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시각] 스스로 '금리 조절 능력' 포기한 한은
안재성 기자
seilen78@kpinews.kr | 2025-11-26 17:01:18
"연준에 독립적이지 않다"며 한미 금리 역전 장기 방치
"내가 국가의 통화량을 관장할 수 있다면 다른 법은 누가 만들든 상관없다."
19세기 유럽에서 막강한 금융 권력을 휘두른 가문이자 각종 음모론의 배후 역할로 종종 등장하는 로스차일드 가문의 시조, 마이어 암셀 로스차일드가 한 말이다.
그만큼 나라의 통화량을 결정하는 기관, 중앙은행의 힘과 역할은 막중하다. 그래서 우리나라도 한국은행법 등을 통해 한국은행 독립을 보장하고 있다. 그런데 최근 몇 년 간 한은이 그 막중한 책임을 다했는지는 의문이 든다.
오는 27일 통화정책방향 금융통화위원회가 열린다. 시장에서는 기준금리를 2.50%로 동결할 거란 전망이 대부분이다. 문제는 국가 경제와 금융시장 흐름을 볼 때 동결이 최선이어서가 아니라 '그럴 수 밖에 없는' 상황이란 점이다.
올해 경제성장률은 1.0% 안팎으로 예상된다. 저성장과 깊은 경기침체로 많은 기업과 자영업자들이 신음하고 있다. 통상은 금리인하를 고려할 때다.
하지만 기준금리를 내리자니 집값 동향이 불안하고 가계부채가 너무 많이 쌓였으며 원·달러 환율은 고공비행하고 있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처지로 내몰렸는데, 그 책임은 사실 한은에 있다.
김상봉 한성대 경제학과 교수를 비롯해 여러 전문가들이 지적했듯이 한은이 기준금리를 "올려야 할 때 올리지 않고 내리지 말아야 할 때는 내린" 탓이다. 한은이 지닌 가장 막강한 힘이자 존재의의인 '금리 조절 능력'을 스스로 포기한 셈이다.
김중수 전 한은 총재는 "한은 기준금리는 미국 연방준비제도(Fed)보다 2.00%포인트 가량 높은 게 적절하다"고 밝혔다. 기축통화인 달러화와 준기축통화조차 되지 못하는 원화의 처지를 고려할 때 당연한 이야기다.
그러나 연준이 고물가에 대응하기 위해 기준금리를 급격히 끌어올릴 때 한은이 따라 올리지 않으면서 지난 2022년 7월부터 한미 금리가 역전됐다. 역전폭은 점점 커져 2023년 7월엔 2.00%포인트에 달했다. 한은 기준금리가 연준보다 2.00%포인트나 낮은, 비상식적인 상황이 연출된 것이다. 이달까지 한미 금리 역전 기간은 3년 4개월째, 역대 최장 기간 지속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연준이 작년 9월부터 금리인하 사이클에 돌입하자 한은은 기다렸다는 듯 따라 내렸다. 최소한 가만히 머물러 한미 금리 역전 해소를 노리는 움직임조차 없었다.
연준이 기준금리를 1.50%포인트 낮추는 동안 한은 1.00%포인트 인하해 한미 금리 역전폭이 1.50%포인트로 줄긴 했다. 하지만 여전히 매우 큰 규모다.
이창용 한은 총재는 "한은은 연준으로부터는 독립적이지 않다"고 밝혔지만 말뿐이었다. 그는 큰 폭의 한미 금리 역전을 장기간 방치했다. 연준을 전혀 신경 쓰지 않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그 대가는 국가 전체가 치르고 있다. 대표적으로 나타난 현상이 고환율이다. 26일 서울 외환시장에서 원·달러 환율은 전일 대비 6.8원 떨어진 1465.6원을 기록했다. 정부가 수출기업, 증권사 등에 협조를 구하고 국민연금 환헤지가 거론되는 등 전방위적으로 노력하면서 2거래일 연속 내림세다. 그 전엔 6거래일 연속 뛰면서 1480원 선까지 위협했다.
아직 한미 금리 역전이 일어나기 전, 2022년 상반기엔 환율이 1200원대 초중반이었다. 2021년엔 1100원대였다.
당시엔 원·달러 환율 1300원만 돼도 "고환율"이라며 시장이 법석을 떨었다. 하지만 요새 1300원은 '저환율'처럼 느껴진다. 이 책임을 온전히 한은에게 물을 수는 없어도 중앙은행의 잘못된 금리정책 영향이 지대함은 분명하다.
이제 결자해지할 때다. 한미 금리 역전에 대한 깊은 우려를 표하며 이를 해소하기 위해 필요한 조치를 취할 수 있다는 신호를 시장에 보내야 한다. 그래야 환율의 천장까지 뚫을 듯한 기세를 진정시킬 수 있다.
KPI뉴스 / 안재성 기자 seilen78@kpinew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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