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지지도 군사 행보, 김정일 51회(38.1%) vs 김정은 56회(36.1%)
현지지도 경제 행보, 김정일 42회(31.3%) vs 김정은 29회(18.7%)
UPI뉴스는 지난해 국정감사 당시 국가정보원과 국방정보본부가 국회 정보위에 제출한 △김정은 집권 이후 현지지도 현황 △김정은 집권 이후 군부대 시찰 동향 △김정은 집권 이후 접견한 해외인사 현황 등 김정은 국무위원장 동향 관련 보고를 단독입수해 이를 토대로 북한 관영매체에 보도된 김정은 집권 이후 8년치 공개 일정(2012~2019년)을 전수조사했다. 또한 UPI뉴스는 전수조사한 결과(데이터)를 근거로 김정은 위원장의 군부대 시찰 동향과 경제(인민생활) 현지지도 현황 비교, 전임 김정일 국방위원장 시절(2001~2011년)과의 비교 등 다양한 비교분석틀을 통해 김정은 정권의 체제 안정성과 앞날을 예측해 본다. 김정은 집권 이후 정책 기조는 크게 △핵무력·경제건설 병진노선(2012~2017년) △병진노선의 승리 선언 및 경제건설 총력집중(2018년) △자력갱생 기치로 정면돌파전(2019년 12월말)으로 구분할 수 있다. 이 기획은 김정은의 각 시기별 행보를 탐색해보는 '데이터로 김정은 읽기'이다. [편집자주]
김정일 시대와 김정은 시대를 구분 짓는 핵심 노선은 이른바 '선군정치' vs '병진노선'으로 대비된다. 선군(先軍)정치는 김정일의 '군 중시'에 토대한 국방 위주 '군의 체제 선도 정치'이다. 병진노선은 김정은의 핵무기·미사일 건설과 경제건설을 병행하는 노선을 지칭한다.
▲ 김정은 위원장이 '조선인민군 땅크병(탱크병) 경기대회-2017'을 참관해 경기에 참가한 탱크병들과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2017.4.1 [조선중앙통신] 북한은 본디 김일성 시대부터 당의 영도적 역할을 강조하는 가운데 헌법과 당규약에 당의 지도를 국가 운영의 기본원리로 명문화한 '당우위 국가'이다. 하지만 김정일은 김일성 주석 사망(1994. 7) 이후 군(軍)을 앞세운 선군정치를 표방했다.
김정일은 소련 및 동구 사회주의권 붕괴, 경제난 심화, 김일성 사망, 식량난으로 인한 '고난의 행군'을 겪으면서 북한 체제의 안정성이 흔들리자 충성심과 물리력을 갖춘 군을 전면에 내세운 상시적 위기관리체제, 즉 일종의 상시적 비상계엄을 통해 체제의 안정을 도모했다.
북한에서는 김일성 사후 1995년 1월 1일 김정일 최고사령관이 조선인민군 제214군부대, 이른바 다박솔중대를 방문한 것을 선군정치의 시작으로 간주한다. 김정일은 김일성 사후 3년상을 치르며 공식승계를 미루어오다가 1998년 9월 최고인민회의 제10기 1차회의(9. 5)를 개최해 헌법 수정을 통해 국방위원장 중심의 새로운 통치구조를 출범시켰다.
하지만 김정일도 김정은을 후계자로 내정한 이후부터는 당 운영의 정상화를 추진했다. 김정일은 2010년 9월 3차 당대표자회를 44년만에 개최해 당규약을 가정해 김정은을 당중앙군사위원회 부위원장으로 선출했다. 김정일의 선군정치 하에서 유명무실했던 당중앙군사위원회는 인원도 6명에서 19명으로 충원되어 정상화되었다.
김정일 사망(2011. 12. 17) 이후 김정은은 당 기능의 정상화에 박차를 가해 4차 당대표자회, 당중앙위원회 및 당중앙군사위원회 전원회의, 정치국 회의 등의 공식 회의체를 통해 인사와 주요 정책을 토의결정함으로써 전통적인 당우위체계를 복원했다.
김정은은 이어 2016년 5월 36년만에 7차 당대회(5. 6~9)를 열어 당규약을 개정해 '당 위원장'직을 신설해 자신을 추대함으로써 북한은 '당 제1위원장' 시대를 마감하고 김정은을 김일성·김정일과 같은 반열에 올려 놓았다. 또한 김정은은 최고인민회의 제13기 4차회의(6. 29)를 개최해 헌법 개정을 통해 '국무위원회'를 신설해 국무위원장에 취임했다.
김정일의 선군정치 노선 하에서 최고통치기구로 군림했던 국방위원회를 폐지함으로써 사실상 선군정치의 종식을 선언하고 사회주의 체제의 기본원리인 당국가 체제로 복귀한 것이다. 그렇다면 김정일과 김정은의 각각 차별화된 국정운영의 주안점이 인민대중에게 그대로 전달되는 최고지도자의 '현지지도' 행보에는 어떻게 반영되었을까?
우선 김정일(2001~2011년)과 김정은(2012~2019년) 집권 시기의 현지지도 등 분야별 공개활동 동향을 [표]로 비교해 제시하면 다음과 같다.
