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인복의 타박타박 지구촌] 태평양과 입맞춤하는 언덕 마을에 서다
| 2019-08-16 17:08:39
우리는 일상에 지쳤을 때 여행을 꿈꾸곤 한다. 그냥 떨치고 나서면 다 괜찮아질 것 같아서다. 그러나 세상 일이 마음 먹었다고 다 할 수 있던가. 그동안 이런저런 이유를 만들어 여러 곳을 다녔다. 쉽게 떠나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자그마한 위로가 되길 바라면서 여행지에 대한 기억을 펼쳐놓으려 한다. 새삼스런 설렘에 나 자신 다시 길 위로 나설지도 모르겠다.
칠레의 여성 소설가 이사벨 아옌데(살바도로 아옌데 대통령의 조카)는 1843년부터 1853년까지를 배경으로 하는 소설 <운명의 딸>(1999년 출간)의 도입부에서 발파라이소를 다음과 같이 묘사하고 있다. "엘리사는 양부모의 저택 발코니에서 태평양을 보며 자랐다. 저택은 발파라이소 항구의 언덕배기 높은 곳에 있었고 그 당시 런던에서 유행하던 스타일을 따라 지은 것이었다.… 뒤뜰 구석에는 창문도 없는 지하 감방 같은 방들이 암세포 퍼져가듯 하나씩 생겨나 어설프고도 우스꽝스러운 저택이 만들어졌다." "그 도시는 좁은 골목들과 통로로 이루어진 미궁이었다."
'작은 샌프란시스코'-'태평양의 보석'으로 불리기도
현재 모습도 소설에 나타난 것과 그다지 다르지 않은 발파라이소(Valparaíso)는 칠레 제1의 항구 도시로 산티아고에서 북서쪽으로 약 120km 떨어진 태평양 연안에 있다. 발파라이소라는 이름은 '천국(Paraiso)의 계곡(Valle)'이라는 뜻이다. 산티아고를 건설한 페드로 데 발디비아가 1544년 이곳을 '산티아고의 바다 현관'으로 정한 뒤 항구로서 그 역할을 톡톡히 해왔다. 한때 대서양과 태평양, 오세아니아 대륙을 오가는 선박들이 남아메리카 대륙 남쪽 끝에 있는 케이프혼과 마젤란 해협을 거쳐 다닐 때 그 항로를 지키는 중간 기착지로서 급속히 성장하기도 했다. 특히 황금기에는 유럽 이민자들이 몰려들어 번영을 누림으로써 '작은 샌프란시스코', '태평양의 보석'으로 불리기도 했다. 1914년 파나마 운하가 개통한 뒤로는 과거의 영광을 잃었으나 오늘날 독특한 색채와 함께 개성을 뽐내는 도시로 되살아났다.
도시는 크지 않다. 버스터미널에서 천천히 길을 따라 30분 정도 걸으면 중심가에 도착할 수 있다. 아직 느리게 움직이는 전차도 다니고 있어 여행자라도 서둘러 길을 재촉하기엔 미안한 마음마저 든다. 길 양쪽으로 늘어선 건물들을 구경하고 골목을 기웃거리다 확 트인 바다가 보이는 곳으로 들어섰다. 이곳의 중심 부두인 프라트 부두(Muelle Prat)라고 한다. 육지 가까운 곳에 정박해놓은 작은 어선부터 컨테이너 운반선, 관광 크루즈선, 군함까지 모든 종류의 배가 바쁘게 움직이고 있어 때 아닌 활기를 느낄 수 있다.
소토마요르 광장(Plaza Sotomayor)은 프라트 부두에서 도심으로 들어가는 입구에 있다. 비교적 넓은 광장 한쪽에는 중세 유럽의 성처럼 꽤 으리으리한 느낌을 주는 칠레 해군 총사령부가 있다. 중앙에는 19세기 말 페루-볼리비아 연합군과 벌인 태평양 전쟁에서 싸운 해군영웅들을 기리는 '이키케 영웅 기념탑'이 서 있다. 아직도 조국을 지키려는 결의를 다지는 듯 바다를 향해 두 눈을 부릅뜨고 있다.
광장 왼쪽 끝에서 이어지는 프라트 거리에는 중세 유럽풍의 석조건물들이 자리하고 있다. 대부분 금융회사 빌딩들로 칠레에서 처음 세운 증권거래소도 이곳에 있다. 도로 중간에 가늘고 긴 건물 꼭대기에 시계가 있는, 유명한 투리 시계탑(Reloj Turri)이 갈림길을 만들고 있어 눈길을 끌었다. 또한 발파라이소에는 칠레의 국회의사당이 있어 입법수도의 기능을 하고 있다.
