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시각] '청년을 위한 나라'는 없다
안재성 기자
seilen78@kpinews.kr | 2025-05-26 17:21:12
거듭된 대출규제 강화도 '내 집 마련 꿈' 힘들게 해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는 제목의 소설이 있다. 미국 현대문학을 대표하는 작가 코맥 매카시가 2005년 쓴 작품이다. 2007년 영화로도 만들어졌는데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작품상, 감독상 등 여러 상을 수상해 2000년대 걸작으로 꼽힌다.
1980년 미국이 배경이다. 우연히 거액의 돈가방을 손에 넣은 전직 군인이 사이코패스 살인마에게 쫓기고 이 사건을 인지한 보안관까지 추격에 나서는, 복잡한 상황을 그려냈다.
제목에서 '노인'이란 단어는 단순히 '늙은 사람'이 아니라 '경험이 많고 현명한 사람'을 뜻한다. 노인의 경험과 지혜가 쓸모없을 만큼 그 시대가 혼란스러웠음을 반영한다. 1979~1981년 미국은 강력범죄가 만연해 혼란이 극에 달했다. 1980년 미국의 살인 범죄율은 10만 명당 10.2건으로 사상 최악의 수치를 기록했다.
영화가 인기를 끈 뒤 국내에서 한동안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는 말이 회자됐다. 국내 유행어에서 노인은 단지 '늙은 사람'을 의미했다. 점점 심각해지는 노인빈곤율, 부모 부양을 거부하는 자녀들이 생겨나기 시작한 현상 등을 빗댄 표현이었다.
그런데 요새 정부 정책들을 보면 노인보다 오히려 "청년을 위한 나라는 없다"고 해야 할 것 같다. 거의 모든 정책에서 2030세대 입장이 제외돼 미래에 얼마나 큰 부담이 가해질지 아찔하다.
지난 3월 20일 18년 만에 국민연금 개혁안이 국회를 통과했다. 출산율은 바닥을 치고 국민연금 고갈이 머지않은 상황이라 개혁은 불가피했다. 하지만 내년부터 적용될 국민연금법 개정안은 보험료율을 현행 9%에서 13%로 올리되 소득대체율도 40%에서 43%로 상향조정시키는 내용이다. '더 내고 더 받는' 개혁이니 4050까지는 나쁘지 않지만 2030에게는 재앙에 가깝다.
이대로는 국민연금 제도를 유지하기 위해 젊은층이 갈수록 더 많은 보험료를 부담해야 한다. 그러고도 그들이 국민연금을 제대로 수령할 수 있을지 의심스럽다.
이영 한국조세재정연구원장도 "보험료율 13%, 소득대체율 43% 구조는 지속가능성을 악화시킨다"며 "지금 세대는 더 받고 다음 세대는 덜 받는 구조가 고착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한국갤럽 여론조사에서 국민연금 개혁안에 대한 2030 반대율은 60%에 육박했다.
아직 그 심각성을 다들 깨닫지 못하고 있지만 국민건강보험 문제도 젊은 세대에게는 재앙으로 다가올 수 있다.
국민의힘 김미애 의원이 국민건강보험공단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건강보험 수지는 11조3009억 원 적자를 기록했다. 2015년(-2조4533억 원)에 비해 4배 가까이 급증했다.
국회예산정책처는 건강보험 누적 적립금이 2028년 고갈될 것으로 예상했다. 적립금이 떨어지면 저렴하면서도 우수한 의료를 제공하는, 한국의 현재 의료시스템을 유지하는 게 불가능해진다. 보험료율을 대폭 상향하거나 의료 서비스의 질을 크게 낮춰야 한다. 어느 쪽이든 2030에게는 비극이다.
스트레스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3단계 시행 등 점점 강화되는 대출규제도 2030에게 불리하다. 다수 중장년층은 과거 대출을 받기 쉽던 시절 내 집을 마련해 시세차익까지 누리고 있다. 그러나 자꾸 대출 규제가 세지면서 2030에게 '내 집 마련의 꿈'은 멀어졌다.
왜 정치권이 2030을 외면하는 걸까. 우선 2030의 수가 4050보다 적기 때문으로 보인다. 더 큰 이유는 2030이 지역, 직장, 검찰 개혁, 페미니즘 이슈 등으로 파편화돼 있다는 점이다.
만약 국민연금, 건강보험 등에서 2030에게 유리한 정책을 내는 정당을 젊은 세대가 압도적으로 지지한다면 정치권도 즉시 반응할 것이다. 하지만 지금처럼 파편화된 상태로는 2030에게 꿈도 희망도 찾기 어렵다.
KPI뉴스 / 안재성 기자 seilen78@kpinew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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