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나무들의 희망 짓밟을 수 없지 않은가
김병윤
| 2018-11-12 17:17:27
약속은 왜 만들어졌는가. 지키자고 만들어졌다. 모든 사람이 안다. 초등학생도 안다. 약속은 구속력이 없다. 그래도 지켜야 한다. 사회의 안녕과 질서를 위해. 약속이 지켜지는 사회는 투명하다. 발전 가능성이 크다. 일류사회가 될 수 있다. 약속은 믿음을 기본으로 한다. 어쩌면 법보다 무서울 수 있다. 사람 간의 신뢰이기 때문이다.
이처럼 중요한 약속을 경찰이 어겼다. 물론 법을 어긴 것은 아니다. 3자 간의 협약을 어긴 것이다. 경찰청 축구단 운영에 관한 약속이다. 경찰청은 지난 9월 16일 축구단 해체를 일방적으로 발표했다. 당사자인 한국프로축구연맹과 아산시와 협의도 없이...
경찰청 축구단은 한국프로축구연맹, 아산시, 경찰대학 3자 간 협약에 따라 운영된다. 협약서 제7조 3항에는 정책변경으로 축구단 운영이 어려울 시 3자 회의를 통해 사유와 내용을 설명하도록 돼 있다.
경찰청은 이런 협약서 내용을 무시하고 기습적으로 축구단 해체를 통보했다. 경찰청의 축구단 해체는 의무경찰 감축 정책에 따른 것이다. 경찰청은 현재 2만 명인 의무경찰을 2019년부터 매년 20%씩 줄이기로 했다. 2023년에는 의무경찰을 완전 폐지하기로 했다. 정부 방침에 따라야 하는 경찰청의 입장도 이해는 간다. 그래도 절차와 순리는 있는 법. 경찰청의 미숙한 행정 처리는 크게 지탄받아 마땅하다.
경찰청은 지난 8월까지도 축구 특기병 모집공고를 홈페이지에 올려놨다. 은근슬쩍 내리는 꼼수를 부렸다. 프로축구 각 구단은 경찰청의 선발에 대비해 입대선수를 선정하는 작업에 들어갔다. 프로축구단은 그야말로 멘붕에 빠졌다. 축구계는 경찰청의 얄팍한 행정 처리에 할 말을 잃고 있다. 당장 2019년에 프로축구 한 팀이 없어지는 날벼락을 맞았다. 경찰청 축구단은 30명의 선수로 구성돼 있다. 2019년 2월에 16명의 선수가 제대하게 된다. 남는 선수는 14명. 경찰청 축구단은 2019년에 리그 참가를 할 수 없다. K리그 규정상 20명의 선수를 채우지 못하면 참가자격을 박탈당하게 된다. 결국, K2 리그는 홀수인 9개 팀이 남게 된다. 리그운영이 매끄럽지 못하게 진행된다. 남는 선수들도 운동할 곳이 없어진다.
경찰청 축구단 해체는 야구단을 비롯한 다른 종목과 달리 유소년 선수들에게 큰 충격이다. 경찰청 축구단은 12세, 15세, 18세 이하 어린 선수들을 클럽식으로 운영하고 있다. 여기 소속된 선수만 해도 12세 50명. 15세 40명. 18세 14명. 모두 104명의 어린 꿈나무들이 갈 길을 잃게 된다. 이 어린 선수들은 지난 2일 청와대 앞에서 열린 경찰청 축구단 해체 반대 시위에 참여해 팀의 존속을 눈물로 호소했다. 축구인들은 민갑룡 경찰청장이 갈 길 잃은 어린 선수들의 호소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한국프로축구연맹과 아산시는 경찰청 축구단 해체를 2년만 연장해 달라고 읍소하고 있다. 한국프로축구연맹은 2년간의 준비를 통해 선수들의 기량발전을 도모할 수 있는 새로운 병역 근무방법을 찾겠다는 방안이다. 아산시 역시 2020년까지만 경찰청 팀을 존속시켜 주길 바라고 있다. 아산시는 2021년 새로운 시민 구단으로 전환해 시민들에게 즐거움을 줄 계획이라고 청사진을 밝히고 있다. 시민 구단이 창단되면 유소년 팀도 유지된다. 일거양득이다.
아산 경찰청 축구단은 한국축구발전에 큰 역할을 했다. 아산 경찰청 축구단의 모체인 경찰축구단은 22년의 역사 속에 내로라하는 선수들을 배출했다. 경찰청 축구단이 없었으면 한국축구의 영광도 어둠 속에 가릴 수 있었다.경찰청 축구단에는 현재도 주세종, 이명주, 안현범 등 국가대표급 선수가 맹활약하고 있다. 주세종은 러시아 월드컵에서 독일 골키퍼 노이어의 공을 빼앗아 손흥민에게 밀어줘 2번째 골을 터뜨리게 한 장본인이다. 주세종의 이런 몸놀림은 희생하는 경찰의 자세가 몸에 배어 있었기 때문이다. 경찰청 축구단 정신은 한국축구의 큰 부패의 싹을 잘라내는 쾌거도 이뤘다. 언제부터인가 한국축구계에 파고든 승부 조작의 검은 손길을 이한샘이 굳건한 경찰정신으로 막아냈다. 이한샘은 국가대표 출신인 선배 장학영의 승부조작 제의를 용기 있게 떨쳐내고 신고해 불의를 막았다. 경찰청 소속 선수가 아니면 해낼 수 없었을 용기다.
경찰청 축구단은 단순한 팀이 아니다. 한국축구의 역사이다. 한국축구 발전의 증인이다. 밑거름이다. 새로운 도약의 발판이다. 국민에게 희망을 주는 청량제이다. 민갑룡 경찰청장은 다시 한번 생각해 주길 바란다. 정책은 언제나 바뀔 수 있는 것이다. 정책은 누구를 위해 만들어지는 것일까? 당연히 국민을 위해 만들어진다. 국민이 원하는 대로 가야 한다. 수많은 축구팬들이 바라고 있다. 경찰청 축구단의 유지를. 존속이 어렵다면 2년만 늦춰달란다. 104명의 어린 선수들이 피눈물을 흘리고 있다. 그들의 통곡 소리가 들리지 않는가. 어린 꿈나무들의 희망을 짓밟을 수 없지 않은가.
KPI뉴스 / 김병윤 기자 bykim7161@kpinew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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