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으면 바보' 만드는 전세사기 피해지원 행정
유충현 기자
babybug@kpinews.kr | 2023-09-13 20:21:39
피해지원센터 안내 잘못 탓에 신청단계 혼란 가중
"임대인 집이 몇 채? 국토부가 알아야지 누가 아느냐"
피해지원위 '밀실회의' 비판도 "특별법 개정해야"
전세사기 피해자를 구제하기 위한 정부 행정이 불신받고 있다. 구제신청 접수 단계에서 잘못된 안내를 하는 사례가 있는가 하면, 피해자들에게 과도한 입증 부담을 지우고 있다는 불만도 크다. 피해지원위원회가 피해구제 신청을 기각하거나 결정을 뒤집어도 이유를 알 수 없어 '밀실행정'이라는 비판이 나온다.
13일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전세사기피해지원위원회는 전날 열린 제9회 전체회의에 상정된 이의신청 안건 50건 중 28건에 대해 피해자 요건 충족 여부가 확인돼 전세사기 피해자로 재의결됐다고 밝혔다. '당신들은 피해자가 아니니 지원할 수 없다'고 했다가, 이의를 제기하자 '피해자가 맞다'고 결정을 번복한 사례가 56%에 이른다는 얘기다.
국토부는 피해지원위원회 회의 내용을 공개하지 않는다. 단지 몇 건을 심의해 몇 건을 의결했다는 정도만 알 수 있을 뿐이다. 이번에 피해 인정을 받는 28건이 처음에 어떤 이유에서 피해자로 인정받지 못했는지, 이번에는 인정했는지 상세하게 알 방법이 없다. 앞으로도 결정된 내용에 대한 이의신청과 번복이 이어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유추할 수 있는 경우은 크게 두 가지다. 우선 주택도시보증공사(HUG)의 전세금 반환보증보험에 가입한 임차인들이다. 이들은 원칙적으로 피해자 대상에서 제외된다. HUG가 집주인 대신 전세보증금을 갚아주는 보험이다 보니, 딱히 돈을 떼인 것이 없어서다. 하지만 보증보험에 가입했더라도 대위변제 신청을 거절당하거나 일부만 지급받은 경우 피해자 인정 범위에 해당한다. 다소 복잡하다 보니 혼란이 생길 수밖에 없는 구조다.
애초에 안내가 미흡했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피해 구제 신청을 접수하는 피해지원센터에서 이 부분을 잘못 안내해 혼란을 야기했다는 것이다. 김주호 참여연대 경제금융센터 팀장은 "보증보험 가입자는 신청 자체가 되지 않는다고 했고, 경·공매가 완료된 경우에도 신청이 불가능하다는 안내가 있었다"며 "결과적으로 둘 다 틀렸다"고 지적했다.
집주인의 '사기 의도'를 뒤늦게 입증한 경우도 생각해 볼 수 있다. 피해지원의 법적 근거가 되는 '전세사기 특별법'은 임대인이 보증금을 돌려주지 않으려는 의도가 있는 경우만 피해를 인정한다. 동시에 피해자가 반드시 여러 세대에서 동시에 발생해야 한다는 조건도 충족해야 한다. 임차인 입장에서는 집주인이 일부러 전세보증금을 떼먹었는지, 본인 외에도 같은 집주인에게 돈을 떼인 임차인이 있는지 알아내기가 어렵다.
피해자들은 정부의 피해지원 행정에 믿음을 잃어가는 모습이다.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이 "총력을 다 하겠다"고 약속했음에도 정부만 믿고 있다가는 바보가 된다는 불신이 크다. 안상미 전세사기·깡통전세 피해자 전국대책위원회 공동위원장은 "임대인이 집을 몇 채 갖고 있었는지 국토부가 알아야지 누가 알겠느냐"며 "만약 이의를 제기해 피해 인정을 받은 28명이 정부를 믿고 가만히 있었다면 어떻게 됐겠느냐"고 말했다.
적용 규정이 애매한 탓에 혼란이 뒤따를 것이라는 비판은 특별법 논의 단계부터 있었다. 이런 부분을 메우기 위해 만든 것이 전세사기피해지원위원회다. 위원회는 총 25명으로 구성된다. 판·검사 출신 등 법조인 8명, 업계 전문가 7명, 학계 7명, 주거복지·소비자보호 전문가 3명이다. 전문가들이 의견을 모아 법률상 모호함을 보충한다는 취지다. 누적된 회의 결과를 통해 법조문만 갖고 파악하기 어려웠던 부분을 알아낼 수 있다.
하지만 정부는 회의 내용을 비공개로 일관하고 있다. 지금까지 9차례 회의가 있었지만 안건·가결 숫자 정도 외에는 어떤 말이 오갔는지 알려진 바가 없다. 피해자들과 시민단체, 일부 국회의원 등이 수차례 회의록을 요구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일각에서는 국회가 전세사기 특별법 후속 입법 과정에서 위원회 회의 내용을 공개하도록 하는 조항이 포함돼야 한다고 주장한다. 현재 특별법 법문과 시행령, 시행규칙에는 회의 내용 공개 관련 부분이 아예 없다. 법무법인 덕수 이강훈 변호사는 "법률 조문이 모호하기 때문에 위원회의 심의 기준이 대단히 중요하다"며 "피해자들 입장에서는 삶의 큰 부분이 달린 문제인데 왜 공개하지 않는지 이해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KPI뉴스 / 유충현 기자 babybug@kpinew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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