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윤주의 주마등] 나의 늙은 강아지 16살 광팔이
김윤주 기자
maybe0412@naver.com | 2024-06-14 10:49:02
수많은 계절 지나고 어느덧 16살의 '백발의 노견' 돼
다가올 이별 슬프지만 내가 죽으면 마중올거라 믿어
| ▲ 2012년, 4살이던 광팔이. 눈이 초롱하고 코가 새까맣고 털에도 윤기가 느껴진다. [김윤주 기자]
▶새하얀 눈이 내리던 날이었다. 만 20살 끝자락, 나는 광팔이를 '사' 왔다. 펫숍에 대해 무지했던 때였다. 광팔이는 그 가게에서 큰 편에 속했다. 생후 1개월 된 강아지들 사이에서 혼자 '생후 2개월' 알림판이 달려 있었다. 사장은 그런 광팔이를 '싸게' 주겠다고 했다. 유리 케이지의 동그란 틈으로 손을 내미니, 광팔이가 자신을 데려가라는 듯 힘껏 핥았다. 살기 위해서였을까. 지금 생각해 보면 아찔하다. "만약 그때 조금 더 작은 강아지에 욕심을 냈다면…." '수컷'이고 '팔리지 않던' 광팔이의 운명은 아마 끔찍했으리라. 그날, 하얀 광팔이를 품에 안고 하얀 눈밭을 걸어왔다. 차가운 세상에서 광팔이의 온기만이 따뜻했다.
▶우린 늘 함께였다. 수많은 꽃길을 거닐고 수 없는 눈을 같이 맞았다. 광팔이는 데려 왔다는 이유만으로 날 따랐다. 그 작고 까만 눈·코·입은 늘 나를 향했다. 나를 기다리고 또 기다렸다. 외출했다 들어온 나를 '뱅글뱅글' 돌며 환영해 줬다. 순탄치 않은 날들도 없지 않았다. 광팔이는 내 노트북 두 개를 '오줌'으로 멸망시켰다. 선물 받은 전주 초코파이를 봉지째 뜯어먹어 동물 병원에 실려간 적도 있었다. 그럼에도 광팔인 내게 너무나 소중한 존재였다. 세상 모든 사람이 내게 등을 돌린 것처럼 느껴진 날에도, 광팔인 곁에 있었다. 내가 슬퍼 울면 내 눈물을 핥았다. 광팔이만의 '위로'였다.
▶광팔이 시간은 너무나 빨랐다. 추억이 늘수록 광팔이는 늙어갔다. 하얀 솜뭉치 같던 광팔인 어느덧 16살 '백발의 노견'이 됐다. 새까맣던 코는 색을 잃었고 등은 굽었다. 광팔이는 몸에 흙보다 청진기를 대는 날들이 더 많아졌다. 4년 전부터는 '심장병'이 생겨 하루 두 번 약을 꼭 먹어야 했다. 여기저기 누비며 사람을 좋아하던 모습은 사라졌다. 모두를 귀찮아하고 혼자 한 자리에 웅크리려 했다. 나이 듦이 눈에 보였지만 난 외면하고 싶었다. 광팔이 나이를 듣는 사람 대부분은 무심코 "오래 살았다"라는 말을 하곤 했다. 그럴 때마다 광팔이가 곧 떠나야 할 것처럼 느껴져 서글펐다. 20대 전부, 그리고 30대 절반을 광팔이와 함께했건만 여전히 부족했다. 할 수 있다면 내 수명을 떼주고 싶었다.
▶광팔이가 발작을 하기 시작했다. 퇴근길, 엄마 전화를 받고 가슴이 쿵 떨어졌다. 광팔이의 시간이 조금 더 남았길 빌고 또 빌었다. 언젠가 이별은 '예상'했지만, 그 장면을 '상상'하진 못 했던거 같다. 그리지 못한 상황이 현실로 다가오자 무너졌다. 그저 하염없이 눈물이 났다. 마주한 광팔인 힘들어 보였다. 자꾸만 구석으로 기어들어가고 밥을 거부했다. 강아지들은 무지개 다리를 건널 때가 되면 자꾸 숨는다는 말이 생각났다. 주인이 걱정할까봐 약한 면을 보이기 싫어서라고 한다. 강아지들은 그렇게 끝까지 배려한다. 어쩌면 사람보다 낫다. 개를 버리는 주인은 있어도 주인을 버리는 개는 없다. 병원에서 광팔이는 '치매' 소견을 받았다. 광팔이는 더 이상 나를 알아보지 못한다. 날 위해 '뱅글뱅글' 돌지도 않는다. 슬프지만, 상태가 나아져 밥을 먹는 광팔이를 보면 그나마 다행이다 싶다. 광팔이와의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안다. 그럼에도 작은 위로가 되는 건 '사람이 죽으면 먼저 떠난 반려견이 마중 나온다'는 말 때문일까. 광팔이가 혹 먼저 떠나더라도 광팔인 그곳에서 날 기다릴 것이다.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KPI뉴스 / 김윤주 기자 maybe0412@naver.com
|
[ⓒ KPI뉴스.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