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도서관에 비치된 해적판 '대망'…저작권이 무슨 소용"

김형환

hwani@kpinews.kr | 2020-04-06 12:48:15

'도쿠가와 이에야스' 저작권 승소한 임우기 대표
민사소송으로 '대망' 배포금지 처분까지 받았으나
"서울대 등 공공도서관에서 버젓이 대출 " 분통
출협 "저작권 존중과 법적 제도적 장치 절실"

"박근혜 전 대통령도 옥중에서 불법 해적판 <대망>을 읽고 있다잖아요. <대망>같은 해적판이 출판계의 기본 질서를 흐려 놓고 있어요."

솔 출판사의 임우기 대표는 UPI뉴스와 인터뷰하는 동안 격한 감정을 숨기지 못했다.

▲임우기 대표가 지난달 27일 솔출판사 사무실에서 입장을 밝히고 있다. [양동훈 인턴기자]


문학평론가로도 유명한 임 대표는 <대망>을 출간한 동서문화사와 어떤 악연이 있길래 이렇게 분노하고 있을까.

해외 도서에 대한 저작권 개념이 제대로 없었던 1970년대, 원작 <도쿠가와 이에야스>를 한국의 여러 출판사가 번역 및 발간했다. 이 중 가장 유명한 것이 '동서문화동판 주식회사(이하 동서문화사)'가 발간한 <대망>이다.

<대망>의 원작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일본의 소설가 야마오카 소하치(1907~1978)가 17년에 걸쳐 집필한 대하소설이다. <도쿠가와 이에야스>은 일본에서 1억 부 이상이 팔린 희대의 베스트셀러다. 또한 <대망>은 한국에서 2000만 부 이상 팔린 것으로 추정되고 있으며 과거 정치인이나 경제인의 필독서로 꼽히기도 했다.

1996년 한국이 국제 저작권 조약인 베른조약에 가입하면서, 해외 저작물 역시도 한국 저작물과 동일한 수준의 보호를 받도록 저작권법이 개정됐다.

다만 1995년 1월 1일 이전에 작업이 완료된 저작물은 계속해서 사용할 수 있게 하는 '회복저작물 경과조치'가 적용됐다. 기존에 판매되고 있던 서적 등을 일시에 금지할 경우 혼란이 생길 수 있다는 판단에서였다. 이 조치에 따라 1970년대에 번역한 <대망> 역시도 법적으로 그 권리를 인정받았다.

1999년 솔 출판사는 일본 고단샤와 정식 저작권 계약을 맺고,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정식 번역본을 2000년 출간했다.

문제는 동서문화사가 <대망>을 재출간하면서 벌어졌다. 동서문화사는 2005년 <대망>을 재출간한 데 이어 2015년 양장본까지 출간했다.

솔 출판사는 동서문화사가 새로 출간한 <대망>이 300여 곳을 수정했기 때문에 사실상 개정판을 낸 것으로 회복저작물 경과조치의 대상이 되지 않는다며 2017, 2019년 각각 형사·민사 소송을 제기했다.

반면 동서문화사는 해당 수정은 문법이나 오타 등에 한한 것이며, 실제로는 1994년 수정 작업을 마쳤으나 출판사 내 사정으로 출간이 2005년까지 미뤄진 것이라고 항변했다.

저작권법 위반 관련 형사소송은 2019년 1심에서 동서문화사 고 모 대표에게 징역 8월에 집행유예 1년, 벌금 1000만 원의 유죄 판결이 내려졌고 현재 항소심이 진행 중이다.

솔 출판사가 동서문화사에 제기한 손해배상 청구 소송은 조정을 통한 합의로 끝이 났다. 동서문화사는 8500만 원을 솔 출판사에 배상하고, 보유한 서적과 필름 등을 파기하며, 더 이상 서적의 배포나 유통을 할 수 없다는 것이 조정의 내용이었다.

이미 민사조정까지 끝냈고 형사소송은 진행되고 있는 상황에서 임우기 대표가 분통을 터뜨리는 대목은 도서관 문제였다.

임 씨는 "불법 해적출판물로 판결난 도서를 공공도서관들이 버젓이 비치하고 계속 대출해주고 있는 것은 어불성설"이라며 강하게 문제를 제기했다.

