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윤덕여 감독은 ‘잠 못 이루는 밤’

김병윤

| 2019-05-10 20:00:59

다음달 8일 개막 2019 FIFA 여자축구월드컵서 2회 연속 16강 도전장
‘축생축사’의 축구 외길…“‘필생즉사’ 정신으로 전쟁터인 파리로 갈 것”

잠이 안 온다. 잠을 이룰 수가 없다. 어찌해야 하나. 어떻게 하면 좋을까. 병사는 쓰러졌는데. 전쟁터에는 가야 하고. 돌아설 수는 없고. 어쩌란 말인가.


어차피 나서야 할 길이라면 가보자. 가서 싸워보자. 필사즉생 필생즉사. 죽었다 하고 부딪쳐 보자. 그러면 살아 돌아올 것이다. 진인사대천명. 사람으로서 할 수 있는 것은 다하자. 그리고 기다리자. 하늘의 뜻을.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작전이다. 결전을 앞둔 장수의 고뇌가 엿보인다. 대한민국 여자축구 국가대표팀 윤덕여 감독의 심정이다.


▲ 윤덕여 여자축구 대표팀 감독이 7일 파주NFC에서 열린 공식훈련에 참가한 선수들을 바라보고 있다. [뉴시스]


한국여자축구대표팀이 지난 7일 소집됐다. 6월 8일 개막되는 2019 프랑스여자축구 월드컵대회에 출전하기 위해. 한 달여 동안 국내와 스웨덴에서 전지훈련을 하게 된다.

한국대표팀은 개최국 프랑스와 개막전을 치른다. 예선 첫 경기다. 개막전은 전 세계에 중계된다. 한국여자축구를 세계에 알릴 좋은 기회다. 상황은 안 좋다. 프랑스는 FIFA랭킹 4위의 축구 강호다. 수만 명의 홈팬들 응원에도 맞서야 한다.

두려움은 없다. 어차피 예상했던 일이다. 오히려 편안하다. 상대가 강팀이라 밑져야 본전이다. 패배를 예상하는 것은 아니다. 해내겠다는 승부욕이 타오른다. 세계에 한국여자축구의 매운 맛을 보여줄 기회다. 비바람 맞으며 피어난 야생화 같은 한국여자축구의 설움을 날리고 싶다.

남은 예선 2경기도 만만치 않다. 예선 2차전에는 아프리카의 강호 나이지리아와 맞붙는다. FIFA랭킹 38위다. 한국의 14위보다 랭킹은 낮다. 랭킹으로 따지면 안 된다. 여자월드컵에 8번이나 출전했다. 1999년 대회에서 8강에 오르기도 했다. 아프리카 여자 네이션스컵 대회에 13번 출전했다. 무려 11번이나 우승컵을 들어 올렸다. 성적은 랭킹 순이 아니다. 방심하면 안 된다.

예선 3차전 상대는 유럽의 강호 노르웨이다. 여자축구월드컵에 8번 출전했다. 1995년 여자월드컵에서 우승까지 했던 강호다. FIFA랭킹 12위다. 스웨덴과 함께 북유럽 여자축구의 절대 강호로 손꼽히고 있다. 꼭 이길 것이다. 이겨야만 한다. 본선에 오르려면 반드시 넘어야 할 산이다.

승리해야만 한국축구의 신화를 다시 쓸 수 있다. 공은 둥글다. 골문은 언제나 열려있다. 강자도 없고 약자도 없다. 그것이 축구다. 승부는 살얼음을 걷는 거다. 두려워 할 필요가 없다. 얕잡아 봐서도 안 된다. 최선을 다하는 것만이 승리로 가는 길이다. 


▲ 윤덕여 여자축구 대표팀 감독이 7일 파주NFC에서 열린 공식훈련에 앞서 취재진과 인터뷰하고 있다.[뉴시스]


윤덕여 감독은 단순한 승리의 길을 잘 알고 있다. 냉철한 승부사다. 외유내강형 장수다. 축구 외에는 아는 게 없다. 오직 축구만 생각하고 연구하며 살아왔다. 웬만한 사람들이 즐기는 골프도 칠 줄 모른다. 골프 칠 시간에 축구장을 찾는다. 축생축사다. 축구에 살고 축구에 죽는다.

