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호의 문학공간] "엄마가 떠나자 엄마가 많아졌다"

조용호 문학전문기자

jhoy@kpinews.kr | 2025-10-31 17:13:12

무거운 주제 흥미롭게 담아 새 시집 '축 생일' 펴낸 김선우
엄마 떠나 보내고 죽음의 고비 건너면서 돌아본 삶과 죽음
절집에서 요양하며 깨달은 선시풍 시편들도 잔잔한 울림
"뜁니다, 배꼽에서 탯줄이 자라 엄마에게 닿을 때까지"

엄마가 떠나자 엄마가 많아졌다// 어느 날은 동트는 아침 구름에게/ 어느 날은 저녁의 흰 새에게/ 어느 날은 정오의 개망초 군락 앞에서/ 어느 날은 제 그림자를 껴안은 붉은 작약 곁에서/ 어느 날은 오후의 너른 산그림자를 보며/ 중얼거린다// 엄마, 좋아? _ '여명' 부분 

 

▲ 엄마를 보내고 일곱 번째 시집을 상재한 김선우 시인. 그는 "꽃은 겁이 없다"던 엄마의 말을 새 시집에 엄마의 이름으로 받아 적었다. [조용호 문학전문기자]

 

시인의 '엄마'가 떠났다. 시 세계의 한 축을 지탱한 엄마였다. 몸져누운 어머니의 몸이 시가 되기도 하고, 그 엄마에게 '오르가슴'에 대해 물어 '자글자글한 늙은 여자의 아욱꽃빛 스민 연분홍' 웃음을 접하기도 했다. 그 엄마가 요양원에서 나와 잠시 집에 머물다 떠난 것인데, 시인은 "임종: (아니다) 끝이 아닌데, 끝이 없는데, 어떻게 끝을 맞이하는가?/ 별세: (아니다) 세상을 떠나는 게 아닌데, 어떻게 세상과 이별하는가?/ 돌아갔다: (아니다) 온 곳이 따로 정해져 있지 않은데, 어디로 돌아간단 말인가?/ 영면: (아니다) 영원한 잠이라니, 그럴 리가!"라며 "궁리 끝에 도달한 결론은 시시했다/ 떠났다 혹은 흩어졌다, 이 정도로구나/ 세상의 이쪽에서 어딘가 다른 쪽으로 떠나는 것"이라고 썼다.

김선우 7번째 시집 '축 생일'(문학과지성사)은 엄마의 죽음을 계기로 삶과 죽음을 깊숙이 들여다보면서, 인간 이외의 많은 생명들을 함께 아우르는 시편들을 담았다. 엄마를 떠나보내던 어름에는 정작 시인 자신도 죽음 문턱까지 갔다가 해인사에서 요양하며 회복 중이었다. 시인의 회복기와 엄마를 보내는 시기가 겹치면서 나온 시편들이 이번 시집에 집중돼 있다. 그는 "매일 아침 허물 벗는 빛과 바람, 그리고 시인으로 살아낼 수 있는 힘을 주신 엄마에게" 시집을 바친다고 서문에 썼다.

무거운 주제에 비해 시를 풀어내는 방식은 자유롭다. 소리 내어 읽으면서 퇴고를 거듭하고, 시인들이 습관적으로 언어를 비트는 방식에서 벗어나 될 수 있는 한 풀어서 쓰려고 노력했다. 의성어가 폴짝폴짝 튀어나와 행간을 뛰놀고, 말줄임표는 자연스러운 대화체 리듬을 만든다. 김선우는 독자들과 공유하는 '재미있는' 시를 쓰고 싶었다고 말한다. 표제작 '축 생일'은 죽음이 생으로 이어지는, 끊어진 탯줄이 다시 자라나 엄마의 배꼽에 닿는 과정으로 환하다.

