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산적 금융④] "부실 나면 누구 책임?"...손실 분담 없인 또 실패
유충현 기자
babybug@kpinews.kr | 2026-01-07 14:11:00
정부가 먼저 손실부담…독일·이스라엘 성공사례 참고해야
"단순히 정책자금을 확대하거나 기업 대출을 늘리라는 신호만으로는 원하는 결과를 얻기 어렵습니다. 금융회사가 위험을 회피하는 구조가 그대로 유지되는 한, 자금은 여전히 담보가 확실한 부문으로 흐를 수밖에 없습니다."
KPI뉴스가 이재명 정부의 '생산적 금융' 정책이 성공하기 위한 조건에 대해 묻자 여러 전문가들이 공통적으로 내놓은 진단이다.
사실 생산적 금융은 완전히 새롭지는 않다. 이름만 달랐을 뿐, 이전 정부에서도 여러 차례 시도된 바 있다. 박근혜 정부에서는 '창조경제'와 '기술금융'이 있었다. 당시 최종구 금융위원장이 취임사에서 "성장잠재력을 높이고 일자리를 확대하는 생산적 금융에 집중해야 한다"고 강조할 정도로 중점 정책 중 하나였다. 코넥스 시장이 만들어진 것이 이때였다.
문재인 정부의 '한국판 뉴딜' 정책도 비슷한 취지를 공유했다. "유동자금이 부동산과 같은 비생산적인 부문이 아니라 생산적인 부문으로 돈이 흐르게 해야 한다." 문재인 당시 대통령이 2020년 수석보좌관회의에서 했던 말이다. 지금 논의되는 내용과 다르지 않다.
| ▲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달 19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 별관에서 열린 금융위원회·공정거래위원회 업무보고에서 이억원 금융위원장에게 질문하고 있다. [뉴시스]
하지만 이전 정부에서 실행된 정책들은 금융시스템의 관성을 바꾸지 못했다. 정부 정책은 모험적 금융을 장려하면서도, 감독 현장에서는 여전히 '무사고'를 강조하는 이중 잣대가 유지되면서 정책이 헛바퀴를 돌았다는 지적이 나온다.
대표적인 사례가 기술신용평가(TCB) 제도다. 담보 대신 기술력을 평가해 대출하겠다는 취지로 도입됐지만, 은행들은 여전히 부동산 담보를 요구했다. 정책금융이 '마중물'이 돼서 민간 금융을 끌어들이겠다는 목표도 실현되지 않았다.
김대종 세종대 경영학과 교수는 "기술평가와 금융기관의 책임 구조가 분리돼 있어서 평가가 있더라도 최종 책임은 금융회사에 귀속된다"며 "(금융기관 입장에서는) 평가 결과를 (자금공급에) 적극 반영할 유인이 부족했다"고 설명했다.
전문가들은 실패를 반복하지 않으려면 손실 책임 구조부터 명확히 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성공적으로 평가받는 해외 정책금융은 손실 부담 구조가 명확하다. 특히 정부가 먼저 위험을 떠안아 민간 금융의 참여를 유도한다는 점이 공통적이다.
독일 정책금융기관 KfW가 대표적 사례다. KfW는 온랜딩(on-lending) 방식으로 민간 은행에 저금리 자금을 제공하고, 민간 은행이 이를 중소기업과 혁신기업에 대출한다. 핵심은 손실 분담이다. 대출 부실이 나면 정부가 일정 금액까지 먼저 손실을 떠안고, 민간 은행은 그 이후 발생한 손실만 부담하는 방식으로 운영된다.
이스라엘 요즈마(Yozma) 펀드도 비슷하다. 요즈마 펀드는 정부 40%, 민간 60% 출자 구조로 시작했다. 투자가 성공하면 민간 투자자는 정부 지분을 미리 정해진 가격에 매입할 수 있고, 투자가 실패하면 정부가 40% 지분 손실을 떠안는다.
서지용 상명대 경영학부 교수는 "KfW는 저금리·위험분담을 통해 중소기업·혁신기업에 자금을 공급하며 경제 구조 변화를 촉진했고, 요즈마 펀드는 정부-민간 리스크 분담 구조로 벤처 생태계를 구축해 GDP 대비 투자 비중을 OECD 최고 수준으로 끌어올렸다"며 "우리나라도 이런 구조를 도입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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