김정일-김정은의 분야별 공개활동 동향(연평균 횟수)
비고
군부대
군 관련
경제
대외
기타
총계
김정일
36
15
42
19
23
134
김정은
28
28
29
11
59
155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경우, 11년 동안 연평균 134회 공개활동을 했는데 분야별로 보면 △군부대 시찰 36회(26.9%) △군 관련 15회(11.2%) △경제(인민생활) 42회(31.3%) △대외 19회(14.2%) △기타(정치·문화 등) 23회(17.2%) 등이다. 군부대 시찰과 군 관련 행사 및 훈련 지도를 합친 군사 행보는 51회(38.1%)로 나타났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경우 지난 8년 동안 연평균 155회 공개활동을 해 김정일 시절보다 21회 더 많은 공개활동을 한 것으로 나타났다. 분야별로 보면 △군부대 시찰 28회(18.1%) △군 관련 28회(18.1%) △경제(인민생활) 29회(18.7%) △대외 11회(7.1%) △기타(정치·문화) 59회(38.1%) 등이다. 군부대 시찰과 군 관련 행사 및 훈련 지도를 합친 군사 행보는 56회(36.1%)로 나타났다.
▲ 김정일-김정은 현지지도 횟수(연평균) 비교 김정일과 김정은의 분야별 현지지도 횟수를 단순 비교하면, 김정일의 군부대 시찰 횟수(36회)와 비율(26.9%)이 김정은의 군부대 시찰 횟수(28회)와 비율(18.1%)보다 훨씬 더 높게 나타났다. 김정일이 집권 기간 내내 군을 중시하는 선군정치를 표방한 만큼 이는 당연한 결과로 보인다.
하지만 군 관련 행사 참석이나 군사훈련 및 신무기 시험발사 지도 등을 합친 군사 행보의 총합은 '김정일 51회(38.1%) vs 김정은 56회(36.1%)'로 큰 차이가 없었다. 또한 핵무력·경제 건설 병진노선의 한 축인 경제 현지지도 횟수와 비율을 비교하면, '김정일 42회(31.3%) vs 김정은 29회(18.7%)'로 오히려 상대적으로 김정일이 김정은보다 더 경제(인민생활) 행보에 집중했음을 알 수 있다.
다시 말해, 김정은은 집권 이후 김정일의 '선군정치' 노선과 차별화된 △병진노선(2012~2017년) △병진노선 승리 선언 및 경제건설 총력집중(2018. 4) △자력갱생으로 정면돌파전(2019. 12)을 내걸었지만, 지난 8년간 현지지도 횟수를 보면, 군사 행보(56회, 36.1%)가 경제 행보(29회, 18.7%)보다 더 많았다.
▲ 김정일 최고사령관이 1995년 1월 1일 새해를 맞이해 인민군 제214군부대, 일명 다박솔중대를 현지 시찰하고 있다. 북한에서는 김정일이 다닥솔초소를 방문한 것이 이른바 '선군정치'의 시작으로 알려져 있다. [조선중앙통신] 돌이켜보면 김일성 사후 김정일 최고사령관은 1995년 1월 1일 첫 현지지도 행보로 다박솔중대를 방문한 이후 이듬해 12월 1일 '인민군 근위 서울류경수제105탱크사단'을 시찰했다. 나중에 북한 관영매체(노동신문 2005. 8. 24)에서 선군정치의 역사적 연원을 심화시킨 것을 보면, 김정일이 '류경수 제105땅크사단'을 최초 현지지도한 '1960년 8월 25일'을 선군영도의 시작으로 주장한다.
실제로 2013년 8월 25일 당시 김정은 최고사령관이 "김정일 선군혁명사상과 업적을 길이 빛내어 나가자"고 담화를 발표한 것을 계기로 8월 25일을 선군절이라는 국가명절(휴무일)로 지정했다.
김정은이 김정일 사망 직후인 2011년 12월 30일 노동당 중앙위원회 정치국 회의에서 조선인민군 최고사령관으로 추대된 이후, 2012년 새해 첫날에 선보인 첫 현지지도도 '인민군 근위 서울류경수 제105땅크사단'을 방문해 인민군 장병들에게 축하 메시지를 보낸 것이었다. 조선중앙통신은 김정은 최고사령관의 '말씀'이라며 당시 상황을 이렇게 전했다.
북한 관영매체에 따르면, 류경수 제105땅크사단은 "1950년 6월 전쟁 개시 3일만에 서울을 타고앉아 중앙청에 공화국기를 날린 부대"이다. 중앙청에 인공기를 꼽았던 전차의 번호(105호)와 당시 여단장이었던 류경수의 이름을 따서 '근위 서울류경수 제105땅크사단'이라는 부대 명칭을 만들 정도로 김일성의 애정이 강한 부대로 알려졌다.
▲ 김정은 위원장이 참관한 '조선인민군 땅크병(탱크병) 경기대회-2017'에는 선군정치의 상징인 '서울류경수제105탱크사단'을 비롯해 총 15개 부대가 참가해 경기를 펼쳤다. 2017.4.1 [조선중앙통신] 당시 조선중앙통신은 군부대 시찰의 영상을 텔레비전 화면으로 보게 된 인민들이 "김일성 주석님과 꼭 같으신 분", "배심(뱃심)이 든든하다"고 이구동성으로 말하였다고 전했다. 김정은은 한국전쟁 당시 서울을 맨먼저 점령했고, 또한 김일성 주석이 애정했던 탱크부대를 새해 첫날 현지지도함으로써 대를 잇는 '총대 중시' 행보를 보인 것이다.
국가정보원은 김정일 정권과 비교한 김정은 정권의 체제 안정성을 묻는 질문에 "김정은은 김정일에 비해 짧은 후계기간에도 불구하고 권력 장악력이 확고하고, 내부감시·통제 시스템도 정상적으로 작동해 안정적인 상태를 유지하고 있다"고 답변했다.
하지만 김정은의 8년간 공개활동 동향을 보면, 김정은이 권력을 안정화하면서 공식적으로는 선대의 선군정치를 종식시켰지만, 그 역시 사회주의 체제의 특성상 '총대 중시' 행보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