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 '덜렁덜렁'한 건 장관 입…박상우의 전세사기 2차가해
유충현 기자
babybug@kpinews.kr | 2024-05-20 17:33:55
구조적 문제에서 시선 돌리려 피해자 개인 책임에 화살
국토부마저 전세금 떼이는데 젊은이들이 어떻게 피하나
범죄학에서 널리 다뤄지는 개념 가운데 '피해자 비난(Victim blaming)'이라는 게 있다. 어떤 범죄의 피해자를 가리켜 '스스로 범죄 피해 사실을 자초한 것'이라며 모욕하는 행위다. 흔히 '2차 가해'라고도 한다. 성폭행 피해자의 옷차림에 대한 비난이 대표적이다.
지난 13일 정부 주거정책 책임자인 박상우 국토교통부 장관이 전세사기 피해자들을 같은 방식으로 비난했다. 그는 "전세를 얻는 젊은 분들이 경험이 없다 보니 덜렁덜렁 계약을 했던 부분이 있지 않을까 싶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제는 꼼꼼하게 따지는 인식이 생기지 않았겠냐"고 했다. 전세사기 피해자에게 부주의한 책임이 있다는 의미로 들리는 발언이다.
당연히 피해자들은 거세게 반발했다. 정치권에서도 성토가 잇따랐다. 논란이 일자 국토부는 '과거 전세 계약 과정과 구조에 허점이 상당했으니 앞으로 전세 관련 정보를 더 많이 공개하겠다는 뜻'이라고 해명했다. 하지만 여전히 옹색하다. 십분 양보해 '본심'과 다른 발언이라고 해도 장관의 입이 너무 '덜렁덜렁'하다는 점은 심각한 문제다.
무엇보다 국토부조차 그 '덜렁덜렁'에서 자유롭지 않다. 지난해 국토부가 산하기관 관사로 사용하기 위해 임차했던 주택의 전세계약금을 떼인 일이 있었다. 꼼꼼하게 전세권 설정도 잊지 않았지만 소용없었다. 국토부도 당하는 일을 젊은이들이 어떻게 피하나.
존 조스트 뉴욕대학교 심리학과 교수는 피해자를 비난하는 행위에 '체제 정당화 기능'이 존재한다고 본다. 책임소재를 피해자 개인에게 맞춤으로써 구조가 갖는 문제점에서 시선을 돌릴 수 있다는 것이다. 박 장관의 시선에는 '사회 구조에는 문제가 없다'는 주장이 숨어있다.
박 장관은 국회 본회의에 오른 전세사기 특별법에 반대한다고 했다. 개인 간 사기를 국가가 책임지는 것은 맞지 않는다는 논리다.
그런데 사회구조와 제도는 정말 잘못이 없을까. 프랑스 '르몽드'는 지난해 11월 '한국의 전세(jeonse)사기'를 경제면 톱기사로 다루면서 '한국에서만 일어날 수 있는 사기 유형'이라고 진단했다. 한국이 아니라면 전세사기 피해를 당할 일도, '덜렁덜렁하다'는 소리를 들을 일도 없다. 그런데도 개인의 부주의이고 사회구조엔 문제가 없다는 건가.
'피해자 비난'의 가장 나쁜 점은 피해자들의 의지를 꺾는다는 것이다. 지난 14일 여덟 번째 희생자를 추모하기 위해 모인 피해자들도 하나같이 이 부분에 분개했다. 이런 인식은 국가의 도움을 간절히 요구하는 피해자들에게 '가만히 있으라'고 다그치는 것과 같다. 장관도 잘 모르고 정부기관도 당하는 '사회적 재난'에 피해자들이 스스로를 자책해야 하나.
KPI뉴스 / 유충현 기자 babybug@kpinew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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