭 광주시장은 "투자협약 내용에 본질적으로 위배되는 내용을 제외하고는 노동계의 요구를 모두 수용한다"면서도 "노동이사제는 협정서에 포함되지 않았기 때문에 받아들일 수 없다"고 선을 그었다. 광주글로벌모터스 관계자도 "노동이사제는 당초 사업 구상에 없었던 사안"이라면서 "처음 얘기했던 것과 다른 요구를 들어줄 수는 없다"고 말했다.
여기에 경영진 인사는 불신의 골을 더 깊게 했다. 지난해 8월 열린 GGM 출범식 및 발기인 총회에서 대표이사에 박광태 전 광주시장, 부사장에 현대차 출신 박광식 씨가 선임됐다. 노동계와 시민단체는 "박 전 시장은 재임 시절 업무추진비를 유용해 유죄 판결을 받았고, 자동차 산업 전문가도 아니다"라며 해임을 요구했다. 부사장인 박 씨는 '반 노동계 성향'을 이유로 반대해왔다.
끝내 좌초 위기…"터질 게 터졌다"
결국 한국노총은 발을 뺐다. 윤 의장은 "이 사람들은 광주형 일자리를 할 생각이 없다고 판단했다"며 "노사 상생이면 말린다고 해도 들어갈 텐데, 지금은 그냥 일자리고 참여할 이유가 없다"고 설명했다. 업계 관계자는 "노동계는 자신들의 요구사항이 매번 '패싱' 당했다고 느낄 것이고, 사측은 노동계의 요구가 과한 만큼 끌려다니면 안 된다고 생각했을 것"이라면서 "광주시는 이를 조율할 힘이 없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터질 게 터졌다'는 반응이다. 이호근 대덕대 자동차학과 교수는 "산업체 주도가 아니라 정부나 광주시가 주도하고, 주요 보직은 부사장이 현대차 출신이지만 나머지는 다 공무원 출신"이라면서 "이런 사람들이 기업을 운영한다는 건 어불성설"이라고 꼬집었다.
업계 관계자는 "취지는 좋았지만, 애초부터 갈등을 예고하고 돌입한 사업"이라면서 "어떻게든 공장을 설립하고, 경쟁력을 확보해나가면서 이견을 봉합할 가능성도 있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5년 전부터 제기돼 온 논쟁거리를 제대로 풀어내지 못하고 있어 안타깝다"고 말했다.
"갈등 봉합돼도 악순환 반복 가능성"
갈등이 봉합된다 하더라도 악순환은 반복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이호근 교수는 "노동계 주장대로 경영에 참여를 하는 건 좋은데, 적자가 나면 그 부분을 노동자들이 메꿀 것인가"라며 "책임에 따른 의무가 있어야 하는데 의무 없이 권리만 주장하면서 경영에 참여하고, 그 수익을 아껴서 본인들의 인센티브로 달라고 할 게 뻔하다"고 말했다.
이어 "노동계가 참여하지 않고 진행될 경우에는 일부 신규사업이나 다른 노동자를 모집하겠지만, 이렇게 모인 노동자들은 또 노조를 결성할 것"이라면서 "한노총이나 민주노총은 이들을 끌어안으려고 할 것이고 또다시 진흙탕 싸움이 이어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러면서 "광주형 일자리는 파기되는 게 정상이고, 그렇게 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김필수 대림대 자동차학과 교수는 "기아차의 경차를 위탁생산하는 동희오토는 노동자 연봉이 4000만 원대인데, 광주형 일자리는 의료, 주택 등 인센티브를 주면 5000만 원대 후반"이라면서 "기존 위탁공장과 차이가 없으면 의미도 없는데, 기본 조건인 연봉부터 어그러졌다"고 말했다.
아울러 "노동계도 발을 담그는 투영경영은 좋지만, 소비자 수요에 맞게 차종과 물량을 조절하는 유연성이 떨어질 것"이면서 "근본 생존에 대한 부분을 건드리는 것이라 간단하지 않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협약 때 가졌던 마인드가 사라지게 되면 좌초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KPI뉴스 / 김이현 기자 kyh@kpinew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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