겉으로는 온화하다. 선수들에게는 아버지처럼 다가선다. 목소리도 크지 않다. 지기를 싫어한다. 경기장에 들어서면 눈빛이 달라진다. 승부욕에 불타서. 이런 윤덕여 감독이 잠을 못자고 있다. 선수들의 연이은 부상이 윤 감독을 혼란에 빠뜨리고 있다.

가장 중요한 골키퍼에 내세울 선수가 없다. 골키퍼 후보 0순위였던 윤영글은 시즌도 시작되기 전에 수술대에 올랐다. 비상등이 켜졌다. 급히 대체선수를 찾았다. 백전노장 김정미였다. 그나마 아쉬움을 달랠 수 있었다. 주변에서 말이 많았다. 또 김정미냐고. 세대교체는 언제 할 거냐고. 일부 언론에서 기사화 했다. 할 말이 없었다. 당신들이 팀을 맡아보라고 항변하고 싶었다. 꾹 참았다. 내가 짊어지고 가야 할 운명이라 생각했다.

세대교체. 한국여자축구의 실정을 모르는 사람들 얘기다. 선수가 없다. 한국 성인여자축구팀이 7개 밖에 안 된다. 7명의 골키퍼 중 3명을 뽑아야 한다. 오죽하면 35살의 노장 골키퍼를 다시 뽑았을까. 윤 감독의 속은 새까맣게 타들어 갔다. 자신의 쓰라린 속내는 보이지 않았다. 묵묵히 자신만의 길을 걷고 있었다.

점차 안정을 찾던 대표 팀에 지난 2일 비보가 들려왔다. 주전 골키퍼 김정미가 쓰러졌다. 아킬레스건이 완전 파열됐다. 곧바로 수술을 했다.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누구를 뽑아야 하나. 주위를 살펴봤다. 마땅한 선수가 없다. 현재 여자대표 팀에는 골키퍼가 없는 상태다. 2번 골키퍼 강가애도 허벅지 부상이다. 재활과 치료에 한 달은 걸린단다. 대회 출전이 한 달도 안 남았는데 어쩌란 말인가.

3번 골키퍼 정보람도 부상 중이다. 손가락이 부어올랐다. 회복에 시간이 걸린다. 엎친 데 덮친 격이 됐다. 고민 끝에 전하늘(수원도시공사)를 대체선수로 뽑았다. 그래도 아쉬움이 남는다. 원래 생각했던 1,2,3번 골키퍼가 없이 결전장으로 가야 한다.

윤 감독은 생각을 바꿨다. 마음을 내려놓았다. 장수가 흔들리면 안 된다고 자신을 채찍질 했다. 결론을 내렸다. 이가 없으면 잇몸으로 버티자. 지금부터 진정한 싸움이 시작됐다. 장수는 부하를 탓하지 않는다. 2012년 여자대표 팀을 맡았을 때의 초심으로 돌아갔다. 그때도 선수가 없었다. 그래도 해냈다.

선수들과 동고동락 했던 시절을 떠올렸다. 팀을 맡은 지 3년 만에 2015 캐나다 여자월드컵에 진출시켰다. 2003년 미국 여자월드컵 출전 이후 12년 만이었다. 그리고 사상 첫 16강 진출에 성공했다. 아무도 예상치 못했던 쾌거였다. 그때의 두려움과 고민을 떠올렸다. 잠 못 이뤘던 시절이 주마등처럼 스쳐갔다. 방법을 찾았다. 그때처럼 살자. 밤을 지새우며 고민하자. 윤덕여 감독의 밤은 그렇게 저물어 간다. 까만 밤을 하얗게 지새우며.

 

KPI뉴스 / 김병윤 기자 bykim7161@kpinew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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