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부동산만큼은 확실히 잡겠다"는 공언(空言)
류순열 기자
ryoosy@kpinews.kr | 2020-01-16 13:50:57
"부동산만큼은 확실히 잡겠다."
문재인 대통령은 신년 기자회견에서 이렇게 공언했다. "더 강력한 대책을 끝없이 내겠다"면서. 부디 그러길 바란다. 그러나 공허하고 미심쩍다. 한 두번 들은 얘기인가. 귀에 익숙한 레토릭이 된 지 오래다.
집권 4년 차라면 "부동산만큼은 확실히 잡았다"고 말했어야 했다. 지난 3년 동안 대체 뭘 했기에 아직도 다짐의 연속인가. 서울 아파트값은 "빚내서 집 사라"던, 박근혜 정부 4년보다도 훨씬 더 뛴 터다.
그것만으로도 이미 문재인 정부의 부동산 정책은 실패했다. 정책 효과 반감의 이유로 문 대통령은 언론 탓을 했다. '세금폭탄론'을 유포하는 '삐딱한 보수언론'의 영향이 없지 않을 것이나, 책임 전가일 뿐이다. 진짜 이유는 정부 정책 자체다.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은 "사는 집 말고 파시라"고 했었다. 그래서 다주택자들이 살지 않는 집들을 내놨나. 천만에. 집부자들은 집을 꼭 움켜쥐고 임대사업의 세상으로 도피했다. 임대사업자에게 세금혜택을 확대해줬기 때문이다. 집을 팔라면서 집부자들에게 탈출구를 열어줬으니 시장에 매물이 나올 리 있나. 임대주택 등록은 2017∼18년 급증했다.
정권 초반 부동산 보유세 '찔끔 인상', 2기 내각 인선에서 집을 세 채 가진 인사를 국토교통부 장관으로 지명한 건 또 어떤가. 정말 집값을 잡겠다는 건지, 집값 잡는 시늉을 하겠다는 건지 그 진의를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욕망이 넘실대는 시장이 이 허약한 고리를 놓칠 리 없다. 투기와의 전쟁을 선포해놓고 정작 투기 심리를 부추긴 건 그 누구도 아닌, 정부 자신이었다. 문재인 정부 들어 집값이 폭등한 건 그렇게 '말 따로 행동 따로'의 정책이 자초한 결과였다.
처음부터 너무 느슨하고, 허술했던 거다. "하늘이 두 쪽 나도 집값은 잡겠다"던 노무현 정부의 DNA를 계승한 정부, '촛불혁명'덕에 권력을 쥔 정부가 맞다면 달랐어야 했다.
어떻게 촛불혁명 정부라면서 의지와 결기가 군사독재정권의 바통을 이어받은 노태우 정부만도 못하단 말인가. 노태우 정부야말로 혁명적이었다. 토지공개념 법제화와 북방외교를 펼쳤는데, 모두 이념의 덫에 걸리기 딱 좋은 정책들이었다.
특히 토지공개념은 그들의 지지기반인 기득권층의 이해와 충돌하는 것이었다. 그럼에도 꿋꿋하게, 과감하게 밀어붙였다. 당시 청와대 경제수석이던 경제석학 박승은 "부동산값 상승이 불평등 심화, 국민생활 빈곤화의 근본원인이라고 보고 이 제도의 필요성을 누차 말씀드렸다"고 회고했다.
문재인 정부에선 그와 같은 비상한 각오, 발상의 전환, 과감한 실행 어느 것 하나 제대로 하는 걸 보지 못했다. 위기마다 해결사였던, 대책반장 김석동 전 금융위원장의 제언이라도 진작 경청했다면 달랐을까. 연초 UPI뉴스와의 인터뷰에서 김 전 위원장은 '발상의 전환'과 '과감한 실행'을 주문했다.
ㅡ주택문제가 심각한데
"우리에게 현실적으로 닥친 가장 큰 문제가 주택문제다. 주택문제는 청년, 고령화, 가계부채, 미래소득 문제를 다 포괄한다."
ㅡ문재인 정부 의지와 반대로 집값은 폭등했다
"부동산 정책으로는 되지 않는다. 공공임대로 각오하고 가야 한다. 민간은 기본적으로 이윤의 주체다. 그런데 주택은 공공재다. 집 없는 사람한테는 공공재로 해주고, 집 있는 사람한테는 사유재산으로 해주면 된다. 와장창 지어서 한방에 끝내야 한다.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
ㅡ구체적으로 어떻게 해야 한단 건가
"주택 시스템은 희망하는 사람들에겐 전부 퍼블릭(공공주택)으로 가야 한다는 것이다. 죽을 때까지 살 수 있는 공공주택 말이다. 정부 땅 많잖아. 정부 소유 아파트 지어서, 공금리 정도 수준에 임대해주면 된다. 그러면 죽을 때까지 기본소득으로 다 살 수 있다. 빚에 시달리지 않으니 소비도 는다. 이걸 해결 못하면 대한민국은 미래가 없다."
ㅡ외진 데다 공공임대 주택 지은들 효과 있겠나
"그런 곳에 GTX를 깔면 된다. 부동산 업자가 투기하는 곳에 깔지 말고 누구든지 살 수 있는 곳에 깔아야 한다. 공공임대 주택 단지를 살기 좋은 곳으로 만들면 된다."
문재인 정부는 자신의 힘으로 권력을 쟁취한 게 아니다. 촛불혁명의 염원이 그들에게 권력을 쥐여준 것이다. "새로운 대한민국을 만들라"는 준엄한 명령과 함께.
이를 잊지 않았다면 정신을 가다듬고 무뎌진 날을 다시 벼리기 바란다. 촛불혁명 정부가 군사독재 DNA를 이어받은 정권보다 못하다는 것은 부끄러움을 넘어 참담한 일이다.
KPI뉴스 / 류순열 편집국장 ryoosy@kpinew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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