오늘은 달이 살찌는 날/ 발바닥이 통통해지는 날/ 배꼽이 볼록해지는 날/ 두 주먹을 꼭 쥐게 되는 날// 뜁니다/ 뜁니다// 온몸의 땀구멍에서/ 잘 익은 햇살이 흘러나올 때까지// 축 배꼽의 날/ 하하하, 오딧빛 멍!/ 축 탯줄의 날/ 하하하, 햇빛의 싹!// 뜁니다/ 뜁니다/ 뜁니다// 배꼽에서 탯줄이 자라/ 엄마에게 닿을 때까지 _ '축 생일'

-'엄마가 떠나자 엄마가 많아졌다'는 발견, 소중하고 애틋하다.
"엄마가 가면서 모든 것들이 정말 예전보다 훨씬 더 유정해졌다. 곳곳에 엄마가 있다는 느낌이 체험적으로 많아졌고, 아름다운 것들을 발견하는 능력이 옛날보다 훨씬 더 커진 것 같다. 엄마가 힘들고 험하게 살면서도 살고 싶어 했을 삶을 대신 살아주는 느낌 같은 것도 더 커졌다. 뱃속에서 배 밖으로 꺼내어지는, 출생이라는 기가 막힌 사건을 통해서 세상을 살게 되었다는 중요한 단서가 배꼽인데, 이 연결고리가 끊어진 한 개인으로서만 생일을 맞이하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탯줄이 다시 이어지는, 죽음이 생으로 순환하는 '축 생일'이다.
"세상 모든 것이 나와 긴밀하게 연결돼 있다는, 우리는 모두 연기적(緣起的) 존재라는 관념이 한 개인의 깊은 체험적 진실로 다가올 때가 있다. 그런 진실은 책을 읽어서 지식으로 얻을 수는 없는 것 같고, 가혹하지만 어떤 고통을 통해서 획득된다는 처절한 느낌이다. 개인적으로 깊이 사랑했고 아끼던 어떤 것의 상실이 주는 고통을 통과하면서 세상 모든 것이 전부 내 어머니의 무엇이구나, 내가 사랑하는 어떤 것이었구나, 이런 것들을 느낀다. 삶과 죽음의 연결성, 이것을 일상에서 깨닫고 살면서 우리가 조금 더 주변을 보살피고, 나와 인연을 맺고 사는 사람들을 더 소중하게 여길 수 있는 마음을 회복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바람은/ 바람이 지나간 자리에 대한 기억 아닙니까?// 호수의 파문은/ 돌멩이와 물방개와 오리가 지나간 자리에 대한 기억 아닙니까?// 파문은 가라앉은 돌보다 오래 지속되지만/ 결국 조용해지고/ 또 다른 기억이 시작될 테지요// 나는 다른 얼굴로 이렇게 말하려고 합니다// 사랑은 사랑하려 한다 거의 영원히// 손안에서 따뜻해진 회중시계/ 발자국으로 만든 눈밭 위 커다란 하트/ 다양한 음악이 나오는 기다림들// 당신과 함께한 기억들을 사랑이라 믿는 순간에도/ 사랑은 사랑하려 합니다 거의 영원히// 무한히 해맑은 이 욕망을/ 나는 기억의 시작이라고 부릅니다 _ '글라스하모니카를 위한 아다지오와 론도'

 

처음부터 상실을 전제로 모든 것을 받아들이는 것이 마음을 다스리는 길일지도 모른다. 시인은 '바람은 바람이 지나간 자리에 대한 기억' 아니냐고 묻는다. 바람은 만질 수도 붙잡을 수도 없는 것이지만, 볼을 쓰다듬고 지나간 기억으로 존재를 드러낸다. 호수의 파문도 이미 가라앉은 것의 기억 아니던가. 시인에게 사랑은 그 기억의 시작을 위한 해맑은 욕망 같은 것이다. 사랑은 끊임없이 사랑하려는 관성을 포기하지 않는다고 믿는다. 그것은 시인에게 "혹독한 삶의 조건 속에서도 자식들에게 쏟아주던 무한정한 사랑, 엄마의 사랑"이었다.

이번 시집을 구성하는 두 중심축은 '엄마'와 더불어 '해인사'의 명상이다. 시인의 언니가 일찍이 산문에 들어 수행해온 스님이기도 하거니와, 김선우도 오랫동안 절집을 드나들며 불교적 세계관을 깊이 체득했다. 환하고 명징한 시어들이 자유롭게 '폴짝폴짝' 뛰어다니는 시들이 있는가 하면, 선시 풍의 깨달음이 울림으로 스며든 시들이 한 축을 이루는 배경이다.

