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문은주 감독, '아이 엠 우먼'으로 만들어낼 변화
권라영
ryk@kpinews.kr | 2019-10-11 15:56:56
"배급사·투자사 등에 여성 결정권자 늘어나야"
호주 출신 가수 헬렌 레디는 1972년 '아이 엠 우먼(I Am Woman)'으로 빌보드차트 1위에 올랐다. 이 노래는 이후 1970년대 여성 운동을 상징하는 노래로 자리 잡았다.
그로부터 약 반세기가 지난 올해, 헬렌 레디의 삶을 담은 영화 '아이 엠 우먼'이 제24회 부산국제영화제를 찾았다. 이 영화의 메가폰을 잡은 문은주 감독을 지난 4일 부산 해운대구 영화의전당에서 만났다.
우연한 만남에서 시작된 영화 '아이 엠 우먼'
문은주 감독은 대구에서 태어났다. 부산에서 1년간 유치원을 다니다 4살 때 가족들과 함께 호주로 이주했다. 그는 "지난해에도 한국을 방문했지만, 이번에는 부산국제영화제를 위해 온 것이라 뜻깊다"고 부산을 찾은 소감을 전했다.
문은주 감독은 2012년 가수 토니 베넷을 다루는 다큐멘터리 영화 '토니 베넷의 참선'을 선보였다. '아이 엠 우먼'도 가수가 주인공이다. 이처럼 연달아 음악가에 관한 이야기를 하려고 계획한 것은 아니었다. 그는 "할리우드에서 열린 시상식에 참석했다가 우연히 헬렌 레디를 만나 이야기를 나눴는데, 그 대단한 삶이 아직 영화로 만들어지지 않았다는 걸 알게 됐다"고 영화를 만들게 된 계기를 설명했다.
호주 출신인 헬렌 레디는 가수의 꿈을 안고 미국으로 건너왔다. 1972년 싱글로 발매한 노래 '아이 엠 우먼'은 그에게 큰 인기를 가져다줬다. 문은주 감독은 "어머니가 친구들과 헬렌 레디의 노래를 들을 때면 더욱 강한 여성이 됐던 것을 기억한다"고 말했다.
"여성으로서 보고 싶은 이야기 더 많이 해야"
그러나 헬렌 레디가 몇 번의 좌절을 겪었듯이, 문은주 감독도 영화를 만들면서 장벽에 부딪혔다. 문은주 감독은 "헬렌 레디가 레코드회사에 가서 '아이 엠 우먼'을 틀었을 때, 남성들이 모두 비웃으며 '누가 이 노래를 듣겠냐'고 말하는 장면이 영화에 나온다"면서 "나도 비슷한 상황을 겪었다"고 털어놓았다.
그는 영화를 만들기 위해 프로듀서와 함께 미팅을 여러 번 했는데, 그 자리에서 만난 최종 결정권자들은 대부분 남성이었다. 문은주 감독은 "여성으로서 헬렌 레디의 이야기가 아주 멋지다고 생각했고, 영화로 보고 싶었다"면서 "하지만 미팅에서 만난 남성들은 '재미있지만, 사람들이 이 영화를 보고 싶어 할 이유가 무엇이냐'고 말했다"고 전했다.
우여곡절 끝에 만들어진 '아이 엠 우먼'에는 뜨거운 관심이 쏟아지고 있다. 지난달 24일 부산국제영화제 온라인 예매가 시작되자마자 전석이 매진되기도 했다.
문은주 감독은 "영화 산업에 종사하는 모든 여성이 이런 한계를 밀어내야 한다"면서 "여성으로서 보고 싶은 이야기를 더 많이 해야 한다"는 생각을 밝혔다. 특히 젊은 세대들에게는 "꼭 장편 상업영화로 시작하지 않더라도 괜찮다"면서 "요즘은 다른 방법들이 많다"고 조언했다. 그는 "휴대폰으로 촬영해서 유튜브에 올릴 수도 있다"면서 "이런 새로운 기회들로 시작하다 보면 더 큰 규모의 영화, 장편 영화로도 나아갈 수 있을 것"이라고 격려했다.
이어 "감독들의 노력만 필요한 게 아니라, 배급사나 투자사 같은 곳에 여성 결정권자가 많아지는 것도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영화의 마지막에 울려퍼지는 '혁명이 온다'
'아이 엠 우먼'이 만들어지는 동안 세계 곳곳에서 미투 운동, 여성 행진 등이 일어났다. 문은주 감독은 워싱턴에서 여성 행진에 참여한 경험을 소개했다. 그는 "사람들이 '내 외침을 들어라(hear me roar)', '나는 강하다(I am strong)', '나는 무적이다(I am invincible)'라고 쓰인 팻말을 들고 있었다"고 설명했다. 이 문장들은 모두 '아이 엠 우먼'의 가사다.
문은주 감독은 "이렇게 반세기가 지난 뒤에도 노래에 공감을 할 수 있다는 게 놀랍다"면서도 "여성들이 아직도 같은 문제로 싸우고 있다는 의미기 때문에 슬프기도 하다"고 말했다.
그는 과거 아시안 여성이 영화감독이 될 수 있을지 확신할 수 없었다고 회상했다. 부모님의 바람대로 변호사가 되기 위해 로스쿨에도 갔지만, 결국 영화감독에 도전했다. 호주의 영화감독인 질리안 암스트롱과 제인 캠피온, 그리고 인도 출신 미라 네어 감독이 그의 롤모델이었다.
이런 어려움 끝에 꿈을 이룬 문은주 감독은 이번 부산국제영화제를 통해 자신이 한국 여성들에게 메시지를 줄 수 있기를 희망했다. 그는 "관객 중에는 영화를 공부하거나, 영화를 만드는 데 관심 있는 학생들도 있겠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들도 있을 것"이라면서 "이들 모두 문은주라는 한국 여성이 말하고 싶은 것을 했다는 사실로부터 영감을 받기를 바란다"고 전했다.
부산국제영화제 상영을 마무리한 '아이 엠 우먼'은 한국 정식 개봉을 준비하고 있다. 문은주 감독은 "영화의 마지막에 '혁명(Revolution)'이라는 노래가 나온다"면서 가사 중 '혁명이 온다(Here comes the Revolution)'는 구절을 소개했다. 그러면서 "헬렌 레디의 이야기가 여성들의 변화를 끌어내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고 소망했다.
KPI뉴스 / 권라영 기자 ryk@kpinew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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