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대 5년새 20만 명 脫서울…어디로? 왜?
손지혜
sjh@kpinews.kr | 2019-11-01 15:44:12
"탈서울로 가심비 얻을 수 있어…직장 멀어도 널찍한 집이 더 중요"
# 서울에서 나고 자란 A 씨(32세)는 2015년 1월에 거제도에 있는 회사에 지원해서 입사했다. 서울에 있는 회사에도 취업할 수 있었지만 복잡한 서울을 벗어나 여유로운 삶을 살고싶어서였다. 5년째 거제도에 살고 있는 A 씨는 싼 집값과 불편함 없는 편의시설을 지방살이의 최고 장점으로 꼽았다. 교통체증이 없어 이동이 수월한 점도 삶의 만족도를 높여준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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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청량리에서 자취를 하던 B 씨(31세)는 서울에 있는 직장에 취업했지만 출퇴근 시간이 많이 걸려도 넓은 집에 살고 싶어 경기도로 이사했다. B 씨는 "전세금 1억 원으로 서울에서는 비좁은 원룸밖에 구할 수 없지만 용인에서는 널찍한 투룸을 구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또 "사람마다 추구하는 가치가 다르겠지만 회사와 가까운 것 보단 편히 쉴 수 있는 넓은 집이 더 중요하다"면서 탈서울을 통해 얻을 수 있는 '가심비'(가격 대비 심리적 만족도)를 강조했다.
20대가 학업·취업 등의 이유로 상경한다면 30대는 최근 서울을 탈출하고 있다. 실제로 통계청의 '수도권 지역별 순이동'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서울을 빠져나간 인구(전입자-전출자)는 30대가 4만2521명(순유출)으로 가장 많았다. 30대에서 32만5399명이 서울에 입성했으나 그 보다 많은 36만7920명이 서울을 빠져나간 것이다.
지난해 한해동안 전체 순유출 인구가 10만230명인데 이중 42%가 30대였던 것이다. 지난 5년간 30대에서 21만4443명(순유출 기준)이 서울을 떠났다.
살인적인 집값·물가, 탈서울 부추겨
30대의 '서울 엑소더스'의 가장 큰 이유는 살인적인 집값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NH투자증권의 '글로벌 주요 도시의 주택 가격 비교 분석'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서울의 소득 대비 집값(PIR)은 21.1로 뉴욕(11.3), 도쿄(13.1), 런던(20.6)보다 높은 수준이다. PIR(Price to Income Ratio)은 연평균소득으로 특정 지역 또는 국가에서 주택을 구입하는 데 걸리는 평균 시간을 뜻한다.
그러니까 21.1이란 소득을 한푼도 쓰지 않고 모아도 집을 사는 데 걸리는 시간이 21.1년이란 뜻이다. 자력으로 소득을 모아 집을 사는 건 불가능하다는 얘기와 같다. 30대가 "내 집 마련의 꿈은 꿈일 뿐이다"라고 말하는 이유다. 전세 가격이라고 만만한가. 버겁기는 마찬가지다. 로스쿨 진학을 위해 울산으로 내려간 C 씨(37세)는 "현재 살고 있는 집은 쓰리룸에 전세로 6000만 원"라면서 "서울에서 같은 가격으로는 쓰리룸은 커녕 제대로된 원룸을 전세로 구하기 어려웠다. 겨우 발품팔아서 침대와 책상 놓으면 끝인 방에서 살았다"고 말했다.
국토교통부의 자료에 따르면 전용면적 40㎡ 미만, 건축 10년 차 미만 신축 원룸의 경우 최근 1년 전세금 평균이 영등포구 당산동 5,6가의 경우 2억400만 원, 양평동이 1억9600만 원으로 집계됐다.
서울에서 거제도로 보금자리를 옮긴 A 씨(32세)는 "거제도에서 가장 만족스러운 점은 싼 집값"이라면서 "도심 기준으로 동일 면적의 집이 서울은 10억 원이라면 거제에서는 3억 원 정도"라고 말했다. 제주도의 회사로 취업한 D 씨(30세)는 "제주도가 물가가 그리 싼 편이 아닌데도 15평짜리 집의 전세금이 1억 원이다"라고 말했다.