'발 딛고 선 이곳이 운명이라는 건/ 어디서든 의지로 나를 지킨다는 것// 당신이 내 운명이라는 건/ 내 의지로 당신을 지킨다는 것// 그러므로 운명은 없다는 것// 벼랑을 부둥켜안은 허리 굽은 소나무// 새파란 겨울 하늘 속으로/ 번지는 만트라// 自在 自在 自在 自在 自在……' _ '벼랑 끝 나무로부터 배운 운명론'

-내 안에서 스스로 자유를 찾는 '만트라'(마음을 지키는 소리)의 울림이 크다.
"해인사에서 결제(結制) 공양하고 산책하면서 보았던 풍경 중 하나다. 벼랑 끝에서 소나무 하나가 바윗돌을 부여잡고 있었다. 그 소나무가 어찌하다가 터를 잘못 잡았다기보다, 그곳에서 자신의 의지로 벼랑을 붙들어서 벼랑을 벼랑이게 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주어진 운명이 그 자리라서 그렇게 자라고 있는 게 아니라, 원하지 않았으면 다른 자리에서 큰 나무로 자랄 수 있었겠다고 받아들였다. 벼랑 끝에서 그렇게 자라는 나무를 보면서 자신 안에서 운명을 긍정하는 '자재(自在)'의 덕목이 아니라면 불가능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스스로 여기 이렇게 존재함을 무한긍정하지 않는 한, 저 자리에서 저 모습을 보여줄 수는 없겠다는 생각이었다."

 

▲ 김선우는 해인사 숲길에서 고라니와 마주친 뒤 "뒷걸음질 쳐본 적 없는 짐승의 온몸이 어떻게 시간이 되는지 그때 알았다"면서 "고통을 피하지 않고 고통과 한몸으로 직진해야만 그 순간이 나의 시간이 될 것"이라고 말한다. [조용호 문학전문기자] 

 

해인사 산책길에서 마주친 고라니가 등장하는 시편도 눈에 띈다. 인간들만 뒷걸음질 쳐 줄행랑을 놓지, 야생의 짐승들은 온몸으로 방향을 회전해서 달려갈 뿐 뒷걸음질 치지 않는다고 했다. 김선우는 "우리가 자신의 삶을 살아냈다는 순수한 성취의 순간은 아마 저런 순간일 것"이라며 "고통으로부터 뒷걸음질 쳐서 도망가는 순간에는 나의 시간이 창조 되지 않고, 고통을 직면하고 그 고통과 한몸으로 직진을 해야만 그 순간이 나의 시간이 될 것"이라고 했다. '산길을 걷다 고라니를 만난 적 있다// 나와 눈이 마주친 순간 그이는/ 커다란 빛 방울처럼 튀어/ 숲으로 사라졌다// 그때 보았다// 뒷걸음질 쳐본 적 없는 짐승의 온몸이 어떻게 시간이 되는지'_ '시간의 창조자'

김선우는 시집 초두에 내세운 "나도요 폴짝! 우리는 반가워서 폴짝폴짝 뜁니다// 그쪽 우물은 얼마나 깊었나요?"로 시작하는 '폴짝입니까?' 같은 흥미로운 시들은"젊은 독자들이 힘든 삶의 조건에서도 자신을 잘 지켜내고 스스로의 아름다움을 지켜낼 수 있기를 바라는 의미"라고 밝혔다. 상처의 구더기를 해치지 않기 위해 혓바닥으로 핥아낸 수행자의 일화에 기댄 '미륵의 고독' 시리즈는 종교인의 각성을 촉구한 시편이다. 김선우는 이 시집이 모든 이의 '축 생일' 선물이 되기를 바란다. 그가 엄마를 보내고 죽음을 넘어 당도한 우주의 환절기.

환절기의 냄새를 맡으며 알게 되었다/ 하늘을 나는 새들도 결국 땅에서 죽는다는 것/ 지구라는 우주의 품에서 마지막을 맞는다는 것// 지구 밖으로 날아가던 어린 날의 우주와/ 지구 안쪽으로 넓어지는 어리지 않은 날의 우주// 이 모든 우주가 다 좋은/ 환절기에 이르렀다 _ '환절기'

 

KPI뉴스 / 조용호 문학전문기자 jhoy@kpinew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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