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시각] '서학개미'는 원인이 아니라 결과다

안재성 기자

seilen78@kpinews.kr | 2025-12-19 18:03:30

韓美 금리 역전 장기화·확장재정에 원화 가치 하락 우려 커져
"인플레로부터 내 재산 지켜야"…달러화 자산 관심 급증

우리나라 중앙은행이 해외주식을 사고 파는 개인투자자를 몰아세우고 있다. 세계 1위를 달리는 원화 가치 하락의 책임을 떠넘기려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국은행은 이창용 총재가 고환율 주범으로 '서학개미'를 지목한데 이어 이를 뒷받침하는 보고서까지 지난 16일 내놨다.

 

"통화량(광의통화·M2) 증가가 환율 상승의 핵심 원인이라는 주장은 과도한 해석"이라는 메시지가 보고서의 골자다. 

 

한국의 9월 M2 증가율(전년 동월 대비)은 8.5%로 미국(4.5%), 유럽(2.5%), 일본(1.6%) 등 주요 선진국들보다 훨씬 높다.

 

박성진 한은 시장총괄팀장은 M2 증가 배경과 의미를 적극 해명했다. "상장지수펀드(ETF) 등 수익증권으로 자금이 이동하면서 기존 통화지표에 잡히지 않던 돈이 M2로 편입됐다"는 것이다. 실제 통화량이 불어난 게 아니라 지표로만 그렇게 보인다는 얘기다.

 

실제로 한은이 M2 집계 방식을 바꾸면서 10월 M2 증가율은 기존 8.7%에서 5.4%로 하향조정됐다. 보고서는 그러면서 "서학개미와 수출기업의 달러화 보유 경향이 강해진 점이 고환율 원인"이라고 못박았다.

 

개인의 해외주식 매수금액이 크게 늘어난 건 사실이다. 한은에 따르면 올해 1~10월 국내 거주자의 해외증권투자 규모는 1171억 달러로 직전 최고치인 지난해 수준(710억 달러)을 훌쩍 뛰어넘었다.

 

▲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 [한국은행 제공]

 

그러나 한은의 고환율 진단은 전형적인 궤변이자 책임을 회피하기 위한 '물타기'일 뿐이다. 서학개미는 원인이 아니라 결과다.

 

한미 금리 역전이 일어나기 전인 2022년 상반기 원·달러 환율은 1200원대 초중반이었다. 이재명 대통령 취임 직전인 지난 6월 초 환율은 1370원대였다. 19일 원·달러 환율은 1476.3원을 기록했다. 12월(1~18일) 평균 환율은 1472.2원으로 외환위기 당시인 1998년 3월(1488.87원) 이후 27년9개월 만에 가장 높은 수준이다.

 

한은이 한미 금리 역전을 장기간 방치하니 환율은 크게 올랐다. 여기에 약 32조 원 규모 추가경정예산안을 집행하는 등 이재명 정부의 확장재정이 기름을 부었다.

 

내년도 본예산 집행에는 올해보다 8.1% 늘어나 확장재정이 지속될 예정이다. 한미 금리 역전 해소를 위해 한은이 기준금리를 올리려는 움직임은 전혀 없다. 오히려 지난해 10월부터 네 차례에 걸쳐 기준금리를 1.00%포인트 인하했다.

 

앞으로도 원화 가치 하락이 우려될 수 밖에 없다. 개인은 미국 주식을 사고 수출기업은 달러화 환전을 꺼리는 경향이 바뀌기 어려운 여건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개인과 기업의 행태는 언제나 가장 합리적인 지점을 찾아간다.

 

평소 주식에 관심도 없던 지인들조차 요새 앞다퉈 미국 주식을 사고 있다. "원화 자산은 인플레이션으로 녹아내린다. 내 재산을 지키기 위해선 달러화 자산을 매수해야 한다"는 게 이들의 이구동성이다. 고물가 시대에 대한 공포가 이들을 미국 주식으로 내몰고 있는 셈이다.

 

반대로 원·달러 환율이 하락일로를 그렸다면 투자자들은 어떻게 행동했을까. "제발 미국 주식 좀 사라"고 해도 안 살 것으로 예상된다. 환차익이 아닌 환차손이 염려되는데 누가 해외 주식을 사겠는가.

 

서학개미가 고환율 현상을 촉진하는 역할을 했을 순 있으나 멀쩡한 환율을 끌어올린 건 아니다. 중앙은행 수장이 서학개미를 걸고 넘어진 건 비겁한 '책임 떠넘기기'일 뿐이다.

 

환율 안정화를 원한다면 무얼 해야 하는지는 명약관화하다. 한은이 기준금리를 인상하면 된다. 금리인상 사이클이 시작된다는 신호만으로도 개인은 미국 주식을 팔고 수출기업은 달러화를 환전할 것이다.

 

물론 금리인상이 쉬운 결정은 아니다. 부작용도 꽤 많다. 그러면 솔직하게 현 상황을 설명하고 책임지는 자세를 보여야 한다. 서학개미 탓하는 건 무책임한 처사다.

 

▲ 안재성 경제 에디터.

 

KPI뉴스 / 안재성 기자 seilen78@kpinew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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