물가가 높은 점도 서울을 빠져나가는 원인이다. 영국 경제 분석 기관 '이코노미스트 인텔리전스 유닛(EIU)'이 전 세계 133개 주요 도시 160개 품목의 물가를 조사해 발표한 2018년 생활비 보고서를 보면 서울은 싱가포르, 프랑스 파리, 홍콩 등에 이어 세계에서 일곱번째로 비싼 도시로 꼽힌다.
취업때문에 서울로 올라온 E 씨(30세)는 고향에 비해 현저히 높은 밥상 물가에 놀랐다고 했다. 그는 "삼겹살을 먹는다고 치면 대구에서는 1인분에 6000원 정도인데, 서울에서는 그 두 배여서 외식을 하기가 부담된다"고 말했다. 그는 "택시비도 너무 많이 든다"면서 "대구에선 끝에서 끝까지 가도 3만 원밖에 안나오는데, 서울은 기본요금도 높고 많이 막혀서 택시를 한 번 타면 몇만원은 기본으로 나온다"라고 말했다.
서울에서 미용업을 하던 F 씨(30세)는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는 동안 밥값과 집값을 도저히 감당할 수 없어 고향인 광주로 내려갔다"면서 "지방살이의 경제적 안정 덕이었는지 심리적으로도 큰 도움이 돼 1년만에 소방공무원에 합격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서울 못지 않는 문화생활과 편의시설
요즘은 KTX 때문에 전국이 반나절 생활권인데다 지방에서도 공연이나 전시회가 열려 지방살이에 불편함이 거의 없다. 직장 때문에 대전으로 내려간 G 씨(31세)는 "대전에서 SRT나 KTX를 타면 1시간도 안걸려서 서울까지 갈 수 있다"며 "서울에서 보고 싶은 공연이 열릴때면 고민하지 않고 바로 가서 본다"고 말했다. 그는 "최근엔 대전에서도 전시회나 공연이 많이 열려서 굳이 서울까지 가지 않아도 문화생활을 충분히 즐기고 있다"고 말했다.
A씨는 "프랜차이즈 식당, 카페들이 지방에도 많이 생겨서 원한다면 언제든 서울과 유사한 서비스를 제공받을 수 있다"면서 "일상생활의 편의만 고려해도 지방이 서울보다 나을때가 많다"고 말했다.
탈서울 사회적 비용도 만만찮아
그럼에도 탈서울을 마냥 긍정적이라고 평가하기는 어렵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여유로운 생활을 위해 지방살이를 선택한 '탈서울러'들의 경우와는 달리 수도권으로 탈서울하는 현상은 사회적 비용을 야기하기 때문이다.
용인시에 살며 서울 방배동 회사에 다니는 B 씨(31세)는 "회사까지 출퇴근하는데 1시간 10분 걸린다"라면서 "왕복 2시간 20분을 매일 도로에서 버리는데 1년으로 환산하면 35.5일을 도로에서 버리는 셈"이라고 아쉬움을 토로했다.
서진형 대한부동산학회장(경인여대 교수)은 "너무 높은 집값 때문에 탈서울화가 가속화하면서 많은 문제점이 나타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직장과 집의 거리가 멀어지면서 사회적 비용들이 많이 증가하고 있다"며 "젊은 층이 외곽에서 도심으로 출퇴근하느라 시간이 많이 소요되는데다 교통체증도 발생한다"고 지적했다.
서 교수는 "베이징이나 선전, 뉴욕에 가게 되면 초고층 빌딩들이 수도 없이 들어서 있다"며 "그런데 우리는 개발을 부정적으로 생각하다보니 스카이라인이 그렇게 형성되지 않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그는 "서울은 국제도시이기 때문에 고층 건물같은 직주근접 시설을 지어서 서울의 이용 고도화를 꾀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라고 주장했다.
권대중 명지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과열화된 서울의 부동산 수요를 분산시킬 수 있다는 점에서 탈서울을 긍정적으로 평가했지만 교통체증 등 사회적 비용을 절감하기 위해서는 또 다른 해법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그는 "장기적으로 탈서울화는 수요를 분산시켜 가격을 안정시키는 면이 있다"면서도 "현재의 탈서울은 '베드타운화'로 인해 교통체증이 발생할 수 밖에 없는 구조"라고 평가했다. 그러면서 그는 "신도시를 만들 때 기업들도 함께 이동해야 한다"면서 "수도권에 기업을 유치하면 서울로 출퇴근하려는 사람들로 인해 발생하는 교통체증은 줄어들수 있다"고 분석했다.
KPI뉴스 / 손지혜 기자 sjh@kpinew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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