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상' 집주인·전세 사기 우려…수요 쏠림에 아파트 전셋값 ↑

안재성 기자

seilen78@kpinews.kr | 2023-11-01 17:35:45

서울 아파트 전셋값, 23주째 상승세…전세 매물 30% 감소
“전셋값 폭락에 따른 기저효과…역전세 우려는 여전”

40대 주부 A 씨는 연립주택에 살다가 최근 전세 계약이 끝나 새 전셋집으로 옮겼다. 그 과정이 평탄치는 않았다.

 

기존 전세계약일까지 새 세입자를 구하지 못한 집주인이 전세보증금을 돌려주지 않아서다. 그는 A 씨의 거듭된 부탁에도 “몇 억이나 되는 거금이 없다. 새 세입자가 나타날 때까지만 기다려달라”는 말만 되풀이했다.

 

A 씨는 대항력을 갖추기 위해 일부러 새 집에 전입신고를 늦춰가면서 임차권등기명령 신청까지 했다. 집주인이 “자기를 못 믿느냐”며 화를 냈지만, A 씨는 “전세보증금을 계속 돌려주지 않을 경우 소송도 불사하겠다”며 물러서지 않았다.

 

다행히 새 세입자가 들어오면서 A 씨는 겨우 전세보증금을 돌려받았다. 문제는 해결됐지만, 그 사이 A 씨가 겪은 마음고생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A 씨는 “앞으로 전셋집은 반드시 아파트로 구해야겠다”고 다짐했다.

 

최근 ‘전세 사기’ 등의 우려 탓에 전세 수요가 아파트로 쏠리면서 아파트 전셋값이 상승세다.

 

1일 한국부동산원에 따르면 지난달 넷째 주(23일 기준) 서울 아파트 전셋값은 전주 대비 0.18% 올랐다. 23주 연속 오름세다.

 

서울 아파트 전세수급지수도 95.3으로 올 들어 최고치를 기록했다. 전세수급지수가 높아질수록 전세 수요가 늘어난다는 뜻이다.

 

▲ 서울 시내 아파트 전경. [UPI뉴스 자료사진]

 

부동산업계 관계자는 “아파트 전세 수요 증가세로 인해 전세 매물이 빠르게 소진되고 있다”고 말했다. 부동산 빅데이터업체 아실에 따르면, 지난달 31일 기준 서울 아파트 전세 매물은 3만 3009건에 그쳐 전년동기(4만7158건) 대비 30.1% 줄었다.

 

동일 주택형에서도 전셋값이 상당히 뛴 것으로 파악됐다. 부동산R114에 따르면 올해 3분기 서울 아파트 동일 주택형에서 신규 계약한 전셋값은 평균 5억1598만 원으로 상반기(4억8352만 원)보다 6.7% 상승했다.

 

서울 잠실동 ‘잠실엘스’ 전용면적 84㎡는 지난 9월 12억 원에 전세계약을 체결했다. 동일 주택형 상반기 전셋값은 8억~11억 원 수준이었다. 상반기 전셋값이 5억 원대 후반부터 6억 원대 중반 정도로 형성되던 성수동 ‘힐스테이트서울숲리버’ 59㎡는 지난달 7억7000만 원에 거래됐다.

 

아파트로 전세 수요가 쏠리는 주된 원인으로는 빌라와 연립·다세대주택이 안전하지 않다는 인식이 꼽힌다. 작년 하반기부터 전세 사기 사례가 잇따르면서 많은 세입자가 전세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할 수 있다는 불안감에 시달리고 있다.

 

“아파트는 몰라도 빌라나 연립·다세대주택 등은 믿을 수 없다"는 사람들이 적잖다.

 

부동산업계 관계자는 “처음부터 사기를 치려는 집주인은 드물다”며 “다음 세입자가 구해지지 않은 탓에 전세보증금을 마련하지 못한 집주인이 도망치면서 사기로 발전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애초 수억 원의 현금을 미리 마련해뒀다가 세입자에게 돌려주는 집주인은 거의 없다. 대부분 다음 세입자에게 받은 돈을 현 세입자에게 돌려준다.

 

아파트는 전세 수요가 많아 세입자를 찾기 어렵지 않으나 빌라나 연립·다세대주택은 시기에 맞춰 다음 세입자를 구하지 못하는 경우가 종종 생긴다. 또 아파트는 ‘역전세’(2년 전보다 전세보증금이 낮은 계약)로 집주인이 코너에 몰리더라도 매매를 통해 전세보증금을 마련하는 '최후의 수'가 있다. 아파트는 급매로 내놓으면 대부분 시장에서 소화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빌라나 연립·다세대주택은 인기가 낮아 잘 팔리지도 않는다. 집주인이 당초 악의가 없었더라도 전세 사기가 발생할 수 있는 것이다. 아파트 전세 수요 쏠림의 추동력이다.

 

고준석 제이에듀투자자문 대표는 “기존에는 전세수요가 빌라나 연립·다세대주택 등으로 분산됐는데 최근엔 아파트 전세 수요 쏠림 현상이 가속화하는 흐름”이라고 진단했다.

 

10월 이후 서울 아파트 매매량과 가격이 하락 조짐을 나타내면서 매매 수요가 얼어붙은 점도 전세 수요 증가를 부르고 있다. 함영진 직방 빅데이터랩장은 “앞으로도 매매보다 전세를 선호하는 수요가 늘어날 것”이라고 내다봤다.

 

전셋값이 뛰면서 역전세 우려는 가라앉았다는 분석이 일각에서 나온다. 그러나 "시기상조"라는 지적도 있다.

 

한문도 연세대 정경대학원 교수는 “지난해 하반기 후 전셋값이 폭락한 데 따른 기저효과로 전셋값이 다소 올랐을 뿐, 아직 2년 전보다는 낮다”고 했다.

 

일례로 서울 반포동 아크로리버파크 전용면적 84㎡는 2년 전인 2021년 11월 21억5000만 원에 전세계약을 했다. 지난해 하반기 후 전셋값이 급격하게 떨어져 지난 2월엔 11억8000만 원에 계약된 곳도 나왔다. 9월 거래된 전셋값은 15억 원으로 올해 초보단 다소 회복했지만, 여전히 2년 전보다는 6억5000만 원 낮은 가격이다.

 

이처럼 올해 하반기 만기가 돌아오는 전세 계약은 집주인들이 따로 수억 원을 더 마련해야 하는 케이스가 여럿이다.

 

한 교수는 “최근 임차권등기명령 신청이 작년보다 대폭 늘었다”며 “아직 역전세 우려가 가라앉았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했다.

 

부동산 중개업체 집토스에 따르면, 올해 7월 전국 임차권등기명령 신청 건수는 총 6165건으로 전년동월(1059건) 대비 482% 급증했다.

 

KPI뉴스 / 안재성 기자 seilen78@kpinew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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