100년 넘은 콘셉시온 아센소르는 나무 케이블카
이제 발파라이소 언덕으로 발길을 옮겨보자. 가파른 언덕에 집들이 촘촘히 모여 있는 풍광은 세계적으로 유명하다. 태평양을 바라보며 비탈을 따라 아랫집 지붕에 발을 올리듯 이어서 지어진 집들을 보면 금방이라도 바다를 향해 앞으로 넘어질 듯해 아찔한 기분도 들게 한다. 이 높은 곳을 걸어서 다니는 사람들을 보면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물론 생활하는 주민들이 있으니 계단도 있고, 버스도 다닌다. 특별한 교통수단으로는 아센소르(Ascensor, 승강기)가 유명하다. 이곳 40개가 넘는 언덕 동네와 도심을 이어주는 것으로 현재 15개 노선이 운행되고 있는데, 가장 오래된 것은 콘셉시온 언덕을 오르내리는 아센소르다. 1883년부터 100년이 넘게 운행하는 나무로 만든 케이블카다. 삐걱거림이 심해 타고 있으면 다소 불안하기도 하지만 현지인들은 무심한 표정을 보일 뿐이다.
언덕에 오르면 발파라이소 항구와 태평양이 한눈에 들어온다. 일단 막힌 데 없이 확 트인 풍광을 보면 거북한 속이 뻥 뚫리듯 마음도 시원해진다. 주변에는 아름답게 색칠한 집들이 카페, 식당, 기념품 가게의 간판을 내걸고 영업하고 있다. 동네 쪽으로 발길을 돌리면 골목들이 울긋불긋 다양한 표정으로 맞아준다. 자그마한 건물에 화려한 색상의 벽화가 눈길을 빼앗고 인기척 없는 한적한 길을 걸으면 그야말로 미로 탐험을 하듯 낯설고 신기한 나라로 들어서는 느낌이다. 길을 잃지 않도록 구경을 마친 뒤에는 반드시 아센소르를 다시 타고 내려오는 것이 좋다.
오랜 시간에 걸쳐 조성된 다양한 모습의 집들과 꼬불꼬불한 골목을 지닌 동네의 역사적 가치를 인정받아 2003년에는 '발파라이소 역사지구'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었다.
'라 세바스티아나'…네루다 친필원고-수집품 가득
앞서 말했듯 파블로 네루다(Pablo Neruda)는 산티아고의 번잡함을 떠나 평화롭고 조용한 분위기에서 글을 쓰기를 원했다. 발파라이소에서 거주할 곳을 찾다가 1961년 스페인 건축가가 미처 다 짓지 못한 집을 발견하고 건축가의 의도를 최대한 살리면서 직접 손을 봤다고 한다. '라 세바스티아나(La Sebastiana)'라는 이름은 처음에 설계했던 건축가 돈 세바스티안을 기려 붙였다고 한다. 플로리다 언덕에 있는 그 집에서 아내 마텔데 우르티아와 함께 살면서 작품 창작에 몰두한 결과 1971년 노벨 문학상을 수상하기에 이른다. 한국에도 그의 시집 <스무 편의 사랑의 시와 한 편의 절망의 노래(Veinte Poemas de Amor y Una Cancion Desesperada)>가 출간되었다. 네루다는 1972년 겨울에도 그곳에 머물면서 사망하던 해인 1973년 새해 불꽃놀이를 봤다고 한다.
네루다의 집까지는 물론 걸어서 갈 수 있지만 에쿠아도르 거리에 있는 콜렉티보 정류장에서 택시를 타면 된다. 콜렉티보는 일종의 합승택시로 순서대로 정원을 채우면 출발한다. 네루다의 집에 가는 콜렉티보는 39번으로 기사에게 갈 곳을 말하면 알아서 문 앞에 내려준다.
박물관으로 공개되고 있는 네루다의 집도 역시 항구에서 한참 올라가야 하는 곳이므로 전망은 말할 것도 없이 좋다. 5층으로 세워진 집은 층마다 다른 색깔로 칠해져 있어 독특한 외관을 자랑한다. 내부에 들어서면 항구 쪽으로는 유리창 가득 하늘이 들어오고 내다보면 드넓은 바다가 시선을 붙든다. 네루다 생전의 친필원고와 소장했던 책들, 그리고 외교관으로 세계를 다니며 모은 각종 수집품들이 가득하다. 옛 지도부터 소형선박 모형과 항해 물품, 작은 병들, 심지어 나비 표본 같은 것도 있다. 풍부한 시적 영감을 벼리기 위해서는 세상에 대한 관심도 그만큼 폭넓은 것이어야 하는가 보다. 아쉬운 것은 네루다의 집들은 모두 내부 촬영이 금지되어 있다. 따로 마련된 카페에서 차 한 잔과 함께 그의 문학 세계를 나름대로 기웃거려 볼 수밖에….
한편 네루다는 죽고 난 뒤에도 쉽게 안식을 찾을 수 없었다. 생전에 이슬라 네그라(Isla Negra)에 있는 집에 묻히고 싶어 했으나 군부가 허락하지 않아 산티아고 공동묘지에 안장되었다. 사망한 지 거의 20년이 지난 1992년에야 바다가 보이는 이슬라 네그라에서 비로소 영원한 안식에 들어갔다.
글·사진 남인복 언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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