UPI뉴스가 실제 서울 시내 주요 10개 대학 도서관을 조사한 결과, 모든 도서관에서 2005년판 또는 2015년판 <대망>이 대출가능 도서로 분류돼 있었다.

▲ 한 대학도서관에 비치되어 있는 동서문화사의 <대망> [양동훈 인턴기자]


더욱이 서울의 12개 공공도서관의 경우 10개 도서관에서 2005년판 또는 2015년판 <대망>을 대출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불법출판물로 판정된 도서를 취급하는 방식도 도서관마다 달랐다. 국립중앙도서관 등 규정이 있는 곳이 일부 있었지만, 대다수 도서관에서는 해당 규정이 아예 없는 것으로 드러났다.

부산대도서관 관계자는 "실제 관련 규정이 없다"고 밝혔다. 그는 그러나 "공신력 있는 기관에서 공문으로 요청해 온다면 내부 회의를 거쳐 해적출판물의 대출금지와 폐기 여부를 결정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서울대도서관 관계자 역시 구체적인 규정이 없다고 밝혔으며, 구리시 인창도서관도 제도적으로 규정하고 있는 사항은 없다고 말했다.

국립중앙도서관 관계자만 "해적판으로 (확정) 판결된 자료는 검색이 안 되도록 막고, 자료 열람도 제한하고 있다"고 밝혔다.

문체부 관계자는 "해적 출판물은 비치하지도 이용하지도 않는 게 온당하다"며 "국립중앙도서관의 경우 지침으로 대출을 금지하도록 하고 있다"고 전했다. 그러나 "지방자치단체 도서관은 자체적으로 운영하고 있는 만큼 이런 규정을 제대로 적용하지 않고 있는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서울대 관계자는 "이 사안에 딱 맞아떨어지는 세부적인 규정은 없지만, 시행세칙에 저작권 준수 규정이 있는 만큼 판결문 등의 자료를 첨부한 공문을 통해 파기요청을 해온다면 내부 논의를 거쳐 이를 처리할 수 있을 것"이라고 전했다.

현재 공공도서관의 불법출판물의 비치나 대출을 금지하거나 규제하는 현실적인 수단이 없다는 것이 큰 문제라고 관계자들이 공통적으로 지적하고 있는 것이다.

▲ 일본 고단샤의 <도쿠가와 이에야스>(좌), 솔출판사의 <도쿠가와 이에야스>(중), 동서문화사의 <대망>(우) [김형환 인턴기자]


이같은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저작권을 존중하는 출판문화가 정착되고 이를 뒷받침하는 제도적 장치가 필요하다고 관계자들은 말하고 있다.

한국출판문화협회는 <대망>을 해적 출판한 동서문화동판 고 모 대표가 1심에서 유죄판결을 받자 이를 환영한다는 성명을 발표했다. 협회의 박노일 상무는 "솔 출판사측의 요청이 없었음에도, 출판사들이 저작권을 보호하고 준수하는 분위기를 조성하자는 취지에서 앞장서 성명을 냈다"고 밝혔다.

솔 출판사 임우기 대표는 "우리나라의 출판 시장이 외형적으로는 커졌지만 내부적으로 윤리의식은 그만큼 높아지지 못했다"며 "법적 시스템 이전에 저작권을 보호하고 존중하는 출판 문화와 제도적 뒷받침이 절실하다"고 강조했다.

박익순 한국출판저작권 연구소 소장은 협회의 역할과 특히 저작권법 개정이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박 소장은 "출판단체(협회)에서 번역서의 경우 회복저작물과 함께 불법이나 편법적인 도서의 리스트를 취합하여 발표해야 한다"며 "이를 근거로 서점과 도서관에 적극적인 협조를 구해 이들 해적도서를 퇴출하고 추방시키는 것이 시급하다"고 밝혔다.

아울러 "회복저작물 경과조치의 적용시한을 특정 시기까지로 제한하고, 그 이후에는 반드시 원저작권자의 허락을 받아 출판물의 배포와 이용이 이뤄지도록 저작권법을 개정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KPI뉴스 / 김형환 ⋅ 양동훈 인턴 기자 hwani@kpinew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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